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일상을 그리는 시지프, 프로젝트, 소년이 온다.
Allegri: Miserere mei, Deus
미제레레.
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뜻의 장중한 곡.
알레그리가 작곡한 이 곡은 악보가 없었다.
너무 신성해서,
로마의 시스틴 성당 안에서만 불려져야 했기에.
악보가 없었다.
신동 모차르트.
아버지 레오폴드의 손을 잡고, 시스틴 성당에 들어서서,
웅장한 미켈란젤로의 벽화와 함께 성당에 울려 퍼지던 알레그리의 음악을 듣게 된다.
그 선율은 그대로 신동의 머릿속에 새겨지고,
성당밖을 나와 악보에 옮겨 적는다.
교황은 벌하지 않았다.
모차르트의 재주는 천재, 하늘이 주신 재능이었기에,
주님이 주신 것을, 주님의 대리자가 뭐라고 할 수 없었던 거였다.
그렇게 알레그리의 미제레레의 악보는 세상에 전해졌다.
아침마다 미제레레를 들으며, 더 가디언의 타이틀 기사를 적는다.
일기처럼 옮겨 적는 그 작업엔, 그날의 일들이 적혀있다. 지구 저편에선 사람들이 죽어가고 나는 그날 장 볼 것이나 그릴 것들을 메모한다. 아무리 도덕적인 이야기를 떠들어본들, 나 또한, 무기력한 공범이었다.
지난해부터 가자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주여, 어디에 계시나이까?
오늘도,
이스라엘은 공습을 중단을 명령했는데, 가자지구의 공습은 계속된다는 소식이 가디언지의 타이틀이었다. 말이, 언어가, 약속이 의미가 없어졌다.
주여 어디에 계시나이까.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도 시스틴 성당 밖으로 나와 세상에 울려 퍼지며,
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쳐대는데,
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당신의 대리자인 교황도,
왜 가자에 대해선 행동하지 않습니까?
나치에 침묵했던 당시의 교황처럼,
왜 가자엔 침묵하십니까?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를 들으며,
소년이 온다 필사작업을 하려 했다.
그러나,
처음으로 미제레레의 선율이, 기도가.
사치처럼 느껴졌다.
거리에서 저렇게 사람이 죽어갔는데,
교회 안에서 신성하게 울려 퍼지는 성가조차도 사치처럼 느껴졌다.
한강의 이야기를 덮는 성가조차도 '장식'처럼 느껴졌다.
그저, 펜 끝이 종이에 닿으며 사각거리는 소리만으로 충분하게 느껴졌다.
그것이 오히려 기도 같았고, 추모 같았다.
주여,
어디에 계시나이까
거리에서 저렇게 사람들이 죽어갔고,
지금도 죽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e_U_TzZ1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