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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선 Sep 23. 2016

[책] 개인주의자선언

개인주의자선언, 문유석



아주 사적인 감상


에세이가 흔히 그렇듯, 이 책은 문유석판사의 걸어온 길과 신변잡기에 대한 생각과 함께 다소 무겁고 거시적인 주제들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책을 리뷰한다는 것이 꼭, 판사님에 대해 한 마디 던져보는 것과 같아 조심스럽고, 혼자 끄적거려보는 글임에도 못내 부끄럽고 그렇다.


첫장에서부터 엄청난 공감과 함께 그의 세련된 표현력에 놀랐다.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냥 남을 안 부러워하면 안 되나, 하고 질문하는 그에게 뜨끔하는 느낌도 여러 번. 

정말 예전부터 ‘나는 이기적이야. 나는 나밖에 모르나봐’하고 자괴감을 가지기도 했던 나였기에 그의 개인주의자 선언이 후련하고 기쁘기까지 했다. 

권위주의와 가족중심주의에 NO를 표하고, 수직적 가치관에 회의를 던지는 그. 남 눈치를 보면서 제 살을 깎아먹는 사회에 대한 원망과 이를 마음으로 극복하지 못하는 내 자신에 대한 지탄이 엉켰다. 효율과 자유보다 단합을 강조해, 쓸데없는 불협화음을 만들고 눈치에 눈치가 꼬리를 물고 노동시간마저 연장하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기업과 단체.


그 사사로운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사회와 세계를 관통했다. 책 내내 그는 개인주의는 이기주의가 아니며, 냉소주의도 아니고, 오히려 사람냄새 진하게 나는 따뜻한 자세임을 역설하는 듯 했다. 흔히 ‘나를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고들 하는데, 일맥상통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직주의적 가치관 속에서 윗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아랫사람들에게 이를 답습하는 불필요한 에너지낭비를 과감히 끊어내고, 약자들을 위해 같은 세대를 견뎌내는 동료들을 위해 따뜻한 움직임을 시작하는 것이 진정한 개인주의자. 


뿐만 아니라 샤를리에브도를 예시로 들어가며 ‘표현의자유’에 써내려간 짧은 글, 북유럽, 미국에 관한 짧은 글들이 전부 흥미로웠다. 


사실 책 전반적으로 저자에 감탄, 또 감탄하고, 친절하고 따뜻하고 날카로운 문장들에 울고 웃고를 여러 번. 수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었다. 새기고 싶은 문장들, 닮고 싶은 사람.


본문스크랩


1. 장금아. 사람들이 너를 오해하는 게 있다. 네 능력은 뛰어난 것에 있는 게 아니다. 쉬지 않고 가는 데 있어. 모두가 그만두는 때에 눈을 동그랗고 뜨고 다시 시작하는 것. 너는 얼음 속에 던져져 있어도 꽃을 피우는 꽃씨야.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들겠어...... (한상궁의 말)


2. 물론 노력은 소중하고 필요한 것이지만 맹목적인 노력만이 가치의 척도는 아니다.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지 성찰이 먼저 필요하고 노력이 정당하게 보상받지 못하는 구조에 대한 분노도 필요하다. 가장 위험하고도 어리석은 건 ‘노력해야 성공한다’를 넘어서 ‘성공한 이들은 다 처절하게 노력했기에 그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만큼 노력하여 성공한 이들이니까 괴팍하고 못되게 굴 만하다’ ‘강한 것은 아름답다’ 등으로 끊임없이 가지를 치는 스톡홀름증후군이다. 스티브잡스가 매혹적이라 하여 그의 괴팍함과 못된 점조차 찬양할 필요는 없다. 훌륭한 점과 비판받아야 할 점은 냉정하게 분리해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대체로 성공에는 재능과 노력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실사회에는 그저 우연히 부모 잘 만나서 과분한 기회를 누리며 사는 이들도 많다. (위플래시의 감상평을 보던 중)


3.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불행하고 비참한 처지에 있는 젊은이들도 있음을 잊지 않는 일일 것이다. 비록 내 친구들, 주변 사람들 중에는 없더라도, 설령 전체 이십대 인구 중 현재에 만족하는 이들이 더 많더라도, 분명히 어떤 젊은이들은 백화점 주차장 바닥에 무릎을 꿇고 모욕을 당하고 있고, 종일 알바 후 1.5평 고시원에 누워 희망 없는 하루를 마감하고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황현산 선생의 글이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리 두터운 현재를 갖고 있지는 못하기에 서로 일깨워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 주변의 친밀한 세계와 사회라는 커다란 세계를 연결하는 고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말이다. 


4. 인터넷 일각에서 흔히 보이는 ‘팩트는 팩트다’라거나 ‘개취존중’ 운운의 논리. 그러나 세상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미국 백인 청년이 ‘슬럼가 흑인이 더럽고 불쾌한 것은 사실 아니냐’고 개인적 의견을 말하는 것은 인간을 노예로 사냥한 역사와 빈부격차, 불평등이라는 맥락에 대한 무지다. 인간 세상에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가치중립적인 ‘팩트’란 없다. 그걸 생각한다면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5. 더 심각한 것은 ‘왜 선비인 척하느냐’는 한마디다. 요즘 인터넷에는 ‘선비질’이라는 용어가 횡행한다. ‘선비’가 모멸적 용어인 세상이다. 위선 떨지 말라는 뜻이다. 속시원한 본능의 배설은 찬양받고, 이를 경계하는 목소리는 위선과 가식으로 증오받는다. 그러나 본능을 자제하는 것이 문명이다. 저열한 본능을 당당히 내뱉는 위악이 위선보다 나은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위선이 싫다며 날것의 본능에 시민권을 부여하면 어떤 세상이 될까


6. 1차대전 패전 후 독일인들은 막대한 배상금 부담에 시달렸다. 이때 나치들은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유대인의 열등함, 사악함이 모든 문제의 원흉이며 아리아인의 우수성이 ‘팩트’라는 우생학까지 주장했다. 그들 마음속 심연에는 지금의 고통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자존감을 회복하고 싶은 충동이 있었다. 결국 성실하고 착한 가장들이 이웃들을 대량학살하고 그 피하지방으로 비누를 만들었다. 그게 우리 인간의 악한 본성이다. 


7. 생각해보면 후배 세대의 위악은 선배 세대인 나 같은 사람들의 위선이 낳은 것이다. 열린 교육과 인간화를 주장하며 뒤로는 내 자식만 잘되라고 선행학습이라는 이름의 조직적 커닝을 하느라 고전을 읽고 인간과 사회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권위주의와 싸운다는 명분으로 막말과 냉소가 주는 쾌락에 도취했고, 그 결과 진보와 보수라는 탈을 쓴 반지성주의가 적대적 공생관계를 맺는 인터넷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8. 단지 주목받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심각한 상처를 줄 수 있는 모욕을 가하는 일들이 연이어 벌어진다. 미국인들은 소수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증오 발언에 대해 사회적 제재를 가한다. 한 NBA구단주는 여자친구에게 전화로 “흑인과 함께 내 경기장에 오지 마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져 영구퇴출당하고 구단을 매각했다. 표현의 자유에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9.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도 좋다. 더이상 무고한 이들을 잃지 않을 수만 있다면.


10. 실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이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다. 자연 그대로의 것은 무조건 옳다고 보는 것을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한다. 실은 그 반대가 맞는 경우가 많다. 하다못해 식재료도 자연 상태 그대로는 독성을 갖고 있다. (...) 인류는 자연 상태의 폭력성을 문명화 과정을 통해 극복해 현대적인 평화를 이루고 있다. 자연은 그 자체로 옳고 그른 것이 아니다. 옳고 그른 것의 기준은 지금의 발전한 문명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에 따라 옳은 것은 더욱 북돋우고 그릇된 것은 제어해야 한다. 


11. 샤를리에브도는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는 68혁명의 후예다. 그들은 저항의 목적인 휴머니즘보다 저항 그 자체를 더 신성시하는 근본주의에 빠진 것은 아닐까.


12. 1940년대 말 성립된 랜-마이드너 모델은 시장친화적인 대타협. 그 핵심은 연대임금 정책. 같은 업종에서 같은 일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에게 같은 임금을 지급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임금 수준이 중간으로 수렴되므로 우수 기업은 오히려 인건비를 낮출 수 있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높아진 임금을 감당 못해 결국 시장에서 퇴출된다. 선택과 집중으로 능력있는 기업을 키워서 사회를 먹여살리는 엔진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평생직장 보장은커녕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는 정책을 폈다. 대신 실업자에 대한 높은 실업급여와 질 좋은 직업훈련을 국가가 책임짐으로써 노동자의 현재 일자리는 보장하지 못하지만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가 다른 직장을 찾을 수 있도록 해 실업 문제를 해결했다. (스웨덴)


13. 북유럽 ‘얀테의 법’ : 당신이 더 특별하고 잘났다고 생각하지 마라. (심리적인 빈부격차가 실제보다 낮아지는 효과)...우리사회는 반대일 것. 


14. 핀란드 ‘루오테타부스’ 신뢰성과 언행일치. 정직성을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중시. 


15. 한 개인으로서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만도 전쟁같이 힘든 세상이다.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입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취업 관문에서 살아남기 위해...(...)그런 개인들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배려해주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또 그렇기에 얼마나 귀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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