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일상 2022년 2월 25일
"예술가는 참여할 수 있다.
그런데 그의 예술이 참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회참여는 예술의 범주가 아니다."
(자크 랑시에르, 감성의 분할 중에서 86페이지)
랑시에르의 단호한 저 표현에 의하자면,
정치참여를 노골적으로 보여온
내 일련의 작업들은 모두 '실패'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랑시에르의 뼈아픈 지적은
사르트르의 좀 더 부드러운 문장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선한 감정들은 아카데미즘으로 기울고 있다.
합법적인 분노를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대중이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리하여, 예술의 근심을 거짓된 안심에 복종시키게 될 것이다."
(사르트르, 특권 없는 화가 중에서)
사르트르는 '정치적 분노'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회화를 선량한 생각에 활용하도록 함으로써 예술을 경직시키는 일"
이라고 단호히 '저격'했었다.
그래, 맞다. 인정한다.
그러나 지금은 예술이 성패를 따질 때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사르트르의 반대편에 카뮈의 말에 기댄다.
"나는 예술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나 예술을 삶 위에 두어본 적은 없다."
(올리비에 토드. 'Une Vie, 삶' 중에서, 카뮈의 말.)
지금은 예술보다, 선거,
창작보다 투표,
창조보다 삶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권력을 사유화하겠다고 대놓고 말하는 세력이 대권에 도전하고 있다.
정치적 발언이 늘 작품의 실패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서도호가 그랬다.
부러운 마음과
다급한 마음에
따라 그려보았다.
다시 폭압의 시대로 가기 싫어서...
p.s.
서도호의 작품 '카르마'
산스크리트어로 '업'이라는 뜻이다.
권력에 짓밟히는 삶이 과연 우리의 '업보'가 될 것인가?
정말 국민을 '개 돼지'로 보는 세력은 누구인가?
#thegreatdays2021 le 25 FEV 2022 #폭압의역사 를 반복할 것인가? Will the history of tyranny be repeated? #서도호 #예술의힘 #SeoDoho . #the_power_of_art #StopPutin #StopTheW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