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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스트로와 대통령,
그리고 윌리엄 크리스티(1)

파리의 우버 운전사

그는 모든 음을 통재하고 있었다.

한음, 한음, 모든 음들이 그의 손짓과 눈짓 그리고 몸짓을 거쳤다.

정확하게 출발시키고 또 정확하게 막아섰으며 온몸을 움츠려서 작은 소리를 요구하는가 하면,

그 어떤 제스처보다 우아하게 팔을 둥글게 휘져으며 환상적인 선율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무대에 등장한 성악가들은 모두 철저히 훈련된 하나의 악기들이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만들어내는 선율과 다섯 명의 성악가의 음색은 청중들을 완벽하게 바로크 시대로 데려다 놓았다. 과연, 바로크 음악의 세계적 권위자라는 윌리엄 크리스티의 명망은 허언이 아니었다. 공연이 열린 오베르 쉬르 와즈의 성당은 석조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바닥을 카펫으로 채운 노력 덕분인지 음색이 나쁘지 않았다. 작은 공간은 조명 색조의 변화와 회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가수들의 정적인 배치와 연출로 작은 성당을 꽉 채우고 있었다. 프로들은 정말 아름다웠다. 최고의 마에스트로에 최고의 악단이 있었고, 최고의 출연진이 있었다. 곡 중에서 바이올린 독주를 이어가는 악장은 이 레퍼토리에 완벽히 합체되어 있었다. 이중주를 선보인 첼리스트 역시, 두 선율의 교감과 또 그 위에 얹어지는 카운터테너의 아리아는 처절한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윌리엄 크리스티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수십 년간 바로크 음악을 연구하고 자신만의 악단을 만들고, 자신이 구입한 정원과 고성에서 매년 자신만의 음악 축제를 개최한다. 21세기 살아있는 바로크 음악의 위대한 영주가 바로 윌리엄 크리스티다.

윌리엄 크리스티의 정원에서 매년 열리는 음악 축제. 그는 정원 애호가이기도 하다.


모든 지휘자들이 윌리엄 크리스티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음악을 시작하는 모든 연주자들은 '솔리스트'를 꿈꾼다. 그러나 모두가 '솔리스트'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었다고 해서 '실력'이 없는 연주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 자신의 '인생'을 걸고 '평생'음악을 한 사람들이다 이런 '음악가'들을 '휘어잡아야' 하는 것이 바로 지휘자. '마에스트로'다.


"마에스트로? 남자들의 3대 로망이잖아 프레지던트, 제네랄 그리고 마에스트로지"


지휘자가 주인공이었던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주인공 '강마에'를 설명하던 클라리넷티스트(이순재 분)의 말이다.  실제로 마에스트로의 일과 제네랄(장군)의 일 그리고 프레지던트 (대통령)의 일은 사뭇 유사한 점이 있다. 조직의 구성원들을 '지휘'해서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것. 그것이 공통점이다.


"프레지데 (Présider, 주재하다)와 구베르네(gouverner, 다스리다)는 다른 것이다."


코로나 시태 당시 프랑스 총리였던 에두아르 필립의 말이다. 프레지던트(대통령)와 같은 어원의 프레지데와 거버먼트(정부)와 같은 어원인 구베르네를 '구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정부를 '운영'하는 것과 대통령이 나라를 이끄는 것은 '예민하게'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과연, 학문의 생명은 '엄밀함'에 있고, 그 '엄밀함'의 수준이 그 '국가'와 '사회'의 수준을 말해 준다면, 그의 이 말은 '차기 대권 후보'다운 말이었다. 이 정도는 되어야 '나라'를 맡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찌 되었건 '지도자'는 '경외심'을 유발할 정도의 '실력'이 있어야 한다. 국정 지지도는 어찌 되었건 지도자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단원들이 '지휘자'를 믿는 것 역시 '지휘자의 '실력'을 보고 난 이후다.


에두아르 필립이 구베르네와 프레지데를 구분한 것이 흥미로운 이유는 그만큼 국정에 대한 이해도와 비전이 존재한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대개의 정치 토론이나 유력 정치인들의 발언을 보면, '비전'보다는 '비방'이 대부분인 요즈음 정치판을 볼 때, 에두아르 필립의 분석은 인상적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시각'이 이미 우리에게 존재했었다는 사실이다. 바로 '책임 총리제'가 그것이다. 내치와 정부 운영은 '총리'에게 일임하고, 대통령은 '외교'와 국가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총리는 오케스트라의 실질적인 리더라고 볼 수 있는 '악장(제1 바이올린의 첫 주자)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게 바라보면, 오케스트라의 각 파트는 정부 부처라고 볼 수도 있다. 그 파트에 리더가 있다면 장관 정도가 아닐까? 그리고 이런 단원들을 통솔하며 지휘자가 악단을 이끌 준비를 해놓는다. 최근 개봉되어 화제가 되었던 영화 '타르'에서도, 단원들이 마에스트로에게 직언하기 전에 악장과 눈을 맞추며 대화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악단의 리더는 마에스트로다. 마에스트로는 악장과 상의를 하고 의견을 듣겠지만 음악적 해석을 악장에게 맡기는 경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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