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은 암스테르담에 가지 않았다 - 열두 번째 이야기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이 흐르는 장면을 본 것이 새벽이었다.
왜였을까,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동이 트는 새벽이었고, 영화 속 장면은 너무나 평온했었다.
밤을 새우고 적당이 오른 취기에 이제 잠만 들면 되는 편안한 순간이었는데,
서글프게 눈물이 내렸다.
영화 속의 그 평화로운 장면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상했다.
감독도, 그렇게 평화로운 장면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을 테니 골랐을 테고,
무엇보다, 그 장면에서 나왔던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2 악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서정적인 곡이었는데...
그런데 왜 난 그렇게 눈물이 났을까...
이상한 생각이 들면, 찾아보게 마련이다.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의 퀘헬 번호(모차르트의 작품 번호)는 K. 622(K는 퀘헬의 약자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작품인 레퀘임에 K. 626이다.
이 클라리넷 협주곡은 모차르트가 작곡한 마지막 협주곡이다.
죽기 2달 전엔 1791년 10월 초에 완성되었다고 전해진다.
난, 그제야 눈물이 흐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모차르트의 말년, 그에게 드리워져 있던 죽음의 그림자 그리고 피로.
그것은 어쩌면, 살고 싶었기에 그렇게 화사하게 작곡했을,
나를 울게 했던 것은 그 선율 이면에 감추어져 있던 슬픔이었던 것이다.
시간이 한참흘렀다.
휘파람으로 전체를 따라 부를 만큼 클라리넷 협주곡을 들었을 때,
프랑스의 예술 채널 '아르테(Arte)'에서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에 대한 다큐를 보게 되었다.
미셀 폭탈이라는 프랑스 클라리넷티스트가 나오는 다큐였다.
프랑스 시골 고성을 빌려, 15일간 단원들과 합숙하며, 모차르트의 협주곡을 연습하는 내용이었다.
방송 도입부, 미셀 폭탄은 자신도 처음 시도해 보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단순한 음표를 연주하는 것 너머를 이야기한다.
연습을 시작하며, 그는 단원들에게 '극단적인 집중(Concentration extrême)'을 요구한다.
이렇게 우아하고, 낭만적으로만 보이는 이 협주곡을 위해서 말이다.
연습은 시작되고, 클라리넷 솔로와 바이올린이 협주를 이어가던 중, 무엇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바이올린의 연주를 두고,
"여기엔, 어마어마한 고독이 있다. 아직 그 고독이 안 느껴져, 마음에 안 든다."
라고 지적하며,
"바이올린만 혼자 다시 해봐라,
혼자라고 생각하고, 완전히 혼자라고 생각하고, "라고 주문하며, 중얼거리듯 말한다.
"고독이야, 절대적인, 철저히 혼자인! 어마어마한 슬픔이다..."
아직 2악장까지 가지도 않은 상태였다.
문제의 2악장으로 넘어갔다.
단원들과 대화와 토론을 이어가며 모차르트를 찾아간다. 그리고, 말한다.
예의 그 대목,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흐르던 그대 목에 멈춰 서서,
"여기서 우리는 정말 무능하다.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철저히 혼자다. 끔찍하다.
그런데, 음악은 그 이상이다. 철저히 혼자인 것 이상,
이 음악보다 더 혼자일 수 있는 것도, 더 순수해질 수 있는 것도 없을 거다."
번역하기도 힘든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한 말을 이어가다 포기하듯 되뇐다.
"철저히 혼자다..."
난 다시 울었다.
그리고 그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만든 사람들, 그리고 그 배우들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지금도 증오하고 있다.
로버트 레드포드의 지적인 행보 메릴 스트립의 인간성 모두 존중하지만, 그 장면만큼은 여전히 용서가 안된다.
모차르트는 그렇게 아프리카 평원에서 편안히 앉아 그 음악을 들을 수 없었다.
그는 쉴 수가 없었다. 아니 몸은 쉬었어도 그의 마음은 그렇지 못했을 거다.
프랑스의 '아포스트로프(Apostrophes)'라고 하는 전설적인 문학 프로그램이 있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대표적인 친한파 작가인
장 마리 구스타프 르 클레지오(J. M. G. Le Clézio)가 나온 적이 있었다.
대담의 말미에 사회자(사회자는 전설적인 베르나르 피보(Bernard Pivot), 모든 책을 읽고 나오는 것으로 유명했다.)
피보가 묻는다.
"이 신기술의 시대에,
이 책이! 이 가난한 책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책을 내던지듯이 시늉하며, 그만큼 사회자도 독서인구가 줄어가는 현실에 암담해하는 모습이었다.
르 클레지오는 답한다.
"그냥 가난해지는 것이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 사회자가
"그냥 이대로 가난해 진단 말인가?"라고 놀라자, 르 끌레지오는 덧붙인다.
"그냥 가난해지면, 스스로 그 빛을 찾게 될 것이다."
불안한 기색이 가시지 않은 사회자가
"확신하는가?"라고 다시 묻자.
"나는 확신한다, "그리곤 다시 덧붙인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한 말이 아니라 모차르트가 한 말이다.
'가난해지면 스스로 그 빛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난 모차르트가 맞다고 생각한다."
난 나중에 르 클레지오를 만나면 꼭 물어볼 생각이다.
모차르트의 이 말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감사한다.
p.s. 1.
세상이 정말 좋아졌다.
웬만한 영상은 모두 유튜브로 찾아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미셀 폭탈이 단원들과 연습하는 다큐멘터리다.
https://www.youtube.com/watch?v=DkEYHxpmgSM
2부
https://www.youtube.com/watch?v=TI1vtO1yaXY
3부
https://www.youtube.com/watch?v=l5NzC-e9OXk
4부
https://www.youtube.com/watch?v=vByG50nuc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