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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위대해질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위대한 일상 2022년 6월 22일

위대한 사회는,

거창한 것이 보장되는 사회가 아니다.

그저 최선을 다해서 사는 소소한 소시민들이

'불안'없이 사는 사회. 살 수 있는 그런 사회다.

언젠가 고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에 등원하여 첫 연설에서 했던 말처럼,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좀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좀 없는 세상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142회 임시국회 첫 대정부질의 : 노무현 초선의원 연설, 출처 ;http://archives.knowhow.or.kr/rmh/talk/view/2056072?page=1 )


거창한 이상도, 화려한 성과도, 선진국이라는 위상도,

생과 사를 직면한 소시민들에겐 '의미 없는 말'들일뿐이다.

코로나 방역으로 선진국이 되었다는데, 아무런 감흥이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슬픈 사회라면,

미국은 총기 사고로 끊임없이 사람들이 죽고 있는 또 다른 슬픈 사회다.

미국은, 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하는데 아무 조치도 못 하고,

우리는, 학교 앞 사고를 막기 위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차량 '속도'를 줄이는 것조차 '논란'이 된다.

두 사회 모두, '돈과 권력'을 지키려는 '기득권의 욕망'앞에,

힘없는 소시민들은 말없이 죽어가야 하는 '위대함'과는 거리가 먼 사회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선언했던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듯이,

"국민의 부름을 받았다."라는 한국 현 대통령의 당선은 한국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두 사회는 다시 위대해질 수 있을까?


대중이 가짜 뉴스에 속지 않고,

거대 자본에 휘둘리지 않으며,

기득권이라면 자신의 욕망을 나눌 수 있을 때,

위대한 사회는 돌아올 것이다.

위대한 국민이 만든 촛불의 시대를 우매한 대중이 꺼버렸다면,

미국도,

또 한국도...

이제 다시 대중이 위대해져서 국민과 국가의 위상을 되찾아야 할 때다.


생각을 넘어선 바람이요,

바람을 넘어서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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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greatdays2022


#Houston #Texas #Demonstrators join the #March_for_Our_Lives_rally at City Hall. Protesters were demonstrating across the US for tighter firearms laws to curb devastating gun violence plaguing the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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