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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라제네카와 조국
그리고 이스라엘 가자 공습

파리에서 본 세상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 백신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기대와 함께 우려되는 대목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이 백신이 '수익'을 목표로 하지 않고 있다는 지점이었다. 엉뚱한 생각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당시의 상황을 비추어보면, 나는 그것이 되려 '우려'스러웠다.

 

코로나가 전 세계를 덮친 상황이었다. 마스크와 테스트로는 한계가 있었고, 상황이 급박해진 나라들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동을 제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동을 제한하니 '경제'가 죽어가고 있었다. 미국의 제약회사들은 백신 개발에 뛰어들었다. 제약강국인 프랑스는 오히려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백신 개발에 미온적이었다. '경험'이 되려 '독'이 된 경우였다. 그러나 실제로 백신이 1년이라는 '단시간'에 개발된 사례는 없었다. 동물실험을 거쳐 1상, 2상, 3상, 임상실험, 그리고 다년간의 시험접종을 거친 후에야 사용되는 것이 백신이었다.


전 세계의 이목이 백신에 집중되어있는 상황에서 만약 개발만 된다면 '돈방석'에 오르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리고 백신 개발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할 즈음, 가격이 낮지 않을 것은 당연한 예상이었다. 공급보다 수요가 폭발적일 만큼, 선주문을 위해서 '웃돈'을 얹어주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도 쉽게 예측 가능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백신의 원가만 받고 공급하겠다'라고 나왔다는 것은 '의외의 선택'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만약, 백신 경쟁이 치열해진다면, 돈을 벌기 위해 나선 백신회사들에게, '아스트라제네카'는 '미운 오리'임이 분명해질 것이었다.


분명 아스트라제네카의 임상실험에서 몇몇 실수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여기서 세세히 열거할 수 없지만, 임상 실험 단계의 실수들로 인해 '허가'가 지연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실수'와는 별도로 '아스트라제네카'에 대한 '우려 보도'가 차곡차곡 쌓이며 '불신'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엔 아스트라제네카의 CEO의 '소득'관련된 기사까지 나왔다. 그것도 프랑스 경제 전문지였다. 화이자나 모더나의 CEO들이 올린 수익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는 본 적이 없었다.


아스트라제네카에 대한 끊임없는 '태클'을 보며 난 조국 전 장관이 떠올랐다. 난 '조국 사태'라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태'의 국어사전적 의미는 사태 事態 1. 벌어진 일의 상태나 일의 되어 가는 형편 2. 어떤 행위를 하는 개체에 영향을 미치는 각 순간의 환경이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벌어진 조국 전 장관을 둘러싼 온갖 수사와 논란의 주체는 조국 전 장관이 아니라 '검찰과 언론'이다. 따라서 '사태'라는 말을 써야 한다면, '검찰의 과잉수사 사태' 라거나, '언론과 검찰의 협업 사태'가 차라리 '적확'할 것이다.


다시 아스트라제네카와의 비교로 돌아가서, 아스트라제네카에 대한 끊임없는 태클과 오늘도 새롭게 '조국 전 장관 엮어 넣기'를 이어가고 있는 '채널A''의 보도를 보고 있자면 떠오르는 단어는 딱 하나다. Mercantilism. 

바로 '메르캉틸리즘'이다. 


점잖게 번역하면, ' 상업주의' '경상 주의'이고,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돈벌이 제일주의' '돈벌이 중심주의'다. 이 '돈벌이 제일주의' 돈벌이 중심주의'에는 '인간에 대한 예의'도 '생명에 대한 존중'도 없다. 그저 돈을 많이 벌어서 잘 먹고 잘살자는 '욕심'밖에 없다. 


자신들이 만든 백신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제약회사들과 그들의 로비에 아주 '은밀히' 장단을 맞추는 '서방 언론'들과, 자신들의 기득권을 어떻게든 유지하기 위해 '백신 불신'에 불을 지르는 '한국의 기레기들', 이들 모두를 '관통'하는 단어 역시 '메르캉틸리즘' 돈벌이 중심주의다. 


조국 장관에 대한 끊임없는 '린치'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새롭게 인정을 받고 살길을 되찾기를 바라기 보다, 어떻게든 현 정권의 연장을 막아 자신들의 이익과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이들의 욕망. 그 추한 욕망으로 한 인간과 그 가족에 대한 끊임없는 '폭력'을 가하는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단 하나, 너무나 간명하고 초라한 '메르캉틸리즘' 돈벌이 제일주의이다.


백신에 대한 불신은 아마도 쉽게 잡히지 않을 것이다. 조국 전 장관에 대한 '폭력'역시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가장 쉽게 물드는 것이 바로 '돈벌이 제일주의'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돈의 힘'이란 것이 참 세기 때문일 것이다. 권력에의 욕망도 자본의 욕망도 '양심'과 '도덕'으로 끄기 힘든 '불'일지도 모른다. 마치 10년째 그 불이 꺼지지 않고 오염수만 쏟아내는 후쿠시마 원전처럼 말이다. 그 후쿠시마 조차도 '돈'좀 아끼려고 '낮게'지었다가 그 사달이 난 것이 아니던가... 인간의 눈을 멀게 하는 '돈'의 힘이 참 무섭다...


가자의 공습이 일주일을 넘기고 있다. 오늘 보도로는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는 '공습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감옥'에 가야 할 '비리 총리'가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 벌이는 전쟁이라고 어느 누구도 입도 뻥끗 못하고 있다. 그렇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계속 '갇힌 채' 죽어가고 있고 '인류'는 여전히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돈과 권력 앞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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