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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칠리아 바르톨리,
사랑할 수밖에 없는 노력하는 보물

백남준은 암스테르담에 가지 않았다. - 열네 번째 이야기

이탈리아에서 피자 다음으로 유명한 것은?

답은 체칠리아 바르톨리.

신빙성이 있는 문답인지는 모르겠으나,

20여 년 전, 음악 전문지 '객석'에서 체칠리아 바르톨리에 대한 특집기사에 위와 같이 나와있었다.

그렇게 유명한가?

난 그 기사 이후로 이 성악가와 인연이 닿아 자주 접하게 되었다.

정명훈과 브라이언 트러플과 함께 낸 음반은 프랑스에 와서 알게 되었다 1999년의 일이다.


우리는 모차르트를 두고 타고난 '음악 신동'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는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작품을 대단히 빨리 작곡하기도 했지만,

그는 부단한 노력으로 626곡이라는 방대한 작품 리스트를 남기고 떠났다.

타고난 사람이 노력까지 하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


지금 이야기하는 바르톨리는 신동은 아닐지 몰라도 타고난 자질에 그보다 더한 노력을 쏟아붓는 성악가이다.

그녀를 이야기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이유다.

그녀의 데뷔 시절 기라성 같은 소프라노들 사이에 수줍게 주눅이 들어있던 바르톨리가

기라성 같은 선배들의 자리를 꿰찼기 때문에 칭찬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끊임없이 노력하며, 무엇보다 잊힌 작품들을 발굴해 내고 있다

베니스의 비발디의 흔적들, 대중에게 알려져 있지 않던 살리에리의 작품들,

사라진 카스트라토(카운터 테너)의 작품들 심지어 러시아의 잊힌 작곡가들,

내가 2017년부터 즐겨 듣는 바르톨리가 부른 아리아는 작곡가에 대해 위키피디아에도 아직 정보가 없다.


그녀는 쉼 없이 달리고 있다.

언젠가 프랑스 방송에 체칠리아 바르톨리와 프랑스의 간판 소프라노인 나탈리 드세가

나란히 출연한 적이 있었다.

자국의 아티스트를 끔찍이도 아끼는 프랑스의 정서상,

나탈리 드세가 안방에서 출연한 셈이었다.


둘 사이의 관계가 어떠한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날 두 소프라노의 작업관만큼은 철저히 상반된 것이었다.

이제 음악을 즐기기 시작했다는 드세의 행복한 고백을 듣고

바르톨리는 면전에서, 예의 큰 눈을 더 동그랗게 뜨며,

"나는 아직도, 어떠한 순간에도,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은 적이 없다."며 정색을 하고 말했다.

어찌 보면, 너무 야박한 대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앨범 작업과 활동을 보면,

마치 전장에 나가 전투를 벌이는 전사의 모습이었다.

이 음악들을 복원해 내지 않으면 큰일이 날것처럼, 혼신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나탈리 드세와 체칠리아 바르톨리 어느 편을 들고 싶지 않다.

나탈리 드세는 그 이후 자신이 말한 데로 음악을 즐기며 크로스 오버 음반을 잇달아 출시했고

체칠리아 바르톨리는 베니스의 오랜 서고를 뒤져 비발디를 발굴해 냈다.

드세의 음악도 많은 사람들에 감동을 주고 있을 터이니 그녀의 길을 비판할 마음은 없다.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바르톨리의 목표이기도 하다..


바르톨리의 노력을 대중은 외면하지 않았다.

1999년에 발매된 비발디의 음악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당당히 새로운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했으며

이제 앞으로도 많은 성악가들이 바르톨리가 발굴해낸 곡들을 연구하고 또 부를 것이다.


비발디뿐만이 아니다.

살리에리.

영화 아마데우스 때문에 모차르트를 죽게 만들었다는 혐의와 함께 음악사의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살리에리의 음악을 발굴해 낸 것도 바르톨리였다.

가난 속에 죽어간 비발디도, 오해 속에 묻혀 있던 살리에리도,

바르톨리에게 무척 고마워하고 기특해하시고 계실듯하다.


나는 모차르트를 정말 좋아한다.

그러나 냉정히 말하면, 프랑스의 경우 클래식 라디오 채널을 듣다 보면,

모차르트가 너무 많이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쇼팽이나 바그너. 말러. 차이코프스키. 맨델스존. 베토벤. 바흐 등등,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유명한 음악가들의 곡들만 반복해서 방송을 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그들의 음악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훌륭하다.

그러나 바르톨리와 같은 음악의 헌신자들에 의해 새롭게 조명되는 작품들도 더 많이 사랑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역사에 묻혀있는 작품들이 빛을 보게 된다면

그것은 그 작품을 만든 이에게도 또 우리 세대와 미래의 세대에 까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자주 듣게 되는 롯시니나 푸치니 등의 레퍼토리가

마리아 칼라스에 의해 새롭게 조명되었고,

이제 모든 대중의 사랑을 받을 만큼 널리 알려졌으며

엘가의 첼로 협주곡도, 쟈크린 뒤 프레의 연주 덕분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것이 체칠리아 바르톨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녀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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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1.

신들린 듯 비발디를 노래하다. 비바 비발디.

https://www.youtube.com/watch?v=AxwyQZhBlZw


p.s. 2

헨델의 움브라 마에 푸(그리운 나무 그늘 아래)

https://www.youtube.com/watch?v=OdeOyrLHdSg


p.s. 3

헨델 '리날도'중 '울게 하소서'

정말 울게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vhpD5JbChPQ



p.s. 4

카스트라토는 무척 흥미로운 주제이다.

대단히 흥미로운 카스트라토이기에 링크를 남긴다.

지금까지 프랑스의 간판 카스트라토들이 '미성' 아름다운 , 소녀의 목소리라고 한다면,

이 친구는 중년, 고혹한 중년 여성의 목소리다.

엑상 프로방스 페스티벌에서 낮에 자다가 갑자기 호출되어 부른 영상이다.

(복장이 그래서 반바지라고 한다.)

이 영상은 260만 뷰를 돌파하며 화제를 모았다.

다시 비발디다.

애콥 죠세프 오흘린스키.

기억해 두어야 할 카스트라토다. 올해 카네기 홀에 선다고 한다.

천재는 뜨기 마련인가 보다.

역시 귀중한 자산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yF4YXv6ZI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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