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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가 먼저일까? 규제가 먼저일까?

파리에서 본 세상

#01 음악축제의 밤


지방에서 파리로 처음 올라온 해 여름. 그 여름밤  중 잊을 수 없었던 날은 바로, '음악축제'날 밤이었다. 프랑스의 음악축제는 1982년 자크 랑 당시 문화부 장관(현 아랍 문화원 원장)에 의해 만들어졌다.


단순히 음악축제라고 해서 몇몇 대형 콘서트가 열린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물론 파리를 비롯한 주요 대도시의 콘서트 홀은 물론 대형 광장, 시청 앞 광장에서 대규모 콘서트가 열린다. 그리나 시내 중심가의 카페와 식당들이서도 저마다 밴드를 초대해서 공연을 한다. 길 골목골목에서도 나 홀로 피리를 부는 시민까지 볼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음악 축제'인 셈이다.


당시 내가 살던 옥탑방 건물 옆에는 작은 사설 디자인 학교가 있었다. 학교 밴드로 보이는 일군의 젊은이들이 밤새 공연을 이어갔다. 자정이 지나고 1시를 넘기고 2시가 넘도록 음악이 멈추지 않았다. 조용하지도 않은 헤비메탈 음악이 밤새 골목에 울려퍼졌다. 건물 7층 내 스튜디오 앞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더워서 창을 닫을 수도 없었다. 낭만적인 분위기의 음악축제, 전 국민을 음악으로 빠져들게 한다고 나름 칭찬했던 이 행사가, 그날밤 나에겐 정말 너무나 곤욕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항의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음악축제이니 의례 그러려니 한다고 해도, 늦은 시간까지 저렇게 공연을 이어가는 아이들을 두고 누구 하나 "이제 그만 잠 좀 자자!"하고 소리치는 사람 하나 없는 것이다. 밤새 잠 못 드는 내가 당시 심각하게 했던 생각은 이것이었다.


"자유가 먼저인가? 규제가 먼저인가?"


저렇게 자유분방하게 노래하는 프랑스 청년들을 보며, 심지어는 비단 음악축제가 아니어도 너무 자유스러워 방종에 가까운 이 프랑스인들의 문화를 보며 대체 저렇게 '방종'에 가깝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과연 잘하는 일일까? 프랑스 사회를 겪으며 느꼈던 궁금증이 그날 밤 폭발한 것이다.


그랬다. 프랑스는 사회를 뜯어보면, 알게 모르게 '제약'이 존재하는 나라지만, 그럼에도 '규제'보다는 '자유'가 먼저인 나라다. 중앙선이 지워진 도로도 많고, 차선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며, 그 무엇보다 무단횡단은 온 국민의 일상이다. 오죽하면, 2차 대전 때 파리를 점령한 나치의 첫 번째 포고령은, "길은 지정된 장소로만 건널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지켜지지도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파리 시민들, 프랑스 인들은 여전히 건너고 싶은 곳으로 건너고, 파란불을 지키는 것보다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만 확인한다.


그렇게 잠을 들지 못해 힘들었지만, 저렇게 밤새 노래를 해대는 녀석들이 죽도록 미웠지만, 내가 얻은 결론은 '규제보다는 자유가 먼저'라는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규제를 먼저 하다 보면, 상대방의 자유로운 행동이 나에겐 방해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을 만나지 않는다. 일견 그것은 좋아 보이지만, 다시 말해서 불편을 미연에 방지해 주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렇지가 않다.


자유로운 행동을 보며 내가 불편을 느꼈다면, 나는 다음에 저런 행동을 할 때 조심한다거나 하지 말아야겠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그런데 그것을 규제로 그냥 막아버리면 그런 판단 없이 정해진 대로 가게 된다. 또 그것이 방해라고 느낄 수 있는 가능성조차 애초에 사라진다.


무단횡단도 마찬가지의 문제였다. 일본에서 공부하신 이우환 선생이 언젠가 강연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한 일본 신문 논설위원이 아이를 데리고 길을 건너려는데, 빨간불이지만 차가 오지 않아서 길을 건넜다. 그런데 옆에서 그 장면을 본 한 일본 어르신이 그 논설위원을 심하게 나무라셨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빨간불인데 무단횡단을 아이 앞에서 했다고 나무라시며, 아이에게 무얼 가르치냐고 마구 화를 내셨다는 것이다. 그 논설위원은 그 노인의 호통을 들으며 일본의 미래가 참으로 어둡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신호체계는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만든 것인데, 차가 오지 않으면 건너도 되는 것은 인간의 판단의 문제인데, 그 판단도 못하고 그저 인간이 만든 시스템에 귀속되어버리고 만다면 인간의 머리는 무엇에 쓰겠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우환 선생은 인도 컴퓨터에 대한 일화도 이야기도 하셨다.


"컴퓨터는 인도 컴퓨터가 가장 좋던 시절, 인도와 한국 그리고 일본의 컴퓨터 설명서를 보면, 두께가 차이가 난다. 인도 것이 가장 얇고 중간이 한국, 그리고 가장 두꺼운 것이 일본 설명서였다. 그 이유는 인도는 가장 기본적인 것만 적혀 있었고, 일본은 사사건건 한 것까지 모두 세세히 지적해 두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그 둘 사이였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두 세세히 지정해둔 일본의 문화는 그러한 이유 때문에, 스스로 판단하는 습관이 없다."


이우환 선생의 일화를 들으며, 내가 봤던 한 장면도 생각났다. '이경규가 간다' 일본 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심야에 아무도 없는 거리, 몰래카메라를 숨겨두고 시골 한적한 도로의 빨간불에 몇 대의 차가 서나 몰래 테스트를 하는 장면이었다. 예상데로 모든 일본차는 신호를 지켰다. 그런데 놀랍게도, 새벽길을 지나던 폭주족의 오토바이마저도 신호를 지켰다. 나는 생각했다.


'일본은 정말 심각하네.. 폭주족마저도 폭주족으로서의 정체성이 없네..'


그날 밤 음악축제로 인한 '불면의 밤' 동안 이런저런 생각으로 하며, 내가 내린 결론은, 아무리 불편해도 '규제'보다는 '자유'가 먼저인 것 같다.. 였다. 아무래도 '판단'을 해야 하니까..  


가장 아름다운 대로라는 샹젤리제 거리에 가면 그 끝에 개선문이 있다. 그리고 개선문을 중심으로 12개의 대로가 놓여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 12개의 도로가 교차하는 원형 교차로엔 신호등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유일한 규칙은 '우측에서 진입하는 차량이 '우선'한다.'이다. 신호등이 하나도 없지만, 그 원형 교차로는 차량들이 서로 밀고 당기며 자연스럽게 운영된다. '규제'가 아니라 '판단'을 통해 가장 이상적인 시스템이 구축된 현장이다.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사회가 점점 각박해져서인지, 프랑스도 점점 더 '자유'보다는 '규제'가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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