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을 하면 머릿속이 비워지고 마음은 차분해질 줄 알았어요.
불안한 것 없이 평온하고 초연하게 모든 일들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모든 사건과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그런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명상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래서 저는 고요함을 만났습니다. 그것으로도 좋았어요. 그러나 고요함만 찾다 보니 점점 사람들과 멀어지고 혼자 있는 시간을 찾았습니다. 눈을 감고 호흡하는 것만 쫓는 나를 발견했고 사람들 사이에서 스트레스받고 멀어지고 싶어 하는 나를 발견합니다. 그때 가장 고독한 시간을 보냈어요. 그게 맞다고 생각했고 외롭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행복이라는 감정도 없었어요. 그냥 고요한 순간뿐이었습니다.
저는 가족이 있습니다. 그 고독의 시간이 가족들을 외롭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저의 행복을 바라 주지 않는 그들이 미웠습니다. 나에게 미운 감정을 가져오게 하는 그 상황이 싫어 단절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진정 내가 바라는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나의 성향을 존중해주고 나의 고요를 방해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발견한 것은 나의 이기심이었습니다.
저는 나 자신의 행복만 바라고 있었어요. 옆에 있는 가족들의 지지만 바랬지 그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명상 공부를 하다 보면 고요함 그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이 순간 비로소 고요함 그 이상의 단계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에 대해 미숙하다 생각했습니다. 감정을 가지고 기뻐한다니 그게 무슨 명상이냐며 코웃음도 쳤었죠. 사람들은 감정 경험을 통해 성숙하고 나아가더라고요. 그걸 늦게 알았어요. 나는 순간의 행복을 음미할 줄 몰랐고 괴로운 경험에서 벗어나기만 바랬어요. 벗어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괴로움이란 감정은 생생하게 남아있고 쉽게 돌이켜집니다. 그러나 행복의 순간도 그러할까요? 저는 행복의 지속을 길게 경험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감정의 회복도 느리고 힘든 감정들에 쉽게 잠식당했던 것 같아요. 감정의 적절한 제어. 그것을 단절과 절제로 해결하려 했었습니다.
과거 고요함과 비움을 쫓아 명상을 시작했다면 지금은 순간의 음미를 위해 명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주위 사람들이 보여요. 그리고 사회 속에서 살아갈 용기도 생기고 누군가에게 나누고 싶은 마음도 생겼습니다. 저는 이기적인 명상가였습니다. 혼자 열심히 수련해 혼자 해탈을 꿈꿨던 것 같아요.
명상은 정말 신비롭습니다. 아주 단순한 방법으로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게 합니다. 저마다 다른 목적을 가지고 명상을 만납니다. 처음의 시작과 다른 마음가짐으로 명상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는 방향을 항상 같아요. 뒤늦게 알게 되었을뿐. 이후에 만날 깨달음들이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