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바흐와 윌리엄 크리스티,
하느님께서 칭찬하실까?

백남준은 암스테르담에 가지 않았다 - 여덟 번째 이야기

제자가 묻는다.


"선생님, 성경의 욥기 기억하시죠?"


투병 중인 선생의 등을 두드리며 말을 잇는다,


"착한 사람이지만, 하나님은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앗아가잖아요,

그의 집, 돈, 가족, 건강 모두요... 믿음을 시험해보려고요,

선생님은 그걸 어떻게 생각하세요?"


쿨럭이시던 스승은 답한다.


"하느님이 심하셨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한 대목이다.

루게릭 병을 앓아 죽음을 앞둔 스승 모리와 제자 미치가

죽는 날까지 수많은 주제를 두고 함께 나눈 대화를 엮은 책이다.


"하느님이 심하셨네!"란 모리 선생님의 대답에서 나는 어떤 상쾌함을 느꼈다.

물론 그런 상쾌함으로 행여 벌이나 받지 않을까? 란 불안이 따라왔던 것도 사실이다.


법정스님께서 인용하셨던, "진정한 종교는 종교라는 울타리 너머에 있다."라는 대목을 떠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느님이 그렇게 속 좁은 분이 아니실 거란 생각도 들었다.

그냥 사는 것도 힘든데, 그런 고초를 주면서 까지 믿음을 시험하시는 것이 너무 야속한 것이다.


한때 바흐의 에수 수난곡을 매일 한 번씩 들었다.

작업 습관을 들이기 위해 하루에 한 번씩

2시간이 조금 넘는 예수 수난곡을 듣는 동안은 그림만 그린 것이다.


위대한 일상과 다른 프로젝트였던 지옥의 문을 그렸다

2009년의 사건을 모아, 주요 인물은 남겨둔 채

빈 곳을 2009년의 사건과 사고로 채웠다.

지옥은 죽음 너머가 아니라, 이 세상인 듯 보였다.

그러면서 바흐를 생각하게 되었다.

part1.jpg
part3.jpg
part 4.jpg
part 2.jpg


10112010 011.jpg 지옥의 문 2009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바흐는 1685년에 태어났다.

대대로 많은 음악가들을 배출한 집안이었고,

어릴 적부터 집안의 친척들로부터 많은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음악은 신에게 바치는 하나의 봉헌이었다.

수학적인 엄밀함도 고된 진행 과정도 모두 신을 향한 사랑이었다.

마치 가우디의 건축이 하나의 신앙에 가까운 행위였듯이.

바흐의 예수 수난곡을 들으면 대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느낌이 든다.


'신은 죽었다'라고 외친 니체의 계보라고 해야 할

미셀 옹프레라는 프랑스의 좌파 철학자는

바흐의 음악을 두고 말한다.


"만약 신이 바흐를 만난다면

(참고로 옹프레는 무신론자다)

신이 바흐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음악을 만들어주어서 내가 더 고맙네..'라고 말이다."

나도 이 말에 찬성한다.

바흐가, "주여 제가 이런 곡을 쓸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바흐에게

"아니네, 내가 더 감사하네... 그냥 살기도 힘들었을 텐데,

내가 만든 세상에 이런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주어 내가 고맙네"라고 말이다.


나는 바란다.

신께서 바흐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가들, 작가들, 장인들...

그러니까, 아름다운 작품을 남긴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칭찬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p.s.

바흐로 대표되는 바로크와 고전음악을 새롭게 꽃 피운 사람이 있다면

바로 윌리엄 크리스티 (William Christie)다.

그의 악단의 이름도 꽃이 만발하듯 '번성하는 예술(Les Arts Florissants)'이다.


크리스티는 앞서 이야기한 호로비츠만큼이나 까탈스러운 양반이다.

그가 오디션 하는 모습을 보면 1초 만에 얼굴을 찡그리거나

또 1초 만에 얼굴이 화사하게 꽃이 핀다.


그는 우리에게 바로크 음악의 정수를 들려준다.

그 정수란, 우리를 다시 바로크 시대로 되돌려 놓아주는 것이다.

그 시대의 소리와 그 시대의 음악을 지금 우리의 시대에 재현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 역시 하느님의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괴팍하신 성격은 빼고 말이다.

공연이 너무 길어 링크만 올린다.


https://www.youtube.com/watch?v=K75NAqO6QdU&start_radio=1&list=RDK75NAqO6QdU


p.s.

아쉬운 마음에 헨델의 음악을 올린다.

파트리시아 프티봉이라는 소프라노의 공연이다.

그녀는 윌리엄 크리스티가 발굴한 대표적인 소프라노 중 하나다.

크리스티라는 거목에 만발한 꽃들 중 한송이 인 셈이다.

"번성하는 예술(Les Arts Florissants)'이라는 그의 악단의 이름처럼 그의 작업은 풍성하게 꽃 피우고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호로비츠, 거장의 귀향 그리고 스카를라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