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 같은 현대미술,
그 미묘한 욕망

위대한 일상 2022년 5월 9일

직설적으로 결론을 먼저 말한다면,

무수히 많은 철학적 언사들로 '설명'(치장이라고 말하고 싶지만)되어 있지만,

그저, '욕망'을 분출하고 싶어 하는 것,

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너무 '무식'한 것일까?


'현대미술'의 '올림픽'격인 베니스 비엔날레에 등장한,

화제의 전시 중 하나인. 네덜란드 관의 전시는,

그냥 조금 더 우아한 '포르노'같았다.


올해 등장한 많은 작품들 중,

화재가 된 작품 하나는 네덜란드관에 전시된 melanie bonajo,

멜라니 보나요의 작업이었다.

그녀의 작업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네덜란드 대사관 문화 블로그에서 찾아볼 수 있다.

http://dutchculturekorea.com/?p=3942


인간과 자연의 변화하는 관계.

충분히 지적인 주제임은 분명해 보인다.

4년 전의 작업이다.

올해 그녀가 내놓은 작업의 제목은

‘When the body says Yes’ ('몸이 Yes라고 말할 때', 구글 번역)이다.

https://www.dutchnews.nl/features/2022/04/a-pluffy-pillow-pleasure-island-dutch-venice-biennale-focus-is-touch-and-consent/

USE-THIS-Photo-by-Peter-Tijhuis-Large-560x373.jpg Inside the Chiesette della Misericordia. ‘When the body says Yes’ by melanie bonajo. Photo: Peter Ti


흥미로운 지점은,

늘 현대미술의 테두리 안에서 존재하는 미묘한 욕망이다.

너무 '무지'한 표현이라면 어쩔 수 없으나,

이런 '-류'의 작업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극단적인 경우가

스위스 태생의 행위예술가 밀로 무아레의 경우다.

노출은 기본이고,

작가의 신체를 관객이 만지게 하는 퍼포먼스로 화재가 됐었다.

결국 최근의 작업은 포르노에 가까운 행위예술로 진화(?)했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결론을 먼저 말하고 시작했던 것처럼,

차라리 '예술인척' 하지 말고, '원하는 것'을 그대로 말했으면' 좋겠다.

'현대미술'은 너무 '지적'인척 하느라 시간을 쏟는다,

뜯어보고 분석해 보면,

대게는 모두 '부평초'처럼 붕~ 뜬 이야기들 뿐이다.


영화를 앞서간 현실처럼,

'현대미술'도 '현실'을 '직시'해야 할 듯하다..

"수많은 사물들 중 가장 '추한'게 현대 미술이다"

30년 전의 한 비평가의 평가다.

온 세상이 가장 아름다운 '사물'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작가들은 다시 한번 곱씹어 보아야 할 것이다.


'아름다움'을 '에술작품'만이 '충족'시켜주었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최근 한국 사회에 불고 있는 '미술전시' 열풍은 반가운 일이지만,

그 안에 '콘텐츠 부재'가 지적되었다는 점과,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작품은 '결국',

'좋은 작업'이라는 사실,

김어준이 말하듯,

"좋은 콘텐츠는 반드시 빛을 발하는 법"이다.


작품이 좋으면,

'지적인 수식어' 필요없다.

그리고

관객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것은

작품이 주는 '자극'이 아니라,

'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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