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은 암스테르담에 가지 않았다 - 열세 번째 이야기
나는 아바도가 그렇게 훌륭한 집안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에게 아바도란, 카라얀 서거 이후 베를린이 선택한 지휘자라는 사실뿐이었다.
카라얀이 차지하고 있던 입지가 워낙 컸던 터라,
그의 서거 이후에 누가 베를린 필을 맡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자연스러웠지만, 무거운 질문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아바도로 결정이 난 것에 대한 객석의 표현이었다.
아바도가 베를린 필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아바도를 택한 베를린 필'이었다.
인상적이었다.
강한 카리스마의 상징인 마에스트로의 자리가
낙점이 되는 것이었다니.. 그것도 단원에 의해서 말이다.
하지만, 지금도 돌이켜보면, 프랑스 텔레비전이 만든 카라얀을 출연했던 특별방송을 보면
공연의 말미에 단원들에게 공손히 말을 건네는 카라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회자가 무슨 말을 했느냐고 물으니,
"여름휴가도 반납하고 연습하는 단원들에게 고맙다."라고 했단다
클래식계에선 황제였던 카라얀이었지만, 단원들에겐 참 공손한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단원들을 휘어잡지 못하진 않았으리라
누구나 토스카니니처럼 엄할 수는 없지만,
그런데, 아바도는 무언가 결이 달랐다.
그는 단원들에게 소리를 들으라고 자주 주문했다고 한다.
아바도의 가장 기억에 남는 모습은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말러의 연주다.
말러는 세상을 사랑한 작곡가였다.
베토벤이나 많은 작곡가 음악가들이 음악을 사랑했다면
말러는 음악만큼이나 세상을 사랑했다.
말러는 카뮈의 말을 떠오르게 한다
"나는 예술 없이는 살 수 없지만,
예술을 삶보다 위에 두어본 적은 없다."
어쩌면 말러도, 음악을 사랑하면서도 고통받는 세상을 향한 시선은 거두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도 희미하게 남아있는 말러가 팔레스타인 해안을 바라보는 사진을 보면.
그가 얼마나 세상을 응시하고 있는지 알 것 같다.
그런 말러의 교향곡이어서 그럴까
루체른 페스티벌에서의 말러의 연주는 하나의 퍼포먼스 자체만으로도 감동이었다
땀을 온통 적시며 1시간 35분의 공연 뒤에 옷매무세를 다듬을 때까지 기다려주던 관객과 단원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 마에스트로는 공연장 전체를 하나로 만들어버렸다.
아바도하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사진은 바리톤 토마스 콰스토프의 손을 잡고 함박웃음을 짓는 사진이다.
아바도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한컷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진은 요즘 찾을 수가 없게 되었다.
아쉽다.
토마스 콰스토프는 난쟁이에다가 팔이 기형인 장애인 바리톤이다.
그의 노래를 듣다 보면, 시각적으로 정상적인 몸이라는 것이 하나도 의미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는 목소리 하나로 우리의 모든 선입견을 녹여버린다.
그리고 그를 향해, 작은 난쟁이를 향해 몸을 숙이는 마에스트로 아바도를 보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진정한 거장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는 훌륭한 마에스트로 이전에 훌륭한 인간이었다.
p.s. 루체른 페스티벌의 말러와 아바도
https://www.youtube.com/watch?v=Rhv5D2-gT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