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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ph Jul 27. 2022

마음의 풍경


가족을 제외하고 여태 내 삶에 가장 뚜렷한 족적을 남긴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 그는 내 옛 애인이자 내가 가장 동경한 한 인간의 초상이다. 6년 간 이걸 단 한 번도 제대로 글로 남긴 적이 없었단 사실에 새삼 놀랐다. 처음 몇 해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싱숭생숭 해져서 손을 댈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별다른 감정의 요동이 없는 지금도 그와 관련된 기억은 마음의 성역처럼 남아있는데, 그 3년 남짓한 기간 동안 내가 앓았던 감정의 홍역이 그 어느 때와 비교해도 독보적이었던 탓이고, 어느 시점부턴가 그때 나로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 글로 쓰기도 망설여졌던 것이다. 꼭 타인처럼 느껴지는 사람의 삶을 회고하는 낯선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았달까.


그를 처음 만난 건 2013년 2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어느 교회 수련회였다. 누군갈 좋아하는 데 까지 시간이 필요한 내 삶에서 아마도 유일한,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한 순간이었다. 지금 와서는 미화되었다는 생각도 적잖이 들지만 그 순간엔 뭔가 완벽함에 가까운 구석이 있었다. 조금 창백한 얼굴에 정갈한 분위기, 작은 체구의 여자가 자기 몸집 만한 첼로 케이스를 등에 메고 걸어오던 순간의 언밸런스함 같은 것이 말이다. 지금도 그를 생각하면 난 그 하얀 첼로 케이스를 떠올리게 된다. 


첼리스트였던 그에게 악기는 몸의 일부와도 같았다. 그 무게에 눌려 살짝 구부정한 자세로 베를린 시가지를 파워워킹하는 모습은 그라는 사람에 대해 많은 걸 말해줬다. 묘하게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에 반해 많은 남자들이 첼로를 들어주겠다 했지만 그는 내가 알기로 단 한 번도 그런 호의를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모든 게 남성들의 일방적 판타지 같은 것이었지만. 여하튼 그런 씩씩함은 오히려 그를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내가 그의 첼로를 들어준 첫 번째 사람이 되었던 날, 길고 긴 기다림의 끝을 예감할 수 있었다. 잘 알지도 못했던 사이에 베를린까지 무작정 건너와 10개월 동안 구애를 한 결과였다. 말이 10개월이지, 정성스럽게 마음을 담은 카톡에 “네. ^^” 로 일관하는 철벽에 대고 혼잣말을 하는 듯했던 인고의 시간이었다. 그는 의도치 않은 밀당의 귀재였다. 다정했지만 확실히 선을 긋는 그의 행동, 리액션, 그의 모든 것은 언제나 나의 예상을 빗나갔다. 당황한 나와 내 친구들은 일요일 저녁마다 모여 이런저런 분석을 내놓았지만 그 또한 허사였다. 좀 자존심 상하지만, 알고 보니 그는 너무나 단순한 사람이어서 애초에 내 의도 같은 것엔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의도가 없는 사람의 의도를 찾으려 밤을 지새웠던 나와 내 친구들은 매번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맥주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음악이 일상이었던 도시에서 많은 이들을 만나며 연주자들이 자기 악기를 닮아있는 걸 종종 봤지만 그는 내가 만난 어떤 첼리스트보다 첼로를 닮은 사람이었다. 그때 난 쥐스킨트의 단편 속 여류화가처럼  ‘나는 깊이가 부족해'라는 말을 늘 달고 살았기에, 내가 그에게로 단숨에 빠져든 건 아마 그 결핍 때문이었으리라. 과연, 곁에서 지켜본 그는 주어진 하루를 온전하게 살아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효율이나 생산성을 추구하는 소히 ‘갓생'과는 궤를 달리하는, 학문 앞에서의 성실함과 삶 전체에 배어있는 자족을 동력으로 우직하게 밀고 나아가는 사람. 나는 첼로의 깊은 중저음을 떠올리게 하는 그 단단한 심지와 소박하면서도 품위 있는 태도, 흔들림 없는 평온으로 하루를 경영해나가는 그만의 방식을 깊이 사랑했다. 아니, 지금 생각하면 동경이란 단어가 더 적합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너는 내가 널 사랑하는 게 아니라, 널 사랑하는 내 모습을 사랑하는 것 같다고 했던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연애의 끝을 선언하고 갑자기 떠나갈 때도 그의 등엔 첼로가 단단히 메어져 있었다. 작별인사를 나눈 곳에서 그의 집으로 향하는 길은 유독 긴 직선거리였기에 난 얄궂은 그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봐야 했다. 첼로가 작은 체구를 다 가려 멀어질수록 그는 하나의 첼로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지금 기억을 재구성해보니 마치 발이 달린 하얀 첼로가 걸어가는 것 같아 피식하게 되지만 당연하게도 그때 난 웃을 수 없었다. 그는 그날 그리고 그 이후로도 단 한 번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이 글을 쓰기 위해 6년 만에 노트를 펼쳐 봤다. 요요마의 바흐 무반주 첼로 앨범을 굳이 틀어놓는 궁상까지 부리며, 꾹꾹 눌러쓴 손글씨들을 눈으로 따라가다 보니 직진만 알았던 과거의 나, 흡사 미션을 받은 군인 같았던, 이젠 낯선 그 모습에 이상하게도 애정이 간다. 내 나름 전쟁 같았던 시간의 연대기를 따라간다. 사랑을 쟁취하고 싶은 마음에 안달이 났던 열 달, 그리고 잠에 관한 세상 모든 축복을 받은 사람인 내가 불면의 밤을 처음 경험한, 흡사 패잔병 같았던 헤어진 후의 여러 달. 돌이켜보건대 한 사람에게 그만큼 열중했던 때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한 가지 후회가 남는다면 관계의 태동과 종말 이후엔 많은 글을 남겼는데 정작 함께 였을 때엔 글을 전혀 쓰지 않았단 것. 왜 그랬을까. 그때 난 아플 때만 글을 썼나 보다. 기쁨으로 충만했던 시간을 추억할 것이 매일 바래져가는 기억 외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게 조금 서글퍼졌음에 다짐도 해본다. 언제 올지 모를 다음 사랑을 위해선 그 어느 때보다, 둘이었던 시간을 꼼꼼히 남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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