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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온 어묵을 보고,
슬펐다...

그걸 애 여기까지 가져와...

타박했다.

인천 공항에서 산 어묵을 파리까지 가져온 것이다.

직항도 아닌 경유,

안 상했겠어?

비행기 안은 시원하잖아.

당연하듯 말하는 통에 할 말을 잃었다.

결국 어묵은 집까지 왔다.


짐정리를 대충 끝낸 새벽,

혼자 앉아 더위를 식히려 꺼낸 맥주 한 캔을 하는데,

어묵이 생각났다.

살짝 들여다보니,

반을 남긴 어묵사이로 새우가 보인다.

새우가?


데우지 않고 한 조각 베어 물어보니 어묵과 새우 연하게 베인 간장맛이 느껴졌다

가져올 수밖에 없었겠네..

아니 버릴 수가 없었겠네..

다른 어묵엔 깻잎이 감싸여 있었고

베어무니 알싸한 고추가 안에 숨어 있었다.

이번엔 맥주가 한켄으로 끝날수 없었다.

남은 마지막 한 개의 어묵은 가져온이의 노력을 생각해서 남겨두었다.

어묵 하나에도 이런 다양함과 새로움이 있다니..

겨우 어묵인데..

그런데, 슬펐다.

늘 한국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먹먹함이 어묵 때문에 다시 올라왔다.


살아남기 위해, 장사가 잘되기 위해 늘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야 하고,

포장에서 용기와 재질까지 경쟁해야 하는 사회

그래서 소비자는 너무나 다양하고 질 좋은 상품을 누리는 사회

그렇게 생산자는 늘 사선에서 싸우는 사회

그래서 난 다양한 한국을 보면 슬픈 마음이 먼저 들었다.


단체여행이 한참이던, 코로나 한참 전의 한 여름,

폭염이 찾아왔던 그 해에 한 단체와 함께 남프랑스의 아를을 갔다.

식사를 마친 손님들은 후식으로 뜨거운 애스프레소가 나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컴플레인은 하지 않았다. 단체식은 늘 메뉴가 정해져 있다는 점을 이해한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30도가 넘는 더위에 에어컨도 없는 식당 바 앞에서,

프랑스 어도 모르는 넉살 좋은 손님은 직원에게 콩글리쉬로 주문을 한다.

너네 커피 있지? 그걸 타서 얼음을 넣어, 그리고 우유를 조금 넣고 줘봐, 그럼 내가 돈 더 줄게.

아이스커피를 직접 주문한 셈인데...

직원은 생글생글 미소만 날릴 뿐,

손님이 원하는 커피를 만들어주지 않았다.

재료가 없는 것도 아닌데..

돈을 더 준다는 꼬임도 소용이 없었다.

가게가 더 많이 벌어도 별 상관이 없다, 였을까?


아를뿐이 아니다. 파리도 그 어느 곳을 가 보아도 프랑스는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똑같았다.

한국에서 배웠던 인테리어 기술은 쓸모가 없었다.

한국에선 철마다 인테리어를 바꾸었는데,

이곳은 주인이 바뀌어도 그대로다.

피자집 인테리어로 중국집을 하는 곳이 프랑스였다.


식당들 메뉴도 늘 거기서 거기다. 스테이크, 생선 또는 샐러드

미슐랭 별이라도 받으려는 '샘'있는 셰프나 

4성급 이상 호텔의 식당이 아닌 경우는

늘 모든 식당의 메뉴가 대동소이하고 20년째 아니 30년째 변화가, 없다.

하던 데로 해도 되는 것이다.

하던 데로 해도 그냥 장사가 되고,

또 그렇게 장사해서 먹고살만한 그런 사회,

사선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식당들은 늘 대게는 서비스가 평이하고(엉망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음식들은 늘 원재료의 맛을 살릴 뿐이다.

그래서 난 늘 프랑스를 게으른 천국이라고 부른다.

고개를 돌려서 한국을 보면 부지런한 지옥으로 보였다.

어느 곳이 더 나은지 모르겠다.

양쪽이 좀 섞였으면 좋겠다.

서로 좋은 것을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프랑스는 좀 더 경쟁적으로 일하면서 서비스 정신을 키우고

한국은 좀 덜 일하고 사람을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다.

생각 같아선 일을 그만하고 일하듯이 정부에 항의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검찰 공안 국가가 된 지금의 분위기에선 잡혀갈지 모르니,

일하는 만큼, 정치를 잘할 사람을 선택하자고 말하고 싶다.


프랑스는 일을 좀 해야 하고

한국은 일을 좀 덜 해야 한다.

한국은 일을 좀 덜하면서 일하는 만큼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

프랑스는 노동자의 권리 타령을 좀 그만하고 일을 해야 하고,

한국은 일을 좀 줄이고 노동자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


한국은 돈이 없는 나라가 아니다.

돈을 쓸데없는데 쓰는 나라다.

쓸데없는 거북선을 만들고, 동상을 만들고, 어마어마한 가마솥을 만들고, 관저를 옮기고, 시청을 다시 짓고,

천박하고 염치없는 행정들만 없애도, 국민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지 않을까?

그래서 정부가 쓰는 돈을 감시하고 지적해야 한다.

국민 서로 경쟁할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국민 서로를 함께 잘살게 해주는 길을 내어주어야 한다.


그 길은 존재한다. 자본의 욕망이 가려놓았을 뿐이다.

상생의 길을 막아서서 경쟁으로 내몰기만 하는 사회.

그래서 잘 만들어진 한국상품들을 보면,

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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