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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ph May 19. 2020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프로세스, 몸의 생각 (107, 123-129)


어떤 종류의 프로세스는 아무리 애를 써도 변경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프로세스와 어느 모로나 공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정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집요한 반복에 의해 자신을 변형시키고 (혹은 일그러뜨려서), 그 프로세스를 자신의 인격의 일부로서 수용할 수밖에 없다.
래이먼드 챈들러는 ‘비록 아무것도 쓸 것이 없다고 해도 나는 하루에 몇 시간인가는 반드시 책상 앞에 앉아서 혼자 의식을 집중하곤 한다’는 말을 개인적인 편지에서 밝힌 적이 있는데, 그가 어떤 의도로 그런 행위를 했는데 … 챈들러 씨는 그렇게 함으로써 전업 작가에게 필요한 근력을 열심히 훈련하고, 조용히 그 의지를 높여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소설 쓰기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 … 얼마만큼, 어디까지 나 자신을 엄격하게 몰아붙이면 좋을 것인가? 얼마만큼의 휴양이 정당하고 어디서부터가 지나친 휴식이 되는가? … 얼마만큼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고, 얼마만큼 자신을 의심하면 좋은가?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 쓰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떠오르는 단어가 ‘프로세스’다. 하루키는 본인을 ‘평범한 인간’이란 프레임에 계속 끼어 맞추려고(?) 하는 것 같은데, 마라톤을 뛰다 다리에 경련이 난 상황에서의 멘탈리티만 봐도 사실 전혀 평범하지가 않다. 내면에 고요한 불을 가진 사람이다. 뭐 어쨌든 그렇다니 일단 그의 말을 믿어주기로 하자. 하루키는 작가로서 천재성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타고난 신체의 소유자도 아니다 (적어도 그건 확실해 보인다.) 그런 그가 33세에 달리기 시작해 마라톤을 수십 번 완주하고, (번역 포함) 백여 권의 저서를 남길 수 있었던 건 온전히 프로세스의 힘이다. 그는 일정한 패턴을 만들어 삶에 지속성을 부여하고, 그게 본인 ‘인격의 일부’가 될 때까지 반복한다.


일반적으로 루틴/프로세스엔 지루하단 인식이 따라다니는데, 하루키에게 있어 키워드는 요즘 스타트업계에서 많이 쓰이는 ‘growth mindset’이다. 루틴이 일정기간 반복되면 비교 분석이 가능한 샘플이 남는다. 이걸 통해 프로세스를 돌아보고, 개선하여 적용시키는 것. 그래서 단순 루틴의 반복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계속 변화하며 전진하고 있는 상태가 된다. 하루키에게 러닝은 바로 이런 일련의 정신적 과정을 가시화시킨 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이 평생 근육과의 팽팽한 긴장관계 속에 살면서도 그가 여전히 달릴 수 있는 이유다.


우리 문화에서 ‘한계를 극복하는 개인’은 ‘더 나은 나/성공’의 만트라와 결부될 때가 많은데, 난 차라리 이런 하루키의 관점이 맘에 든다. 그에게 있어 매일 한계를 극복해 나감은 단지 필연적 연소로 가는 과정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 딱 그 정도다. 비관적 낙관주의자스럽다고나 할까.


최근 들어 몸의 사용과 사유의 확장을 연결시키는 글들이 종종 보인다. 우리 안에 정신적/육체적인 것을 나눠 생각하는 이분법적 경향이 있기 때문일탠데, 생각해보면 나 또한 웨이트 트레이닝이란 몸 쓰기를 통해 직관적으로 무언갈 ‘이해하게 되어버린’ 경험이 종종 있다. 요즘 자주 느끼는 건 인간의 육체가 생각보다 터프하다는 것. ‘이 정도면 됐다’ 싶을 때는 사실 육체보단 정신의 연약함을 드러낼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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