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개인적인 스웨덴 스톡홀름 여행기 (2)
암스테르담에 도착해 내가 든 생각은 바로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른 거지?” 였다.
암스테르담 숙소에 가기 위해 기차역에 내렸는데, 커다란 후드를 뒤집어 쓴 덩치 큰 남자가 대마를 피고 있었다. 후드로 인해 얼굴이 그림자져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는 전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외곽이라 그런지 사람이 1명도 없었다. 나는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무뚝뚝하고 싸움 잘할 것 같은 표정을 한 채 그의 곁을 유유히 지나갔지만, 사실 생각같아선 너무 쫄려서 빛의 속도로 그의 시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다행히 그는 내가 지나치건 말건 그 자리에서 계속 대마를 피고 있었고, 나는 한 손엔 구글맵, 한 손엔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굴곡진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역에서 8분거리라는 숙소는 꽤 긴 시간을 걸은 것 같은데 아직 나오지 않았다. 운하를 따라 펼쳐진 커다란 나무들, 자전거를 탄 채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테라스에 앉아 시끄럽게 떠드는 장신의 현지인들. 내가 맞게 가고 있는건지 확인하고자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데 그제서야 내가 혼자 유럽 여행을, 그것도 이 커다란 인간들이 살고 있는 나라를 겁도없이 홀로 왔다는게 실감이 났다.
그래서일까.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마커스를 보는 순간, 나는 이 도시에 내가 잘 아는 현지인이 있다는 사실에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나는 단숨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마커스는 Södermalm 버스 정류장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쏘옥” 하고 우뚝 솟아 있었다. 마커스는 환하게 웃으며 나를 따뜻하고 커다란 허그로 반겨주었다. 마커스 옆에는 붉은기가 도는 금발을 깔끔하게 포마드로 넘기고, 잘 가다듬은 턱수염을 한 남자가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마커스와 친했다던 톰은 환한 미소로 나를 반겨줬는데,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너무나 친근하게 나를 대하는게 영락없는 마커스의 친구였다.
오늘은 스톡홀름에서의 첫번째 날이었고, 마커스는 나를 미국 그래픽 아티스트의 전시 오프닝 행사로 초대했다. 마치 호수같이 잔잔한 바닷가 앞에 거대한 기차역을 연상시키는 벽돌 건물이 있었는데, 그 건물이 바로 행사가 열리는 사진 미술관 Fotografiska 였다. 6시가 다되가는 시간이었는데, 백야로 인해 낮 12시와 같은 강렬한 태양이 바다를 반짝거리게 비추고 있었다.
미술관 앞에는 간단한 핑거푸드와 자유롭게 따라마실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썸머 와인이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마커스와 톰을 따라 접시에 바삭한 패스츄리가 맛있어 보이는 미니 핫도그, 통통한 스웨디시 미트볼, 그리고 마요네즈와 딜이 섞인 새우 오픈샌드위치를 담았다. 우리는 스톡홀름에서의 새로운 우정을 기념하며 쨍하고 샴페인 잔을 부딪혔다.
우리는 전시장을 조금 구경했는데 그래픽 아트에 큰 관심이 없어서인지 금방 흥미를 잃었다. 때마침 톰은 지인들을 만나 대화하고 있었고, 마커스와 나는 인물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2층으로 이동했다. 나는 그 중에서도 Sian Davey라는 영국 작가의 The Gardens라는 사진 시리즈에 눈길을 빼앗겼는데, 화려하지만 어딘가 야생적인 느낌의 정원 안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포착돼 있었다.
그때, 말없이 사진을 쳐다보던 마커스가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그린, 나 사실은 예전부터 이 얘기 너한테 해주고 싶었어. 나는 한국을 너무 좋아하지만, 사실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너에게 잘 안 맞는다고 생각해. 한국은 어떤 측면에서는 꽤 닫혀있는 나라잖아. 난 너가 그곳에서 좀 답답할 것 같아. 너는 해외에서 더 행복해할 것 같아.”
마커스와의 대화는 늘상 그랬다. 그는 유쾌하고 밝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좀처럼 겉도는 얘기를 하질 않았다. 나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날카로운 관찰들을 갑작스레 던지는 마커스의 진지함을 좋아했다.
마커스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한국은 내가 한평생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나라였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음식이 있는 곳. 파리에 살 때 유독 그리워했던, 내가 돌아갈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국에 살면서 자주 나 자신을 의심하곤 했다. 자유로운 걸 좋아하는 나의 성향은 때때로 한국 사회의 규율과 시스템과 부딪혔고, 공동체성을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나만 자꾸 튀는 건 아닌가 눈치 볼 때도 많았다. 한국이 틀렸다기 보다는, 이 안에서 자꾸만 내가 나를 덜 사랑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나는 말을 고르다 한 박자 늦게 입을 열었다.
“언젠가 다른 나라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긴해. 기회가 된다면 미국에 공부하러 한번 가보고 싶어.”
그때 마커스가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근데 그린, 나 이거 물어보고 싶었어. 스웨덴의 어떤 점이 끌려서 여행을 결심하게 된거야?”
나는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사실 순전히 호기심 때문에 스웨덴에 방문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스웨덴에 직감적으로 끌렸었고, 그 이유는 스웨덴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과 닮은 것처럼 느껴서였다.
“사실은 나, 스웨덴 사람과 한국 사람이 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었어. 그래서 더 궁금했었던 거 같아.”
그 말에 마커스가 웃었다.
“너도 느꼈구나. 나도 한국에 있었을때 정서가 잘 통한다고 생각했어. 스웨덴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본인을 과시하는 걸 싫어하는 점도 닮았고, 너 말처럼 한국 사람들이 엄청 정 많고 따뜻한데 그것도 스웨덴이랑 닮았어.”
“맞아, 나는 그게 너무 신기했어. 스웨덴이랑 한국은 너무나 동떨어져보이는데 정서가 비슷하다는 걸 누가 상상했겠어.”
그때 마커스가 갑자기 씩 웃더니 물었다. “그린, 내가 한국에 어떻게 처음 가게됐는지 너한테 말해줬나?”
그러고보니 한번도 마커스가 왜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온건지 물어본적이 없었다. 내가 고개를 젓자 마커스가 말했다.
“사실 난 스페인에 가려고 했어. 고등학교 때부터 스페인어를 배웠었고,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궁금했거든. 그런데 1지망이었던 스페인 대학이 떨어진거야. 그래서 그냥 이참에 인생을 살면서 이번이 아니면 가볼 기회가 없을 것 같은 나라로 가기로 했어. 당시 한국과 남미의 어떤 나라 중에 고민했는데, 이상하게 한국에 더 마음이 끌리더라고. 그래서 결심했지. 오케이, 난 한국에 간다.”
“앗, 정말? 그래서 오게 된 거였어?”
마커스는 이런 점이 나와 달랐다. 그는 겁이 없었다. 우리가 같이 들었던 경영대 수업은 100% 한국어로 진행됐는데, 그는 수업 커리큘럼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올리버라는 다른 스웨덴 친구와 덜컥 강의에 등록했다. 이것저것 앞뒤 재지않고 일단 도전해보는 스타일이었고, 이런 점이 항상 마지막까지 천천히 고심하는 나와는 달랐다. 나는 그의 이런 삶의 결이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본인의 결정에 대해 빠르게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결단력과 여유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니까? 근데 그렇게 조금 랜덤하게 온 한국인데 막상 와서 마음이 너무나 편안한 거 있지? 너 말대로 정서가 이어져있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어. 그리고 또 한국 사람들이 술을 잘 마시잖아. 나는 한국에서의 술문화를 정말 사랑했어. 아 또 교환학생 때 그립다, 그때 너무 재밌었는데.”
그때 톰이 마커스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응, 우리 지금 2층에서 대화중이었어. 1층으로 내려갈게.”
우리는 다시 행사장으로 돌아가 톰을 만났다.
“이제 전시는 충분히 본거 같지? 이동해서 간단히 맥주 한잔 하러 갈까?”
“좋다. 여기서 걸어가면 바 모여있는 거리 있잖아.”
우리는 항구를 지나, 언덕길을 따라 걸었다. 스톡홀름 특유의 알록달록한 색깔을 가진 바들이 눈에 띄었고, 차갑고 깨끗한 공기가 기분 좋게 얼굴에 닿았다. 테라스에 앉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바에서 틀어놓은 Lo-fi 음악 소리와 섞여 들렸다. 어느덧 스톡홀름에서의 첫날이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