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인데요, 덴마크에서 김치 영업 당했습니다

코펜하겐의 와인바에서 만난 김치에 진심인 사람들

by 그린

“발효식품 중에는 김치 이길게 없는 것 같아.” 이 말을 하고많은 장소 중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들을 줄이야.


고국에서 8000km 떨어진 도시 코펜하겐. 이곳에서 나는 라탄 의자가 멋들어지게 놓여진 와인바의 테라스에서 때늦은 점심을 먹던 참이었다. 바삭한 바게트에 너트 스프레드를 바른 뒤 올리브유가 가득 스며든 청어를 얹고, 케이퍼와 다진 양파 토핑을 얹었다. 레몬즙을 뿌린 뒤 앙 베어물려고 입을 벌린 순간이었다. 옆테이블에서 들려온 김치라는 단어에 깜짝 놀라 먹으려던 샌드위치를 잠시 내려놓았다. 푸른 눈의 금발 장신들이 가득한 이 나라에서 이토록 친숙한 단어를 듣게 되다니. 청어를 얹은 바게트, 녹인 치즈와 함께 먹는 주키니 구이, 아보카도 호밀빵 샌드위치. 코펜하겐에는 푸릇푸릇하고 신선한 음식들이 가득했지만, 엄마와 옆집 아줌마에 대한 사랑은 비교조차 할 수 없듯이 덴마크의 음식들은 한국 음식이 주는 푸근함을 이길 수는 없었다.


내가 먹고 있던 청어 샌드위치


홀로 여행이 지속된지 벌써 4일, 코펜하겐은 우아하고 감각적이었지만 혼행이 늘상 그렇듯 혼자 아름다운 것들에 감탄하는 것이 시들해지고 있던 참이었다. 누군가와 대화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미안, 엿들으려 한 건 아닌데 김치라는 단어가 들려서. 김치가 여기 사람들이 요즘 많이 먹는거야?” 말을 하며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김치가 이 낯설고 멋있게 차려입은 백인들의 말에 이토록 일상적으로 언급되는 주제가 되었다니. 나는 마치 자식 자랑을 하고 싶어 안달난 학부모처럼 물었다.


“응 요즘 코펜하겐에서 정말 핫해. 나는 최근에 Kala’s Kimchi라는 곳에서 만드는 김치 먹었는데 여기 정말 맛있어, 추천해.” 옆 테이블의 곱슬거리는 금발머리를 한 여자애가 미소를 건네며 말했다.


그들은 덴마크 디자인 위크 때문에 코펜하겐에 방문한 디자인 업계 종사자들이었다. 한 명은 독일인, 다른 두명은 덴마크인이었다. Kala’s Kimchi 소개해준 여자애는 Emma라는 친구였는데, 덴마크인이지만 현재는 암스테르담에 살고 있다고 했다.


내가 마침 며칠 뒤 다시 암스테르담에 가는데 온 거리에 대마초 냄새가 진동해 다시 가고 싶지 않다고 하자, 그 친구는 나에게 “De Pijp”이라는 동네를 추천해줬다.


“거긴 정말 대마 냄새 안나고, 예쁜 샵들 너무 많아. 너가 좋아할거야. 커피도 너무 맛있어. 꼭 가봐.” 우리는 그렇게 김치에서 대화를 시작해 각자의 커리어에 대한 얘기를 짤막하게 나눈 뒤 여행지에서 빠질 수 없는 장소 추천까지 대화를 이어갔다. 대화는 자연스레 이어졌고,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와인잔 옆 냅킨이 살짝 들썩였다.


나는 문득 김치가 숨기고 싶은 음식이었던 나의 과거가 떠올랐다. 2004년, 아빠의 유학으로 온 가족이 막 미국으로 이주해 살고 있을 때였다. 미국에 간지 한 두어달 되었을라나.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 and you?” 수준의 영어를 구사했던 나는 또래 아이들과 대화하는 것이 두려웠다. 엄마가 YMCA에서 하는 수영 프로그램에 끊어줘서 다니기 시작했는데, 아이들이 하는 말과 선생님들이 하는 말이 정확히 이해되지 않았다. 마치 아빠가 차에서 줄곧 틀어놓곤 했던 영어 라디오를 듣는 것 같았다. 딱딱하고 낮은 억양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의 덩어리들.


점심 시간은 유독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각자 집에서 음식을 싸오는 방식이었다. 엄마는 도시락이 필요하다하니 한국에서 으레 그랬던 것처럼 김밥을 싸줬다. 멸치와 김치가 들어간 멸치 김치 김밥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샌드위치를 꺼냈다. 고소한 빵에 얹어진 단백한 햄과 야채의 냄새.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내가 가방 속에 숨기고 있는 멸치 김치 김밥은 그들의 호기 샌드위치와 완전히 다른 냄새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가방에서 김밥을 꺼내자마자 익숙한 김치 냄새가 주위에 퍼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잠시 정적이 감돌다 누군가가 질문했다. “What is that?”

나는 마땅히 묘사할 단어를 찾지 못하고 수치심에 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특유의 강렬한 향으로 설명을 요하는 김치가 부끄러웠다. 또래와 다른 것이 유난히 부끄러웠던 시기였다. 나는 김밥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다시 가방에 넣었다. 창피한 것보단 차라리 배고픈 게 낫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꽤 흐른 뒤, 나는 다시 낯선 도시의 식탁 앞에 앉게 되었다. 2016년의 파리였다. 한때 김치 냄새를 부끄러워했던 나는 이제는 김치를 포함한 한국의 강렬한 냄새를 갈망하고 있었다. 향수병을 앓는 나에게 이 곳에 있는 한국 음식들은 다 가짜같았다. 잘난 프랑스인들의 입맛에 끼워 맞춰져 매워야 할 음식이 달았고, 깊은 맛을 내어야 할 음식이 심심한 맛을 냈다. 메뉴는 왜 죄다 비빔밥, 불고기밖에 없는지. 순대국, 김치찌개, 감자탕, 곱창… 먹고 싶은 한국 음식 리스트를 메모장에 적어두고 한식당을 죄다 찾아다니며 내가 찾는 메뉴가 있는지 확인하곤 했다. 그 중 가장 그리워했던 것은 양념치킨이었다. 바삭바삭한 튀김옷을 입고 있는,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살짝 매콤한 마늘 향이 입안 가득 퍼지는, 시원한 맥주와 가장 잘 어울리는 양념치킨.


파리에서 양념치킨을 판다는 곳은 다 가보았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깐풍기와 같이 간장맛 나는 양념치킨, 케첩맛이 너무 강한 양념치킨. 여러번의 실망스러운 파리 한식당 방문 끝에 나는 결심했다. 까짓것 직접 튀기기로. 까르푸에서 해바라기씨유 한통과 생닭을 사고, 친구에게 튀김용 트레이를 빌렸다. 요리초보가 겁없이 시도한 치킨은 눅눅했다. 전분가루를 넣어야 한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그렇지만 소스. 소스 만큼은 다진마늘을 때려넣어서 인지 마늘향이 가득했다. 눅눅하지만 익숙하고 강렬한 맛을 가진 양념 치킨을 친구들에게 대접했다.


“이게 바로 진짜 Korean chicken이야.”


당시 내가 만든 Korean 칙힌. 비주얼은 꽤 그럴듯하다.


친구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 맛있는데? 매워보였는데 먹어보니 별로 안 맵고 맛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치, 한국에서는 그걸 일상적으로 먹어. 파리에는 제대로된 한국 치킨이 없다니까.”


한때 김치 냄새를 창피해했던 과거가 무색하게 나는 그 일을 계기로 한국 음식 전도사가 되어 있었다. 프랑스 친구들에게 한국 음식을 대접하고 나서 만족스러운 반응을 볼 때마다 또 다시 학부모 미소가 베어나왔다.


당시 파리의 한식당 메뉴들이 유난히 실망스럽게 느껴졌던 데는 사실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때 파리에서는 라멘과 우동이 인기였다. 내가 친구들과 자주 가던 식당 중에 Kodawari Ramen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식당에 들어서면 마치 일본 포장마차를 연상시키는 부스들과 한자가 그려진 새빨간 등불들이 정말 일본 거리 한복판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가장 인기 메뉴는 검은깨 라멘이었는데, 검은깨를 갈아넣은 닭 육수로 만들어 검은 국물이 특징이었다. 일본 라멘이 익숙했던 나도 검은 국물을 보고는 처음에 멈칫했는데, 내 옆에 있는 프랑스 사람들은 포장마차 같은 좌석에 빼곡히 앉아 검은깨 라멘을 마음껏 음미하고 있었다. 마치 검은 국물의 라멘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그도 그럴것이 당시 파리에는 가장 트렌디한 동네에 사누끼 우동, 일본 가정식집, 스시집, 일본 디저트 가게 등 감각적인 일본 음식점들이 즐비해 있었다.

즐겨가던 Kodawari Ramen

그런데 이런 파리에서 한국 식당이 팔고 있는 것이 고작 달기만한 불고기, 80년대 스타일 비빔밥이라니. 다른 맛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데? 파리 친구들에게 나의 눅눅한 한국 치킨밖에 맛 보일수 없는 현실에 개탄하며 나는 고대해왔다. 언젠가 이들을 한국으로 데려와 진정한 한국 음식을 맛보게 해주리라.


실제로 몇년 뒤 프랑스 친구들이 한국에 왔을 때 나는 서울의 온갖 맛집들을 수소문해서 친구들을 데리고 갔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삼계탕, 고추장 불고기와 정갈한 반찬들이 놓인 한식 한상, 삼겹살과 한국식 쌈,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치킨.

이태원에 있는 치킨윙 전문점에 데려가 배를 땅땅 두드려야 할 정도로 배불리 먹였다.


“어때, 한국 음식 엄청 맛있지? 프랑스 음식보다도 맛있지 않아?”


내가 이렇게 질문할 때마다 프랑스 음식에 자부심이 대단한 프랑스 친구들은 절대 프랑스 음식보다 맛있다 동조하진 않았지만 말없이 두 엄지를 치켜올리곤 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더 이상 한국 음식을 전파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 설명 없이도 모두가 찾는 맛이 된 것이. 그중에서도 내가 한때 숨기고 싶어했던 김치는 한국 음식 중에도 가장 보편적이고 잘 알려진 맛이 되었다. 깊고 풍성한 맛. 어디든 추가하면 느끼했던 음식이 시원해지고, 심심했던 음식이 알싸해지는 특별한 맛. 그 특별함을 원래 한국인들끼리만 알았는데 이제 세계인 모두가 아는게 되어서, 치즈 샌드위치에 김치를 넣어 먹기도 하고, 치아바타에 김치를 넣기도 하고, 샐러드에 김치를 넣기도 하고 각자의 고유한 방식들로 김치를 요리하는 세상이 되었다.


다행이다. 덴마크 사람들도 일상적으로 김치를 소비하는 세상이 되어서. 김치의 깊고 특별한 향을 더 이상 내가 설명할 필요도, 누군가 낯설어할까 눈치볼 필요도 없어서. 어쩌면 파리의 한식당도 이젠 달기만한 한국 음식을 내놓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어서.


암, 발효식품 중엔 김치 이길게 없지. 덴마크 애들이 뭘 좀 아네.

keyword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