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본 세상
1991년이었다.
종이신문의 (지금 동남아에서 계란판재료로 각광받는 종이신문) 위세가 대단하던 시절, 1면 머릿 기사로 걸프전 공습 보도를 본 것이 1991년이었다. 당시 공습장면은 미국 CNN의 전파를 타고 생중계됐다. 영상은 마치 게임과 같았다. 거기엔 사람도 없었고, 핏방울도 없었다. 잘린 팔도 없었고, 갈라진 배를 타고 흘러나온 내장도 없었다. 그냥 깔끔한 게임 화면이었다. 불꽃놀이를 방불케 하는 미사일을 불꽃들, 날아가는 토마호크 미사일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거기엔 '죽음'은 전혀 없었다.
이 전쟁을 두고, 쟝 보드리야르는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의 이론, 시뮬라르크니 시뮬라시옹이니, 이런 어려운 이야기들을 모두 차치하고, 그 책의 제목하나로 충분했다.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 일상에선 '전쟁'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여겨졌다.
전쟁을, 서바이벌 게임 하듯 하는 우리 시대가 무서웠다. 전쟁만큼 무서웠다, 그렇게 화면에서 총질을 해대는 아이들이 무서웠다. 그 아이들은 죽음이 무언지 모른 채, 자신의 죽음의 순간에 죽음을 직면하게 될 텐데, 그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러시아 우크라이나전에 투입된 드론병사는 방 안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듯 전쟁을 치른다. 그들에겐 전쟁이 '실재' 일까?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보드리야르의 '비약'이 현실이 된 시대, 보드리아르의 책이 등장하던 영화 마트릭스의 이야기는 이미 식상해졌다. 걸프전은 여전히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우크라이나 전도, 가자의 학살도 현실엔 없는 것처럼, 역사는 참상은 살인은, 화면 속에 '이미지'속에 소비된다. 그냥 방송의 한 '화면'으로 스쳐 지나간다. 그 총알이 나에게 박히지 않는 이상, 폭격으로 내려앉은 콘크리트아래 내가 깔리지 않는 이상, 우리에게 그 참사들은 '가상현실'처럼 취급된다.
오늘로 내란이 1년을 맞았다. 그러나 마치 내란은 없었던 것처럼 영장은 기각되고, 내란의 주범은 혐의를 뻔뻔하게 부인하며 일본 언론과 인터뷰를 한다. 이 풍경을 지켜보며, '피'가 튀지 않았다고, '사람'이 다치지 않았다고, '내란'은 없었던 것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가고 있다.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 내란으로 사람들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 있었다는 사실, 광주처럼, 여수처럼, 제주처럼, 가족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도 끝나지 않았다. 그런 시도인 내란이 자행된 지 1년이 되는 오늘, 사법부는 내란 종사자에 대한 영장기각했다. 그들에겐 '내란'이 '범죄'라는 인식이 없는 듯했다. 그들은 '부끄러움'도 없는 듯했다. 그들은 그 판결을 통해 자신들이 '내란 재판부'임을 증명하며, 어째서 '내란 전담 재판부'가 필요한지를 스스로 보여주었다.
사법부가, 그 안의 일부가 내란을 지속하려 한다면, 나치의 전범을 목숨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쫓듯이, 그 내란의 모든 무리들은 잡아야 한다. 또 다른 '희생자'를 막기 위해서.. 그리고 이것은 아주 늦은 일인지도 모른다. 반세기 전에 실패했던 반민특위가 이제 겨우 첫발을, 진정한 첫발을 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잘못 채워졌던 역사라는 옷의 단추를 처음부터 다시 잘 맞게, 첫 단추를 채우는 일일지도 모른다.
무고하고 선량한 이들이 지켜지기를,
무도하고 사악한 이들이 처벌받기를,
https://www.youtube.com/watch?v=Frmr5gNGvCw
https://www.youtube.com/watch?v=l3pLl11BeA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