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죽음,
코로나 시대의 죽음과 무너짐

위대한 일상 2021년 7월 5일

'죽음의 죽음'...

세상에 '죽음'이 너무 '흔해져'버리면, 그 '죽음'자체가 '의미'가 사라져 버린다.

우리가, 우리의 '가까웠던 사람들'의 죽음을 떠올려 본다면,

그 '죽음'이 갖는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금방 생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난 한때 '폭력성'이 두드러진 '한국 누아르 영화'들이 참 싫었다.

'폭력이 만연한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 위한 '예술가들'의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사회 비판'의 의미가 담긴 '폭력적인 장면'들이 오히려 '폭력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오히려 '폭력적인 장면과 그 행위들'에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가 영화 '친구'의 경우였다.

"많이 묵었다 아이가."

칼로 난자당하는 한 인물의 독백이, '유행어' 회자되고,

'개그 코너'에 등장하는 모습을 보며, 나 홀로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정말 미친 세상이구나'

칼로 조금만 베어 보아도 얼마나 아픈지 누구나 알 수 있는 세상에서,

저렇게 난자당하는 장면을 두고 '우스갯소리'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웃어대는'세상이란,

'폭력'에 얼마나 '익수 해진 사회'라는 '슬픈 사실'을 너무 비참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서구의 14세의 청소년이 14년의 삶 동안 텔레비전을 통해 1만 4천 번의 죽음을 본다."

9.11 월트레이드 센터가 무너지는 장면을 앞에 두고,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세르가 우리 시대를 분석하며 했던 말이다. 그렇게 우리에게서 '죽음'은 그 의미를 잃어갔다. '죽음'은 죽었다.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프랑스의 철학자 쟝 보드리아르가 걸프전 이후 한 말이다.

CNN방송을 통해 보도된, 중계된 걸프전 미군 공습의 이미지는 마치 '게임 영상'과 흡사했다.

사람들에게 남은 걸프전이란, 마치 게임의 한 장면처럼 남아있다.

팔다리를 잃은 참전 용사들의 피폐해진 삶도, 아니 이미 현장에서 무참하게 죽어간 파병 군인과

현지의 아프간 용병의 끔찍한 전투도 어디에도 없이, 그저 깔끔한 영상의 첨단무기들의 공습 영상만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코로나의 사망자 숫자가 2차 대전 희생자 숫자를 넘었지만,

어디에도 그 참혹함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파리 거리, 식당의 테라스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로 빽빽하다.

영국이 패하긴 했지만, 유럽컵의 결승을 보기 위해 6만에 가까운 인파가 한 공간에서 소리 지르며 흥을 돋웠다. 코로나 시대에 죽음은 그러게 사라져 갔다.


누군가 떠난다는 것, 영원히 볼 수 없다는 것은, 존재를 흔드는 '상실'이다.

그 '상실'이 의미가 없어진 사회라면,

우린 참 무언가를 크게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무너져 내린 인도의 한 여성의 사진을 보며..

그 무너짐을 다 담을 수는 없겠으나.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명복을..

그리고 사선(死線)에 선 이들을 지키기 우해 사투(死鬪)를 벌이는 모든 의료진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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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_great_days

#thegreatdays2021 le 05 july 2021
#effondrement #무너짐
#코로나 라는 #현실 the reality of #corona
La #réalité du #covid19
The reality of #covid_19
une femme s'effondre alors qu'elle prie avant la cremation d'un parent decede du covid 19 #gauhati #inde
Woman collapses as she prays before cremation of deceased covid 19 relative in #gauhati, #india
코로나19 유가족 화장 전 기도하다가 쓰러진 여성, 인도 가우히티.
곳곳에서 코로나에 대한 경각심이 사라져가는 사이
코로나는 점점더 비현실적인 죽음이 되어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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