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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지,
처절하게, 슬프고, 아름다운..

파리에서 본 세상

안타깝게 일찍 우리 곁을 떠난 장국영,

그가 주연했던 영화 패왕별희에선 혹독한 경극 학교의 모습이 그려진다.

학교의 수업을 빼먹고 도망쳐 나와,

최고의 연주자들의 공연을 몰래 관람하던 경극학교의 소년은 울며 말한다.

저렇게 잘하려면 얼마나 맞았을까...

그 아이는 결국 맞아 죽는다.

그렇게 만들어지고, 오르는 것이 경극 장인의 경지였다.

피를 토하고, 소리를 얻듯이, 경지는 늘 그렇게 슬프도록 처절하게 얻어지고

그래서,

슬프게도 아름답다.


지휘자의 이야기를 그린 Tár (TAR 타르).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자의 독재가 그려진다.

내가 가장 흥미로왔던 장면은 첼로 솔리스트를 뽑는 장면이었다.

마에스트로가 첼로 협주곡을 프로그램으로 소개하며, 단원내부에서 솔리스트를 뽑겠다고 발표한다.

단원중 최고의 실력이 분명한 첼로 수석은 뛸뜻이 기뻐하고,

마에스트로가 '오디션'을 볼 것이라고 덧붙이자 얼굴이 일그러지고 만다.

이미 마에스트로에겐 점찍은 사람이 있었던 것.

들러리가 된 수석 첼리스트는 오디션의 심사를 하게 된다.

그렇게 탐탁지 않던 그 자리에서,

마에스트로가 점찍은 첼리스트의 첫선율에 얼굴이 미소로 번진다.


정치적 호불호, 내 편과 네 편을 떠나서, '좋은 연주'에 미소가 번진 것, 마음이 답을 한 것이다.

이성을 떠난, 선입견을 떠난 '경지'가 만들어낸 '아름다움'에 '마음이 녹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여기선 '칸트'가 옳았다.

아름다움이란, 사심이 들어가지 않은 판단이라는 것...


경지는 늘 그렇게 슬프게도 아름답다,

오르기 위해 고통스럽고 또 올랐으니 아름다운...

산악인들에게 왜 산에 가냐고 물으면 산이 거기에 있어서 라고 하지만,

실상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늘 결국 이유는 하나였다.'자연의 아름다움'.


너무나 뻔할지 모르지만, 여행에 사람들이 그렇게 열광하는 이유도,

자연이 주는 광활함과 놀랍고도 생생한 아름다움 때문이다.

예술은 '경지'를 통해 그런 아름다움을 준다.

그래서일까,

나는 자연을 보면 아무리 아름다워도 눈물이 나지 않지만,

음악은 첫 소절에도 눈물이 났다.

(현재의 미술은 경지를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이 붕괴했다.)

저렇게 만들어내기까지 얼마나 고생했을까..

패왕별희의 그 울며 감동하던 아이가 되어 있었다.


윌리엄 크리스티의 음악이 그랬다.

들으면 첫 소절에, 아니 한 소절에도 눈물이 날 수 있었다.

그는 한 소 절도 허투루 그리지 않았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존 엘리엇 가드너 경과 윌리엄 크리스티를 비교해 보고 싶다.

두 분 모두 경지에 이른 명장, 명인들이다.


이런 경지를 이야기하다 보면 요즘은 더 슬프다.

세상엔 이런 경지가 존재하는데,

우리 사회는 경지가 아닌, 수준도 기대하기 어려운

기본이 안된 사람들이 나라를 만지고 있다.

이끄는 것이 아니라 만지고 있다(이끄는 것은 '방향'이 필요하다)

그래서 슬펐다.

슬프고 또 슬프다..

다행인 것은, 적어도 60%의 국민들은 수준과 경지가 정부보다 높다는 점이다.

그래서 현 정부의 기본 없음에 만족하지 않는 것... 이것이 유일한 위안이자 희망이었다.


수준 있는 정부를 기다린다

경지에 오른 정치 지도자를 기다린다.

음악의 경지가 감동을 준다면,

정치의 경지는 사람을 살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죽어가는 세상이다.

극우 정치인들이 만들고 있는 야만의 세상...

음악을 들으며 감동하는 것이 죄스러운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요즘 크리스티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렇게 먹먹했는지 모르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qbRdAhRGpWI

https://www.youtube.com/watch?v=CT6vRpmyiW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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