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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를 알려준
'밀회'의 공로 그리고 '돈의 맛'

백남준은 암스테르담에 가지 않았다 - 열세 번째 이야기

어릴 적, 한때 음반 모으는 취미를 갖었던 나는,

음반을, 음악은 모른 채 재킷만 보고 구입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엘럼 디자인이 좋은 음반은 음악도 썩 괜찮았던 기억이 난다.

꼭 화려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존 콜트레인의 '소울 트레인' 음반도

난 콜트레인을 모른 채 산 음반이었다.

초록색으로 간결하게 영문 제목만 새겨있던 음반이었다.


디자인이 영 말이 안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게는 이 정도의 음악을 만들 사람이라면,

미술적인 감각도 평균 이상이었던 것이다.


나의 이러한 경험은 나중에 드라마를 고를 때도 적용이 되었는데,

좋은 드라마는 음악도 좋았다.

드라마가 완성도가 있으면 음악이나 화면도 절대 뒤처지는 법이 없었다.

반대로, 음악이 엉망인 드라마는 드라마도 엉망이었다.

작가의 수준과 연출자의 수준은 같은 급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야기하려는 드라마는 음악과 영상과 드라마 각본.

그 어느 하나 흠잡을 곳 없는 18부작의 명작이다

바로 '밀회'다.

이미 보증수표인 안판석 피디와 정성주 작가가 만난 데다가, 주연은 김희애와 유아인이다.

조연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극찬도 아깝지 않은 이 드라마에 내가 감동한 것은

'슈베르트'를 알게 해 주었다는 점 때문이다.


난 몰랐었다.

음악을 듣는다고 들었지만, 고등학교 때에 이미 '죽음과 소녀'를 선물 받기도 했는데

슈베르트는 그저 내 기억에 가곡의 왕이었다.

그런데 드라마 첫회부터 등장하던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환상곡'은

숨을 멎게 했다.


그 뒤로 무수히 많은 이 곡의 연주를 보고 들었다. 랑랑과 Marc Yu의 연주는 놀라웠다.

이 조그만 아이가 어떻게 이런 감정을 알까?

바렌보임과 랑랑의 연주도 흥미로웠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란 것은 슈베르트의 음악이 가진 '슬픔'이었다.

많은 천재들이 35에서 37세의 언저리에 죽었다.

그런데 슈베르트는 31세에 요절했다.

친구들이 먹여 살렸다는 슈베르트 그는 왜 이렇게 슬퍼야만 했을까.

슈베르트를 듣다 보면, 쇼팽에겐 미안하지만 그의 사랑의 슬픔은 사치가 되어버린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슈베르트의 슬픔이 럭셔리한 분위기와 꽤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슈베르트가 지질하셨다고들 하는데 음악은 그렇지 않다

마치 철학자 김영민이 윤대녕에 작품에 대해 논하며

'어떻게 그런 얼굴에서 그런 작품이 나올 수가'라고 놀라던 대목이 생각난다.

외모 비하가 아닌 품격에 대한 이야기다.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도 말한다.

"나는 천박하다, 그러나 내 음악은 천박하지 않다!"라고 일갈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슈베르트를 듣다 보면, 이 세상에 모든 소외받은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가 세상에 다녀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런 슈베르트를 알게 해 준 '밀회'에 감사한다.

한국 근대사에서 이처럼 슈베르트를 확실히 온 국민에게 알린 기회는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p.s. 1.

작명과 촉이 뛰어난 김어준이 한 말 중에 가장 인상에 남는 말 중 하나는,

"정치엔 신동이 없다."였다.

안 선생을 콕 집어 말한 것은 아니겠으나,

정말 정치판을 보면, 정말 정치에 신동은 없는듯하다.

프랑스의 안 선생인 마크롱 대통령이 죽을 쑤고 있는 모습을 봐도 그렇다.


그런데, 음악계엔 '신동'이 있다.

그런데, '신동'만으로 안 되는 것이 있구나... 란 생각이 드는 연주가

바로 아래의 연주다.

물론 나의 판단이다.

수많은 조성진 팬들의 원성이 들려오는 듯 하지만

이 매거진이 그리 유명하지 않으므로 악플 걱정은 안 해도 될듯하다.


나 또한 조성진의 팬이다.

그런데 이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9번 D.958의 연주를 들으면 무언가,

세월이 어떤 의미인지를 느끼게 해 준다.

밀회에 성(聖)스럽게 인용된 리흐테르의 연주와 나란히 링크한다.

물론, 판단은 듣는 분들의 몫이다...


조성진의 연주

https://www.youtube.com/watch?v=VW_YRji_noM


그리고

리흐테르의 연주

https://www.youtube.com/watch?v=HoZRKkpWA5g




p.s. 2.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958번은 영화 '돈의 맛'에 삽입되었던 곡이다.

극 중 회장님인 '백윤식'이 즐겨 듣던 곡으로 회장님의 장례식에도 흐른다.

난 이 곡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 장중함이란..

'밀회'만큼은 아니지만, 영화 '돈의 맛'역시 나에게 슈베르트를 알게 해 준 또 하나의 계기였다.


영화에서 음악이 등장한 장면의 무거움 때문이 아니라,

작중 인물이 가지고 있던 무거움 때문도 아니라,

이곡은 거대한 무게추가 매달려있는 것 같은 무거음이 느껴졌었다.

영화에 인용된 부분은 2악장이었다.

느리게 시작되는 우아한 곡이었다.

영화상에서 멋진 오디오와 브라운 색의 격조 있는 공간과 참 잘 어울렸었다.


그런데,

조성진의 연주에서 그 무거움이 보이지 않았다. 느껴지지 않았다.

왜일까.. 왜일까..

여전히 잘 모르겠다.

다만 느껴지는 것 한 가지는, 1악장에서 너무 빨랐던 것이 아닐까?


찾아보니 1악장은 알레그로(Allegro)라고 한다.

번역을 찾아보니 '유쾌하게'라고 한다.

'유쾌하게'라...

슈베르트 인생에 유쾌하게 가 있었을까?

있었을 것이다.

김갑수 선생 말씀이 슈베르트는 수다쟁이였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그의 유쾌함이란 아마도, 무거운 무게추가 매달린 유쾌함이었을듯하다.

바람에 팔랑거리는 풍선과 같은 유쾌함,

그러나 그 풍선은 큰 돌덩이에 묶여있어 바람에 요동만 칠뿐 훨훨 날아가지 못하는,

그런 유쾌함이 아니었을까?


리흐테르의 연주에선 1악장이,

빠르지만 무거웠었다.

유쾌한 듯 보였지만, 묵직함이 느껴졌었다.

그래서 2악장이 더 암울했다.


내가 생각하기엔,

그것은 세월이었던 것 같다.

무게추 같은 묵직한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유추해볼 수 있을 세월 말이다.

음악에 신동은 존재한다.

그러나,

슈베르트 음악엔 통하지 않는 것 같다.


ps 3

슈베르트에 대한 고민은 생각을 계속하고 있다.

슈베르트의 음악이 가진 슬픔의 깊이는 '문학'에서 온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되었다.

겨울나그네 와같은 독일 가곡은 대문호 '괴테'의 영향이었다.

어쩌면 짧은 생을 살았던 슈베르트의 음악이 깊은 장중함을 갖는 이유는

슈베르트의 내면으로 체화된 문학적 상상력이 음악을 통해 나온 것이 아닌가.. 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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