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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나와 이세돌, chatGPT시대
그리고 임윤찬

파리의 우버 운전사

누구도 그녀가 그렇게 빨리 첼로를 그만둘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첼리스트 장한나.

그녀는 신동이었다. 어린 나이에 국제적으로 이름을 날렸고,

첼로의 거장 로스트로포비치의 제자의 자리를  넘어 후계로 지목되기도 했다.

그 커리어를 유지하면, 파블로 카잘스, 자신의 스승인 로스트로포비치를 이어 

동시대의 요요마, 미샤 마이스키, 그리고 전설이 된 쟈클린 뒤프레와 함께

첼로의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은 시간의 문제로만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첼로를 그만두고 '지휘자'로 변신했다.


누구도 그가 그렇게 빨리 바둑을 그만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바둑기사 이세돌,

그는 바둑계의 풍운아였고, 화려한 스타일로 정상에 오른 기사였다.

12살에 바둑게에 입단했고, 14차례 메이저 대회의 우승을 거뒀다.

바둑기사로는 처음으로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대국을 벌였고,

인공지능을 상대로 1승을 거둔 유일한 '인간 기사'로 남았다.

그리고 그는 바둑계를 떠났다.


장한나와 이세돌,

이 두 사람의 '은퇴'와 '전향'을 하며 모두 '끝을 보았다'라고 이야기했다.

장한나는 사석에서, "20세기에 모든 명연주가 이미 음반으로 나와있다."라고 말했다.

정상에 올라선 연주자의 말이었던 만큼, 그 고뇌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이미 너무나 완벽한 연주가-최고의 연주자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이미 존재하는데, 

무엇을 더 한다는 말인가?라고 자문으로 보였다.

이세돌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인공지능을 어떻게 해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자명한 상황...'승부'의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장한나와 이세돌의 선택은 비판받거나 폄하받을 선택이 아니다.

그들은 최고의 경지에 있었다, 그럼에도 그 정상에서 내려와

새로운 정상을 향해 모험을 시작한 것은 그 용기만으로도 박수받을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두 거장이 또 어떤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 낼지 자뭇 흥미롭게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앞에 여전히 남아있다.

우리는 인공지능 시대, 미래 완료 시제의 시대와 마주하고 있다.

모든 것을 인공지능을 통해 답을 얻고 알아낼 수 있는 시대.

심지어 창작조차도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리고,

인공지능을 이용한 사진작업이 대회에서 수상하는 시대에,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인간이 더 이상 바둑에서 알파고를 ,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지만,

한국의 대학에 바둑학과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바둑을 '여전히' 열심히 두고 있다.

바둑으로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지만,

인공지능은 바둑을 두는 인간의 '즐거움'을 빼앗을 수 없다.

그리고 인공지능은 그러한 '즐거움'을 모른다.


첼리스트로서의 장한나의 말처럼 이미 수많은 명반들이 나와있지만,

여전히 전 세계에 수많은 음대에는 첼로를 공부하기 위해 학생들이 입학을 하고,

수많은 연주자들이 여전히 첼로를 연습하고 있다.

대가와 거장의 연주가 아닐지라도, 음악을 '연주'하는 즐거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위대한 음악가를 넘어 한 사람의 위대한 '노동자'였던 카잘스는 

늘 자신의 피아노위에 '광부'의 사진을 놓았고,

그 사진을 바라보며 "나는 저들보다 편한 일을 하고 있다."라고 말하며,

80이 넘은 나이에도 매일 6시간씩 연습을 했다.

그리곤 그 이유를 묻자, 

"여전히 조금씩 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답니다."라고 답했다.

인간의 모든 정보를 담고 있는 인공지능은 이런 '느린 발전'을 알지 못한다.


우리 시대를 너무나 예리하게 그려낸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

영화 속의 구원자로 지정되었던 '네오'.

그가 마트릭스를 건축한 인공지능에게 묻는다.

"왜 나였는가?"

인공지능의 답은 간단했다.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빨랐을 뿐이다."


그랬다.

인공지능도 쳇지피티도 그저 빠를 뿐이다.

거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무수히 많은 컴퓨터들이 연결되어 

어마어마한 양의 전기를 소모하며 빠르게 돌리고 있는 것뿐이다.

인간의 언어에 대해 패턴화를 일찌감치 포기했던 자연어 처리가 가능해진 것은 

그저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앞으로 더더욱 빨라질 것이고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며, 

인공지능과 함께 더 많은 쓰레기 데이터들이 형성될 것이다.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일은 일회용 용기를 소비하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그리고 그릭 광범위하게 전지구적으로 벌어질 것이다.

인공지능의 시대,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미래 완료형의 시제 세상 안에서 

과연 우리는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까?


반세기 전 한국이 막 근대화 되던 시절 독일을 유학했던 전혜린은 

"미래완료형의 시제의 삶 속"에서 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미래가 이미 정해져 있는 삶, 그것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정해진 미래를 거부하고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내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인간의 길'이자 '인간의 몫'이 아닐까?

뻔히 답이 보이는 길이라고 해도,

뻔히 승패가 보이는 길이라고 해도,

가야 할 때가 있다

웹툰 원작의 드라마 미생에서 오 차장은 장그래에게 말한다.

"버텨라. 꼭, 이겨라.

안될 것 같더라도, 끝은 봐. 살다 보면은 끝을 알지만 시작하는 것도 많아."

그렇게 매일 똑같은 하루를 수많은 사람들이 시작한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악보만 본다고 말한다.

다른 연주들에 영향을 받을 것 같아 될 수 있으면 참고하지 않는다고 한다.

언제까지고 그럴 수는 없겠지만,

작곡가의 의도가 모두 담긴 악보에 집중하는 것은 '용기'있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똑같은 악보를 보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다르게 연주하는 것이 '음악'이다.


쳇지피티와 인공지능, 무수히 화려한 기술이 난무하는 시대.

답은 임윤찬처럼 고리타분해 보이는 '느림'과 어리석어 보이는 '우직함'에 있는 것은 아닐까...

고리다분해 보이는 고전이 무슨의미가 있냐고 푸념하자, 인문학을 전공했던 한 선배는 말했었다.


"스타워즈를 봐, 

최첨단의 시대이지만 승부는 '검'으로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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