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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은 암스테르담에 가지 않았다.

백남준은 암스테르담에 가지 않았다.

백남준은 암스테르담에 가지 않았다


"나는 곧 유서를 쓸 생각이다. 유서의 첫 장에는 내가 예술적 표현능력이 없어지면 나를 곧 암스테르담으로 데려가라! 고 쓰여있을 것이다. 암스테르담에는 안락사가 합법화되어있다. 난 때가 되면 빨리 편하게 죽고 싶다."


이역만리 먼 곳에서 고향을 그리며 눈을 감았다는 소식을 접하고, 다른 이역만리에서 내속에 잠들어있는 그에 대한 기억을 더듬자니, 달랑 책 한 권이 전부이지만, 이곳까지 그 책을 들고 와 지금까지고 버릇처럼 펼쳐 읽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나의 버릇을 생각하면 그에 대한 기억은 내속에서 살아 나를 만들어 왔음도 사실이다.


나는 백남준을 만나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만난 것처럼, 마치 나를 아껴주는 스승처럼 그가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그의 말들이 내 속에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를 처음부터 좋아하진 않았다. '예술은 사기다'라고 말했을 때, 나는 하나도 우습지도, 놀랍지도 않았다. 오히려 슬펐고, 야속했다. 왜냐하면, 예술이 정말로 심각한 사기, 나쁜 사기 일지 모른다고 의심만 하다 만난 칼 같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를 천재라고 이야기할 때, 솔직히 하나도 공감가지 않았다, 때론 공감해 보려고 애써도, 잘 되지 않았다. 우선 '천재'가 어떤 인물인지도 모르는 데다가, 백남준의 어떤 모습이 천재의 모습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박한 그가 예술에 대한 물음에 "나는 그렇게 거대한 질문에 답할 수가 없다"라고 말했을 때, 나는 천재를 만난 것 이상의 감동을 느꼈고, 책 한 권을 읽는 것보다 더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나는 짐짓, 예술이라는 답을 찾기보다. 그것이 큰 질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내 스승이 되었다.


그는 애국자가 되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애국자는 결국 정치가가 된다고 덧붙이며, 정치에 관심을 줄이고 수학 물리학 역사학 철학 이런 거를 공부하라고 했다. 나는 호기심 있는 삶을 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것에 관심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역사책에 나와있는 부평초처럼 붕 떠있는 이야기들을 걷어내야 진짜 역사가 보인다고도 했다. 갇혀있는 학문이 아닌 살아있는 진실을 찾아야 한다고도 했다. 실제로 이런 말들은 그가 세상에 없는 지금도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남을 해치지만 않으면 된다. 난 도덕적 인격에 관해서 적극적인 정의를 내려본 적은 없고 오직 소극적 철학 하나만 가지고 살아왔다. : 남을 해치지 않으면 된다. 그래서 난 애기를 낳질 못했다. 우리 부모가 우리한테 '너 태어나고 싶으냐?'하고 물어본 적이 없다. 즉 우리는 선택의 자유가 없이 태어난 것이다. 어찌 보면 폭력인데, 이것이 인간 존재의 출발의 최대의 모순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소극적 철학 때문에 애도 못 낳다."


나는 인류 최초라는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보다 이러한 그의, 삶을 대하는 모습이 더 가슴에 와 닿았다. 어쩌면 그가 고향을 그리며 숨을 거둘 때 그의 곁에 부인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나는 그가 결국은 끝끝내 자신의 삶의 모토인 '비폭력'을 지키기 위해 자식도 없이 쓸쓸히 죽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내가 가슴이 아팠다.


백남준은 암스테르담에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죽는 그 순간까지 창조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티스가 말년에 침대에서 드로우잉을 하듯 베토벤이 들리지 않는 귀로 합창을 만들듯, 그의 육신의 병도 그의 창작의 샘을 마르게 하지 못했다.


역사책에 나온 부평초처럼 붕 떠있는 이야기들을 걷어내야 진짜 역사가 보인다는 그의 말처럼, 지금 그의 죽음을 두고 그위에 붕 떠있는 부평초들이 언젠가 걷히고 날아가서 진정 그가 그리워 질날이 오면 그가 했던 말을 내가 하고 싶다.


"장자는 자기 마누라가 죽었을 때 북을 치고 노래했다. 죤 케이지는 나의 아버지였는데 이제 내가 북을 치고 노래할 차례다. 존 케이지는 생 사를 이미 초월한 사람이었다. 나두 살만큼 살았는데..."라고.


(여기에 인용된 모든 백남준 선생님의 말씀은 김용옥 선생의 '석도 화론'에서 발췌, 인용된 것임을 말씀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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