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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스트로와 피아노

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주인공은 지휘자였다. '강마에'. 이름이 '마에'가 아니라 극 중 인물이 '강' 씨였고  마에스트로(지휘자)와의 합성어였다. '애칭'인 듯 보이지만, 극 중 스토리에선 그야말로 '악마'에 가까운, '괴팍한 지휘자'의 끝판왕이 바로 '강마에'였다.


그런데, '베토벤 바이러스'와 같은 성향의 지휘자들이 실제로 존재했었다. '단원들과 법정 분쟁까지 갔던 토스카니니가 그러했고, 모든 곡을 암보로 연주했던 카라얀 역시 어마 무시한 '카리스마'의 소유자였다. 동성애자이면서 '버니'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했던 레너드 번스타인 역시, 늘 쾌활하고 유머러스해 보였지만, 몇몇 리허설 영상을 보면, 오케스트라 단원은 물론 호세 카레라스 같은 세계적 테너까지 쥐 잡듯이 잡는  모습을 보면  오금이 저린다. 때로는 단원들을 인간 취급 안 하는 것처럼 보일 때는, 정말이지 사람처럼 안보일 지경이다. "자네 부모님이 자네를 낳은걸 후회하셔야 될 걸세!" 실수한 단원에게 명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날린 독설이다. '똥떵어리' 발언으로 유명세를 치른 극 중 강마에의 대사 못지않다. 드라마가 현실에 존재하는 셈이다.


남자들의 3대 로망을 '프레지던트(President, 대통령), 제네랄(General, 장군) 그리고 마에스트로(Maestro, 지휘자)라고들 한다는데, 내가 보기에 이중 가장 고약한 캐릭터가 마에스트로가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셋 중 가장 어려운 자리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좋은 인재를 가려  쓸 줄 알면 된다. 모든 분야를 대통령 혼자 다 알 수 없다. 최근 어떤 대권 지망생이 외교다, 반도체다 배우는 모양인데, 배워봐야 소용없다. 대통령이 참모나 각료를 잡는 것은 각 분야의 지식이 아니다. 참모를 '내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정치력과  신뢰이기 때문이다. 장군도 마찬가지다. 참모들은 '신뢰'로 인솔하고 장병들은 '전략'으로 움직인다. 장군이 병사들 하나하나의 역량을 알 필요가 없다. 정세적 큰 그림만 보면 된다. 그런데 마에스트로는 그렇지가 않다.

먼저 단원들과 공부한 분야가 같다. 다시 말해서 단원 모두보다 더 잘 알아야 한다는 뜻이 된다. 단원 하나하나의 능력과 한계를 정확히 가늠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수많은 개개인이 만들어낸 소리를 하나로 모아사 작곡가가 악보에 그려놓은 음악을 완성시켜야 한다.


어떤 단원도 자신의 커리어를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두고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 세계적인 솔리스트의 꿈을 안고 출발해서, 초 극소수의 연주자들만이 솔리스트로 살아남는다. 솔리스트의 길을 걷지 못했다고 해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실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모두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30년까지 한 악기에 일생을 건 연주자들이 바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다. 마에스트로가 처음 부임하면, 그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틀리게'연주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을 꽉 잡아야 하는 게 마에스트로다.


최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신 윤여정 선생은, '모든 감독들이 훌륭하고 대단한 사람들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적게는 사오십 명 많게는 수백 명의 스텝을 자신이 확신을 갖고 있는 방향으로 끌고 나가는 임무를 그 책임을 맡고 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작품을 잘 완성해도 '손익분기점'을 못 맞추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술에 대한 열정'에서 '결과에 대한 책임' 그리고 그런 것들을 깡그리 무시할 수 있는 '배포'까지.. 감독들은 정말 대단한 존재들이다. 마에스트로도 마찬가지다 평생을 음악에 헌신한 단원들을 모두 움켜쥐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로 끌고 가야 한다. 더구나 그 결과에 대해선 오로지 지휘자의 몫이 된다.


그런 마에스트로들이 종종 단원과 같은 연주자로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피아노 앞에 앉는 경우가 그것이다. 모든 마에스트로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지휘자의 길 와중에도 피아노를 놓지 않는 특별한 경우들이다. 대표적인 지휘자가 바로 다니엘 바렌보임이다. 유튜브에서 어렵지 않게 바렌보임의 피아노 연주를 찾을 수 있다. 사실 나는 놀랬다.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며, 운전할 시간이 많아져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들으려 찾던 중 바랜보임이 연주한 전곡을 발견한 것이다. 뿐만 아니었다. 각종 협주곡, 두대의 피아노를 위한 연주곡 등, 바렌보임의 피아노 연주는 거의 피아노 독주자 같았다.


바렌보임뿐만이 아니다. 언젠가 파리로 접어드는 길 들었던 유난히 아름다웠던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은 레너드 번스타인의 연주였었다. 지휘자의 상징처럼 되어있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역시 피아노에 앉아 협주를 한 적이 있었다. 프랑스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해서였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연주한 곡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이었는데, 어려운(기교가 난해한) 1악장과 3악장은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했던 피아니스트가 맡았고, 예의 부드럽고, 느리며, 우아한 2악장만 카라얀이 쳤다. 역시 '멋'내기를 좋아하시는 마에스트로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저렇게 피아노에 대한 마에스트로들의 사랑은 대단히 '유혹적인' 하나의 '로망'인 셈이다. 그러나 아주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로망'이다.


얼마 전, 한국에서 마에스트로 정명훈 피아노 리사이틀이 있었다. 여러 차례의 공연에서 '실수'가 이어지며 언론의 도마에 올랐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전하기도, 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전하기도 참으로 껄끄러운 상황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무리하게 마에스트로를 '상찬'하는 기사들은 민망했다. 심지어 '한겨레'조차도 그런 기사를 내는 것을 보고, 작년부터 한겨레가 보여온 '추락'이 실감이 되기도 했다. 과거에는 '진지하고 정의로왔던 신문'이 한겨레였는데, 이제는 진지하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으며 심지어 실력도 없고 착하지도 않은 듯 보였다.


언론의 무안한 기사들보다 한 유투버의 분석이 더 설득력 있었다. 정명훈 선생이 스스로도 "프로페셔널 피아노 연주자는 아니다."라고 하신 만큼, 연주 공간을 좀 더 작은 소극장에서 관객과 더 가까이 함께 시간을 갖는 데에 더 의미를 두었어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 무리하게 큰 극장과 비싼 입장권을 판매한 공연기획사를 나무라는 요지였다. 그 지적에 난 동감했다. 한국의 고국의 관객들이 '호구'는 아니지 않은가. 1년여의 이동제 한령 동안 피아노를 가까이하신 정 마에스트로의 시간이 담긴 연주는 누가 뭐래도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준비가 안 되었다면? 무리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한국 관객이, 한국의 공연문화는 지정학적으로 동양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을 뿐 절대 수준이 낮지 않다. 최근에 불고 있는 한국의 뮤지컬 열풍을 보아도 그렇고 공연의 수준이나 관객의 수준이 낮지 앉다. 그런데 과연 한국의 그 클래식 공연 주관 업체와 마에스트로는 오히려 한국의 관객 수준을 너무  낮게 본 것은 아닐까? 반대로 그런 공연이 유럽에서 열렸다면 어땠을까? 상상하기도 싫은 광경이다. 그리고 그렇게 상상하기 싫은 광경을 왜 한국의 관객들이 접해야 할까? 마에스트로가 피아노에 앉는 단지 '특별한 경우'라서?


2015년 가수 김연우는 콘서트에서 노래 3곡을 부르고 목 상태가 좋지 않아 공연을 취소하고 전액 '환불'을 해주었다. 11년 전 이소라는 콘서트를 다 마치고도 노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며 입장료를 모두 환불해 주었다. 국내 톱클라스의 대중가수도 이럴진대, 소위 세계적으로 톱클래스의 클래식 뮤지션을 관리한다는 기획사의 공연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되나?


마에스트로는 수십 명의 전문 음악인들을 이끄는 캡틴이다. 그가 한 점의 실수를 보이지 않아도 단원들이 따라올지 말지인데, 허술한 연주를 보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하여, 마에스트로의 피아노 연주는 무척 '멋있어 보이는 작업'이지만,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대단히 '위험한 도전'이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첫회에선 '강마에'의 '성격'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 소개된다. '브람스' 교향곡을 연주하다 말고, "이 연주는 쓰레기입니다. 더 이상 브람스를 욕보일 수없습니다"라고 말하고 공연 중간에 지휘자가 지휘하다 말고 퇴장하는 장면이다. 이런 장면 역시 실제로 존재했다. 피아니스트 호로비츠는 공연이 마음에 안 들면 가차 없이 중단했고, 때론 몇 년씩 잠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나타났을 땐 늘 '최선의 모습'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의 복귀 공연 티켓을 구하기 위해 밤새 카네기홀에서 기다린 한 관객이 호로비츠가 지나가자 "당신의 공연을 보기 위해 어제부터 이러고 있다"라고 퉁명스럽게 내뱆자, 그 관객에게 '감사'를 표하기는커녕, 코앞으로 다가가 "난 이 공연을 위해 2년이나 기다렸소!"라고 쏘아붙였다. 정명훈의 리사이틀 중 장내에 울려 퍼진 스마트폰 소리를 정명훈이 따라치며 '유머러스하게' 반응했다고 언론의 '칭찬'이 대단했다. 안쓰럽다. 이미 '긴장'이 해체 된 공연에서 연주자마저 '전의'를 상실한 모습을 두고 '성숙한 모습'이라니, 그 뒤로 스마트폰의 신호음이 연이어 울려 퍼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연주자가 진지하지 않으면 관객 역시 긴장이 풀어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파리의 우버 운전사



ps 1

마에스트로 카라얀이 직접 협연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단, 2악장만 협연했다. 1악장 3악장은 무리였던 듯...

https://www.youtube.com/watch?v=hRLmz0KS4Gk


ps 2

반스타인이 협연한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2악장

스위스에 가고 싶을 때 이곡을 들으면, 스위스 레만 호수를 그려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d6nbX5XKVk


1,2,3악장 , 전곡

https://www.youtube.com/watch?v=UtQDZaMcl14


ps 3

이 사람은 정말 괴물이다. 그 많은 지휘를 하면서 피아노는 또 언제 이렇게...

뒤프레에게 진 빚, 이렇게 갚는 듯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obDlCfQnF6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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