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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이 강한 이유 (1/3)

파리에서 본 세상

김어준이 강한 이유 (1/3) 


코로나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해 10월, TBS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으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담당 작가분이 인터넷에서 과거에 쓴 프랑스발 기사를 보고 문의를 해온 것이다. 사전 인터뷰 형식으로 통화를 했다. 교통방송이어서 ‘설마 뉴스공장일까?' 했지만, 다른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코로나 관련된 프랑스의 대응에 대단히 비판적이었던 나는, “제가 인터뷰하면 방송 사고 납니다.”라고 한번 고사를 했지만, 결국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인터뷰를 수락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한국이 프랑스보다 얼마나 잘 대처하고 있는지, 한국 정부와 한국 국민이 너무나 잘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 당시 한국 언론은, 아니 지금까지도, 잘하고 있는 정부와 최선을 다하는 의료진, 방역 종사자들을 깎아내리기에 바빠 보였다. 백신에 대한 불안감 조성도 마찬가지다. 확진자수가 수백 배 많이 이곳과 비교하면 한국은 정말 잘하고 있는데, 기가 막힌 일이었다.


그런데 인터뷰를 앞두고 프랑스에서 사건이 발생했다. 테러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방송이란, 늘 시의성과 화제를 따라가기 마련, 인터뷰를 코앞에 두고 주제가 바뀌었다. 막판에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마크롱 정부의 테러를 대하는 자세에 대한 비판 지점이 차고 넘쳤던 터라, 주제 변경을 수용했다.


역력한 어색함 속에 첫 인터뷰가 진행되고, 테러와 관련된 프랑스 정부의 대처가 ‘신중하지 못하다’고 비판하던 나는, 인터뷰 전 주말에 본 기사를 예로 들었다. 당시 기사는 일요일 저녁에 올라왔는데, 테러 용의자들의 트위터 계정을 ‘지지’한 트위터 사용자들을 조사하겠다는 내무부장관의 발언에 관한 기사였다. 당시 기사를 읽던 나는 ‘이건 아니다, 아예 감시체제로 가겠다는 것인가?’라고 분노했고 이를 인터뷰에서 그대로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그쳤어야 했는데 한발 더나 갔다. 결과적으로 잘못 나간 셈인데,. 비슷한 시기에 보았던, 미국의 사례를 예로 들며 프랑스를 다시 비판했다. 미국의 사례란, 총기 난사 범행을 저지른 청소년에게 수만 달러의 기부금이 모였다는 기사였다. 이런 이국의 사례를 이야기하며, “이 계좌에 돈을 보낸 사람들을 FBI가 조사하겠습니까? 미국도 그런데, 프랑스에서 더 경솔하게 상황을 대처하고 있는 것이죠.”라고 덧붙여버렸다. 


“언론은 문학적 욕심을, 문학을 하겠다는 유혹을 뿌리칠 줄 알아야 한다.” 언젠가 유시민 작가께서 이런 맥락의 지적을 하신 기억이 난다. 난 인터뷰 당시, 테러 지지자를 조사하는 프랑스의 사례와, 총기 난사범에게도 후원금을 보내는 미국의 사례를 비교하면 더 멋진 분석이 될 것이라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것이었다.


같은 시기,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프랑스 테러 사건을 다뤘다. 이슬람 전문가이신 이희수 교수께서 출연하셨다. 한국 언론을 넘어 이곳 언론에서도 듣기 어려운 진지한 분석이었다. 프랑스의 관점이  아닌 '이슬람 관점'에서 당시 테러 사건을 분석한 것이다. 그러나 내 귀를 때린 것은 김어준의 말이었다. “나는 쿨리발리인 거 같아 라고 표현했던 프랑스의 코미디언이 있었어요. 표현의 자유를 인정한다면 이것도 인정해줘야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은 잡아갔어요. 테러범을 지지한다고.”  이것은 몇 해 전 파리에서 벌어진 테러 당시, 테러의 주범이었던 쿨리발리에게 '동질감'을 느낀다는 트위터 올린 디외도네라는 아랍게 프랑스인 코미디언이 '실형'을 선고받은 사건을 이야기한 것이다. (관련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P_QnkQd5-lc )


난 몰랐었다. 트위터에 '좋아요'만을 눌러도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법 조항이 프랑스에 존재한다는 사실과 디외도네가 실형을 받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 내가 인터뷰에서 미국과 비교하며 이곳을 비판했던 것이 '오보'는 아닐지 몰라도 현지 통신원이 '프랑스에는 테러 지지의사를 밝히는 것만으로도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 그 '팩트'를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20년을 프랑스에 살았고, 아르바이트이기는 하나, 15년 가까이 통신원으로 활동했으며, 한때 취미가 프랑스 뉴스 보기 일정도로 프랑스 정치 사회 이슈에 밝다고 자부했었는데, 나는 모르고 있었다. 반면, 일 년에 한 번씩 프랑스에 휴가를 온다고 하는 한국의 한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장담할 순 없지만, 적어도 디외도네라는 프랑스 만담 코미디언을 아는 한국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언론인들 조차도, 특파원 정도가 아니라면 모를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이 실형을 받았다는 사실, 그리고 프랑스에 이런 테러 지지 방지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아마도, 그 기사를 썼을 통신사 특파원 정도를 제외하고 아는 사람은 거의 전무할 것이다. 내가 한 발언들을 뜯어보면, ‘오보’는 아닐 수 있었으나, 내가 그 법령의 존재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인터뷰였던 셈이다. 나는 속으로 ‘뉴스공장’ 인터뷰는 물 건너갔구나, 난 소위 ‘급’이 안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한 분야를 오래 공부하거나 관심을 같다 보면, 한두 가지 사실로, 그 사람이 어디까지 그 분야를 알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지표'가 드러나게 마련이다. 내가 경험한 뉴스공장과 김어준의 프랑스에 관한 상식과 정보의 수준은 깊고 정확했다. 김어준, 그리고 뉴스공장이 강한 이유는 그것이었다. 정보력과 그 깊이. 


99% 가까운 언론들이 뉴스공장의 조그만 실수도 가만두지 않을 그런 정글과 같은 상황에서 최고의 수준의 패널들을 초대해서 최신의 정보를 공유한다는 것. 그것이 김어준이 강한 첫 번째 이유다. 물론 나꼼수 이후 존재하는 열혈 지지층에 의한 떠받침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알파'가 필요하다. 그리고, 정치적 성향을 떠나 대중의 인기를 모은다는 것, 지금처럼 청취자나 시청자로 대표대는 대중의 취향, '전대미문의 경쟁'속에 올라갈 데로 올라간 그 '취향'을 충족시킨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엊그제 2021년 서울 경기도 지역 라디오 청취율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다시 한번 뉴스공장은 1위를 기록했다. 청취율은 더 올라갔다. 극우 정치인들의 '뉴스공장 죽이기'가 오히려 지지율을 더 올려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한 극우 정치인의 뉴스공장 죽이기 발언,  "교통정보나 전달하라."는 무지한 발언은, 반대로 "왜 뉴스공장과 김어준이 '필요한'가?"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게끔 해주었다. 


-파리에서 본 세상

다음 글 : 김어준이 필요한 이유 (2/3)

ps > 브런치 키워드에도 김어준이 없다. 교통방송도 나꼼수도 그 어떤 키워드도 없다.

카카오나 다름. 브런치도 역시, 정치적으로 편향된 것인가? 

불공평한 세상에 살고 있다... 갈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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