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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라벨  그리고  브런치

파리의 우버 운전사

모리스 라벨 그리고 브런치 


  


  

페이스북을 통해 브런치에 가입하며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었다. 

아니.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으며 브런치에 가입절차를 밟았다고 해야 하겠다.   

인터넷은 매일 쓰지만,  이런 새로운 환경은 늘 익숙지 않다.   

페이스북을 통할지 트위터를 거쳐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내 트위터에는 늘 글이 아닌 위대한 일상 작업만 올라간다. 

앞서 말한 인터넷의 새로운 환경에 익숙지 않아서, 웹 사이트를 꾸미는 것은 내게 너무 먼 일었다.

트위터는 가장 단순했다. 

페이스 북에도 똑같이 작업을 올리지만 여전히 트위터에 먼저 올렸다 

오늘까지 올라간 그림은 모두 1688개다. 


작업의 제목은 '위대한 일상' 

매일 하나씩 그림을 그려 올리는 것인데 

주로 사건 사고들이다. 오늘의 역사를 그림의 형태로 기록한다고 시작된 작업이다. 

영어로는 'The Great Days (위대한 날들)'. 

불어로는 'Le Quotidien Mémorable' , 번역하면 , '기억해야 할 일상', 정도가 된다. 


10여 년 전 출근길에 거리에 버려지는 신문들을 보며,  

그 안에 묻히는 이야기들이, 사연들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그리기 시작했다.   

풀타임 아르바이트로 작업할 시간은 없었고, 출근길과 퇴근길의 지하철과 버스 그리고 혼자 있는 밤 시간이나 주말이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매일 하나씩 그림을 그리기로 하였지만, 내겐 창의나 창작보다 그저 베끼는 편이 더 적성에 맞는 듯했다. 


 

시를 쓰고 싶었지만 소설을 쓰게 되었다는 작가 공지영의 말이 늘 떠올랐다. 

시는 천재들의 영역이었고, 타고나지 않아도 노력으로 작가가 될 수 없을까? 자문한 끝에 소설가가 되었다는 그녀의 말이 참으로 많이 와 닿았었다.  

공지영은 박경리 선생 역시 시 지망생이셨다고 이야기했다. 

나 또한 그녀의 선택을 보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보다 일어난 일들을 베껴그리는 내 모습을 위안 삼았다. 창의력보다 그저 묵직한 엉덩이와 끈기로 1688개의 그림을 그려온 셈이다. 물론, 참을성 있는 엉덩이 덕분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리던 시간이 내겐 행복한 시간이었다. 천서를 세기던 쉬빙이 '세월을 보내는 좋은 방법을 찾았다'라고 했던 것처럼, 나 역시도 위대한 일상은 내가 택한 내게 가장 맞았던, 삶을 보내는 방법이었다. 


라벨 피아노 협주곡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은 며칠 전 라디오에서 들은 이후부터 귓전을 맴돌던 곳이다. 

애인을 두고 온듯한 애잔함이 묻어나는 2악장은, 어떤 한적한 바닷가, 눈 쌓인 바닷가를 보며, 벽난로에서 책을 읽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처음엔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연주로 들었다. Martha Argerich. 이름이 참 어렵다. 프랑스에선 불어 발음을 그대로 옮기면 막타 아가 리쉬이다.  


난 이 아줌마가 무섭다. '피아노의 여제'라고 하는데, 분명 카리스마는 대단하다 정명훈과의 연주에도 마구 마에스트로를 압도하는 듯했다. 그래서 그녀가 연주한 쇼팽 피아노 협주곡을 나는 싫어한다. 그녀는 마구 휘저어놓고 많다. '그래, 너 이렇게 아팠지'하며 위에서 내려다보고 타이르듯 연주한다. 난 그게 싫었다. 쇼팽은, 미안하지만, 남자가 연주해야 한다. 30대 이전에.. 딱 조성진 나이다. 스타니슬라브 부닌 역시 그 나이 때에 쇼팽 콩쿠르를 우승했다. 


마르타의 라벨 연주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두 번째로 들은 것은 엘렌 그뤼모의 연주였다. 

내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다. 늑대를 키우는 야성이 있지만 인간미가 느껴지는 남자인 듯도 하고 여자인 듯도 한.. 

그녀에 대한 한 잡지의 제목이 '의심 속의 확신.'이었다.  

정반대를 합치하는 헤르메스처럼 , 

여성의 가슴과 남성의 성기를 지민 헤르마프로디트처럼. 그녀는 무언가 이중적이다. 

그 이중성이, 헤르메스처럼 완성에 이르렀는지 아직 모르겠지만. 남성성과 여성성을 오고 가는 그녀의 두 가지 색깔이 분명 흥미로운 것만은 사실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러 가니 글쓰기 좋은 아침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정말 그랬다. 글쓰기 좋은 아침이었다. 

셍 세르낭 성당 앞 카페에서 

카페 아롱제(아메리칸 커피)를 마셨고, 라벨을 들으며 이 글을 썼다. 

원래는 이제 초초고를 정리해야 하는 남프랑스를 다듬을 계획이었는데, 오후나 내일로 미루어지게 되었다. 

좋은 아침이었다. 

이제 아이를 찾으러 가야겠다. 


  


  

Ps 

라벨을 들으며 연주자들만 생각하다가 작곡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에 대해 찾아보았다. 1932년 교통사고를 심하게 당하고 회복하지 못하다 1937년 12월 28일 떠났다고 한다. 그는 1875년 3월 7일 생이다. 오늘이 3월 7일, 그의 생일이다.. 기막힌 우연이다. 오늘은 종일 그의 음악을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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