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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 마크롱,
그리고 초유의 기록들

파리에서 본 세상

마크롱의 '새정치',

프랑스인들의 '첫 경험'

'아마추어리즘을 즐겨라'


마크롱 대통령은 당선 직후 

루브르 미술관 피라미드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새로움이었다.

과거까지 좌파와 우파의 대통령들은 당선 직후 

각각 자신의 정치 성향 

그리고 지향점이 짐작되는 곳에서  집회를 열어왔다.


미테랑 대통령은 

파리 솔페리노 거리 당사에서 두 손을 맞잡아 인사했다.

대규모 당선 집회가 시작된 2002년,

극우 후보의 결선 진출이라는

전대미문의 충격 속에 치러진 대선에서

시라크 대통령은 80%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당선됐다.

'극우만은 막아야 한다'는 절대적인 '공감대'가 낳은 결과였다.

시라크 당선인이 택한 곳은 

'쁠라스 드라 레퓌블릭크', 바로 '공화국 광장'이었다.


2007년 시라크에 이어 대권을 거머쥔 사르코지 당선인은

콩코르드 광장에서 집회를 가졌다.

우파 정치인답게 샹젤리제와 맞닿아 있는

콩코드 화합의 광장에서 화려한 집회를 연 것이다.


2012년 사르코지에 이어

좌파로 권력을 되찾아온 올랑드의 집회는

좌파 대통령답게, '혁명의 상징' 

바스티유 광장이었다.


좌파도 우파도 아닌 

'새정치'를 표방한 마크롱이 선택한 곳은

루브르 박물관의 피라미드 앞 광장이었다.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지만,

새로운 것은 분명했다.

그렇게 마크롱은 프랑스의 25대 대통령,

1958년에 시작된 프랑스 제5 공화국의

8번째 대통령으로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갔다.



2018년, 집권 1년 차


집권 1년 차 여름 내내 회자된 뉴스의 중심은

베날라 스캔들이다

대통령의 근접 경호원인 베닐라가

시위 중이던 시민을 넘어뜨리고 폭행을 가한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르몽드의 기자에 의해 폭로된 이 사건은 

그해 여름 내내 이슈의 중심이었다.

재빠르게 사과하고 사태를 수습하기보다

언론을 질책하며 

엉뚱한 대응으로 일관한 마크롱은 화를 자초했다.

정무감각, 정치적 경험이 없는 

어린 대통령의 서막이자.

새정치의 비극의 시작이었다.




나에게 오라!


"나에게 물어라. 

모든 문제의 책임자는 나다

그러니, 문제가 있다면 

나에게 와라!"


2018년 4월 24 일 대통령궁인 엘리제의 안뜰,

정부 여당 '레퓌블리크 앙 마르쉐'의 하원의원들을 모임에서

단상에 올라선 마크롱 대통령은

언론을 향해 

모든 질문을 자신에게 하라며 소리쳤다.

마치 대선 유세를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정작 언론이 

모든 질문을 대통령에게 던졌을 때,

대통령은 답하지 않았다.

별도의 기자회견도 없었고,

유일하게 기자들이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기회였던

해외순방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 자리에선,

"해외순방 중엔

 국내 사안엔 답하지 않겠다"라고, 

'모르쇠'로 일관했었다.



"MB의 아바탑니까?",

"나는 베날라의 애인이 아니다."

'새정치 주자'들의 닮은꼴


마크롱은 취임 직후부터 언론과 각을 세웠다.

엘리제 궁 안에 있던 기자실을 궁 밖으로 이전시켰다. 

초유의 선택이었다.


기존 언론들과 인터뷰하기보다 

소셜 미디어 게정을 이용해 소통하려 했고

대통령의 이동을 취재한 것은 언론이 아니라

엘리제에서 관리하는 소셜 개정의 카메라였다.

그렇게, 시민들과의 만남은 

그대로 인터넷에 올라갔다.


결과는 참담했다

시민들과 각을 세운 논쟁들이 

여과 없이 전파를 탔다.

언론을 우습게 본 대가였다.


새정치를 주창한 정치 초년병들이 

공통적으로 범하는 실수가 있다.

바로 기존의 관습이나 규칙들을 

낡은 습관이라고 깡그리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참모들의 조언조차도 듣지 않거나,

참모들 역시 같은 사고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실수들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지난 한국의 대선에서

정치 전문가들을 아연실색케 만들었던 한마디는

"제가 MB의 아바탑니까?"라는 모 후보의 질문이었다.

자신에게 불리한 워딩을 직접 말하지 않는 것은 

토론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마크롱도 다르지 않았다.

여당 의원들을 모아놓고 

언론을 조롱하던 자리

마크롱은 언론을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외친다


"나는 베날라의 애인이 아니다!"


누가 대통령 보고 게이라고 했는지 모르지만,

추측만 무성했던 루머였다.

그런데 그 사안을 대통령이 먼저 말해버린 것이다.

이제 언젠가 본격적으로 취재가 들어갈 여지를 

대통령 자신이 열어준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한가하게 

대통령의 사생활에 대한 취재를 이어갈 틈이 없었다.

마크롱의 프랑스는 초유의 다이내믹한 국면으로 

빠르게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권 2-3년 차 노란 조끼



아무리 시위가 많은 프랑스라지만,

아무리 불만이 가득한 국민이 프랑스인들이라지만,

그래서 프랑스의 상징인 수탉처럼, 

쉼 없이 정부를 쪼아댄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매주 토요일에 1년여에 걸쳐 

42차례 집회가 이어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것도 그 발단이 겨우 유류세 인상이라는 것 역시

프랑스 정치사에선 처음 있는 일이다.


매주 토요일 프랑스의 번화가의 상징 

샹젤리제는 화염에 쉽사였다.

고급 상점과 고급차 모든 부의 상징은 공격받고 파괴됐다.

부유층은 악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부자들의 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부유층으로 향한 것이다.


시위대의 분노는 경제 권력만 공격하지 않았다.

프랑스의 상징인 파리의 개선문에 돌이 날아들었다.

꺼지지 않는 무명용사의 묘마저 짓밟혔고,

개선문 내부에 마리안 동상은 파괴됐다.


불을 지른 것은 기름이 아니라 정부였다.

유류세 인상에 분노하는 시민들에게

환경부 장관은 '환경정책'을 설파하며

전기차를 사면 4천 유로 가까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고 충고했다.

단 몇 센트 싼 주유소를 찾아다니는 

시민들은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그 환경부 장관이 

하원의장 시절 공관 만찬에서

바닷가재를 곁들인 만찬을 

지인들과 갖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만찬에 등장한 포도주는 병당 450유로짜리 였다.


시위대의 폭력 방화에도 불구하고, 

노란 조끼 시위에 대한 지지율은 70%를 넘어섰다.


대형 가재가 등장한 하원의장의 만찬, 공식 만찬이 아닌 사모임이었다.



노란 조끼 사태에 대한 대응 역시 

베날라 스캔들과 같았다.

빠르게 사과하고 

바짝 엎드리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대통령은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반박했다.


어린 대통령은,

마치 모든 사안과 모든 자리에서 

자신이 어리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보였다.



"내가 너희들의 수장이다."


2017년 7월 13일, 

육해공 프랑스 군 장성들 앞에서

대통령의 일갈이었다.

당시는 군방 예산 감축과 관련한 

내부의 반발이 붉어지던 시점이었다.

대통령의 발언 직후 

프랑스군 최고 사령관이었던 

합참의장은 군복을 벗었다.

군을 떠난 합참의장은 책을 출간했다.

그의 팬이 겨눈 곳은 

적국이 아니라 마크롱 대통령이었다.


군 통수권자로서 

군의 '신뢰'를 얻는 것은

'정치 초년병' 마크롱에겐 

너무 무리한 일이었을까?



"아마추어 정부다."


미테랑 시절부터 정치평론을 해온 

알랭 뒤마엘이 내린 '결론'이었다.

모든 뉴스를 집어삼키고 있는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

그리고 마크롱 정부의 대응을 

지켜보던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도 

마크롱 대통령과 젊은 정부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전쟁터처럼 피가 튀기지는 않지만,

전장을 방불케 하는 

국제 금융업계와  M&A,

적대적 인수합병의 시장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

'돈'과 '자본'을 목표로 한 

'승부'에 길들여진 대통령은

어떤 승부에서도 

패배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아마추어리즘을 즐겨라!"


아마추어 정부라는 일각의 비판에 대한 

대통령의 대답이었다.

자신과 같이 , 

정치 경험 없이 정가와 국정운영에 뛰어든

여당 하원의원들과의 자리에서 

대통령이 던진 말이다.


"아마추어 시절을 즐겨라"

고리타분한 기존 정치꾼들 우린 다르다!

마크롱과 일군의 세정치 세력들이 가진 

유일한 우월감이었다.

이를 바라보며 한 원로 정치인은 


"나라가 한 줌의 엘리트들 손에 놀아나고 있다."

라고 탄식했다.


Emmanuel Macron aux députés LREM : «Soyez fiers d’être des amateurs»

Emmanuel Macron이 LREM 대리인에게 : "아마추어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십시오"

(구글 번역)

https://www.leparisien.fr/politique/soyez-fiers-d-etre-des-amateurs-emmanuel-macron-veut-regonfler- ses-troupes-blessees-11-02-2020-8257983.php


"아마추어가 된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라"는

대통령의 외침에,

대통령과 정부를 '아마추어 정부'라고 비판했던 

알랭 뒤마엘의 심정은 어땠을까?

1980년대의 미테랑에서 시작해, 

우파의 시라크와 사르코지, 

좌파의 올랑드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제5 공화국의 공과 과를 

모두 보았던 노정치 평론가가 분노한 지점은

'정치적 성향', '이념의 좌표'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가장 기본적인 '역량', 

'능력'의 문제였다.


그 이전의 정부에 미치지 못하는 

'새정치'의 마크롱의 여당을 향한

'국정운영'에 대한 '쓴소리'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40여 년을 정치 비평을 해온 노 비평가는

더 이상 마크롱과 그의 정부를 두고

'아마추어 정부'라고 비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마추어 정부라고 비판한 정부를 일으켜 세워

국난을 해쳐야 하는 상황이 왔기 때문이다.

바로 코로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집권 3년 그리고 4년 차 -코로나


유럽의 첫 확진자는 프랑스에서 나왔다.

우한 공항이 폐쇄되며 

마지막으로 이륙한 에어프랑스가

파리에 도착했지만

어떠한 조치도 없었다.

대통령과 정부는 

코로나보다 지방선거에 집중하고 있었다.


정부를 앞장서서 비판했던 알랭 뒤마엘의

어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정부를 부축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미우나 고우나,

이 정권이 나라를 이끌고 있으니 

국민들의 생명과 안위를 위해

정부를 응원해야 했던 것이다.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좋은 소식도 없는 코로나 정국에서

언론의 보도는 눈물겨웠다.

꾸준히 3만 명대의 확진자가 발생하는 것 마저도

'안정세'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이 지금의 프랑스다.


마크롱의 새로운 시대는

코로나를 만나 더욱 새롭게 쓰이고 있다.

2021년 4월 23일 11시 34분 현재

프랑스의 총확진자는 536만 7천544명

총사망자는 10만 1천498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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