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우연히 친구들과 잡지에서 웨딩드레스 사진을 보면서 "선언"을 한 게 늘 말버릇이 되어 버렸다.
"나는 26살 6월에 결혼할 거야"
굳이 6월을 선택한 이유는 내 생일을 피하고, 부모님의 생신, 어버이날, 크리스마스와 같이 기념일이 없으며 많이 춥지도 덥지도 않은 달이 6월이라 생각해서였다.
나이는 왜 26살이 결혼하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했을까?
13살 소녀가 생각하기에 26살이면 마음이 큰 어른이라고 생각해서였을까 아니면 여자 나이 서른 전에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한국 문화에 철저히 부응하고 싶은 탓이었을까?
어찌 되었건 나는 26살에 결혼하지 못했으며, 6월의 결혼식 또한 그저 바람으로 남아 있다.
몇 년 전 대통령의 탄핵 여파로 싱가포르에 근무하고 있던 회사가 없어지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한국으로 귀국을 하게 되었고, 마흔이 훌쩍 넘어 남편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나는 서른 살까지 외할머니(외할미)와 함께 살았다. 어렸을 적에는 나는 침대에 자고, 할머니는 바닥에 요를 깔고 주무시면서 "옛날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해 주셨다.
일본은 나쁜 나라부터 시작해서 그래도 여자는 장희빈으로 사는 게 낫다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 이야기.
사람을 볼 때는 구두를 보아라. 사람이 가장 등한시하기 쉬운 구두, 신발이 깨끗하다면 그 사람은 된 사람이다. 남편이 좋으면 그 남편을 낳아주고 길러준 시부모도 좋아하고 공경해라 등등.
할머니와의 시간들 덕분에 나름 보수적이고 편견이 많은 한국 사회에 대한 반항 기질은 다분하면서도 또 누구보다도 보수적으로 살아온 듯하다.
25살 인천공항 취직 전까지 밤 8시 반 통금 시간을 잘 지키며 얼마나 바른생활로 살았는지.
아빠는 내가 너무 반듯해서, 밖에서 술에 취한 적이 없으며, 매일같이 이렇게 똑바로 걸어서 집에를 들어오니 결혼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 농담을 하셨더랬다.
중학교 때 유덕화에 반한 탓에 나는 국제결혼을 하겠노라 또 한 번의 "선언"을 하였고, 부모님은 너만 좋다면야, 외할미는 "일본인"과 (할머니 8살 때 해방되었음) 그저 본인에게 무섭다는 이유로 "흑인"만 빼면 어느 나라던 상관없다 하셨다.
외국 생활을 10여 년을 했어도 제대로 된 외국 남자와 연애조차 못해봤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 미국 남자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스무 살 캐나다 어학연수에서 파란 눈의 남자가 데이트 신청을 했을 때 그 눈이 마치 영화에 나오는 현실감 없는 눈으로 느껴져, 국제결혼을 하더라도 아시아 남자와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이제야 만난 내 남편의 눈은 파란 눈이다. 남편은 친구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절대 한국 여자를 만나지 않을 것이라 공공연히 말해 왔었단다.
소위 말하는 둘 다 눈에 콩깍지가 제대로 씐 듯하다.
첫 만남 이후 주중은 물론 매주 주말도 함께 보내고, 결혼 이후는 코로나로 인해 24시간 붙어있어서 지금껏 가장 많이 떨어져 있은 시간이 1시간 정도인 듯하다.
그 1시간은 별 것 아닌 일로 치열하게 싸운 후 신랑이 자전거를 타러 나가서.
외할미의 다리를 주물러 주며 KBS1에서 하는 연속극을 보곤 했다. 드라마 제목이 바뀌고 출연진이 바뀌어도 나에게는 늘 같은 얘기, 지루한 얘기 같았으나 외할미에게는 삶의 낙이였던 드라마들을 보며
"저 사람들은 왜 맨날 저렇게 싸워"라고 물으면 "네가 살아봐라, 안 싸우게 되는지. 부부는 다 저런 거야~"
그럼 난 또 "치,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싸울 시간이 어딨어? 난 매일 사랑하며 살 거야!"
할머니의 그 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나 꽁꽁~인생이 니 맘대로 되는 줄 아냐?"
기대가 커서 일까? 사랑하는 마음이 커서일까?
30년 지기 내 절친은 내가 그렇게 현명하고 지혜로운 친구라고 하는데, 내게 현명함이 있었다면 결혼을 하면서 사라져 버린 거 같다.
어느 날은 그러려니 하던 일도, 어떤 날은 꼴도 보기 싫게 미워지면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 eye for eye, tooth for tooth, I will do the same thing to you!"라고 외치며 불같이 화를 낸다.
내가 불같이 화를 낼 수 있는 사람임을 결혼하고야 알았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인데 세상 모두에게 예의 바르고 싶은 나는 온 데 간데없고, 나의 이 화를 어떻게 하면 100% 제대로 전달해 줄 수 있는지에 골몰하게 되는 거 같다.
나라고 완벽한 와이프 일까. 그럼에도 늘 먼저 사과해주는 남편에게 고맙고 내일부터 그러지 말아야지 반성을 하며 "우리 둘 다 결혼이 처음이니 실수를 할 수 있고, 서로를 비난하기보다는 서운했다면 어떤 점이 서운했는지 잘 설명해 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자"라는 다짐을 해보지만 번번이 나는, 어쩌면 더 퇴화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감정 조절을 잘 못하는 듯하다.
코로나로 너무 오래 붙어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1의 강도로 화를 내봤는데 어랏, 이 남자가 다 받아주네. 받아주고 사랑해 주는 걸 아니까 나도 모르게 점점 더 강도 높게 화를 내고 시험해 보는 걸까?
늘 나는 화 낼만 했어라고 합리화하며 모른 척하려고 하지만, 사실은 나는 알고 있다.
이 사람이 먼저 사과해 주고 사랑을 줄 때 나 또한 한결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처음 사는 인생인데, 다른 사람도 아닌 사랑하는 사람에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부르짖으며 정의를 구현할 이유가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이 글을 적으며 반성을 하지만, 내일이면 또 바보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별거 아닌 일로 투닥거리고 있을 수도. 적어도 이런 글을 적어 내리며, 내 내면을 들여다보고 나름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