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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프랑스,
그 '극極'과 '극極'

한불중용가韓佛中庸可01 - 서언序言

한국과 프랑스.

9228킬로미터를 떨어져 있는 두나라의 첫 만남은

1866년 병인양요였다.

최초의 접촉이 '전쟁'이었던 것이다.


시작이 안 좋았지만,

한국과 프랑스가 영원히 적대국이 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미국과 같은 '절대 우방'이 된 것도 아니었다.

한국과 프랑스의 관계는

딱히 사이가 좋은 것도 또 나쁘지도 않은 관계다.

미테랑 대통령 시절, 프랑스는 한국에 TGV를 수출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었다.

그 이후 양국의 '쟁점'은 '규장각 도서 반환'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적인 관계나 

외교관계사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정치적인 면이 아니라,

한국과 프랑스, 두 사회가 가진 

'정반대'의 성격을 이야기해보려는 것이다.


한국과 프랑스, 프랑스와 한국은 정말, 

'극' 과 '극'이다.


한국이 빠르다면,

프랑스는 느리다.

느림과 빠름의 가장 극단의 단면은 '행정처리'다

한국에서 행정서류는 클릭 하나로 되지만

프랑스에선 약속부터 잡아야한다.


느린 프랑스다 보니 자연히 서비스는 엉망이다.

그런데 서비스가 엉망인 것은 '생활습관'이 느려서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프랑스가 '노동자 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소비자가 왕이라면

프랑스에선, 생산자 노동자가 왕이다.


난 양쪽의 극단이 모두 싫었다.

한쪽은 소비자가 일하는 사람을 종처럼 부리는 것 같았고

또 다른 한쪽은 일하는 사람이 소비자를 인질 삼는 것 같았다.

한쪽은 작은 실수만 해도 손님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하고

다른 한쪽은 내 돈을 쓰는 소비자인데도 종업원의 눈치를 봐야 한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안 갈 수 있다.

당신이 프랑스의 카페에 가서 앉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으면

15분이 지나도 종업원이 당신을 안 찾을 수 있다.

주문을 하고 음료를 마시다가 물 한잔을 원하면,

적어도 5번 정도는 쏜살같이 지나가는 종업원과 눈을 맞추기 위해 시도하다가

또 5번 정도는 "s'il te plaît, 실부쁠레, 부탁합니다!"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물을 받아 들었을 때도 감사하다는 말을 잊어선 안되며,

나올 땐 팁도 두고 나와야 한다.

한여름이어도 시원한 물이 아닌 미지근한 물이 나오는 경우는 다반사일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인들은 한국을 이해하지 못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테이블에 벨을 누르면 종업원이 온다는 말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프랑스 인들이 부지기 수였다.

편의점? 

24시간 가게가 문을 연다고 이야기를 프랑스인에게 말했는데,

만약 그 사람이 극좌파였다면, 24시간 편의점을 당연하게 이야기하는 당신을

거의 반인도주의적 괴물로 취급할 것이다.


지금은 조금 너그러워졌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24시간 영업은 프랑스에선 '비현실'이다.

파리에 24시간 편의점은 3년 전인 2018년, 단 한 곳에서 단 3주간 시범 운영만 했었다.

그러나 이후 '현실화'되지 못했다.

그나마 20시면 문을 닫던 슈퍼들이 22시 정도로 늦추어졌을 뿐이다.


나는 둘 다 싫었다

너무 극과 극이었다.

한국과 프랑스

이 두 극점이 아닌 중간을 만들 수는 없을까?


손님에겐 상식선에서 친절해주고,

또 손님은 일하는 사람을 인간적인 면에서 존중해주고,

서비스도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정도로만 빠르고,

또 생활에 너무 불편을 겪지 않을 정도 느리지 않은..

그전 중간은 정말 불가능한 걸까?

한불중용가?



"중용이라는 것은 좌파, 우파의 가운데를 말하는 게 아니거든,

그럼 회색분자밖에 안되고 아녜요?

좌파, 우파가 아니라, '집기 양단(執其兩端)'이라 그랬거든,

그 양쪽, 좌우의 모든 가능한 극단을 다 품어서,

그 품어서 자기화시키는 가운데서 우러나는 것만이 중이다. 그랬거든,

그래서 그 가운데를 백성에게 써라."

(나는 꼼수다 중에서 도올 김용옥 선생의 말)



한국과 프랑스의 양극단을 모두 취한 중간이라면

정말 모두가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우선 일단은 얼마나 극과 극인지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과 프랑스 그 양 극단의 단상을 말이다.


01 그해 겨울 에펠탑엔. 노동자가 왕인 나라 프랑스 노동차의 천국, 한국 소비자의 천국

02 '테제베 역방향 좌석? 은 복불복' 국민을 길들이는 나라, 나라를 길들이는 국민 -역방향

03 '자유가 먼저일까? 규제가 먼저일까?'

04 아마존조차 배달사고 나는 프랑스, 차도 못 들어가게 하는 한국, 한국의 택배 프랑스의 택배

05 프랑스의 우버 한국의 대리운전 그 좁힐 수 없는 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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