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 질문6) 매일 봐야 하는 데 어느 쪽이 더 맞는 사람과 만나실래요?
[주의사항] : 브런치스토리 글쓰기 플랫폼은 (적어도 필자가 이해하기로는) 어떤 소재나 주제든 제한 없는 글쓰기의 '자유로움'을 표방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에 걸맞게 다양한 분야와 다방면의 관점을 가진 창의적 글쓰기를 지향하고 (또 지원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미풍양속"?(美風良俗)을 해치지만 않는다면 어떤 개인적 단상이든지 모두 다 쓸 수 있다고 판단하여 쉽지 않은 토픽(topic)이지만 오늘의 '양자택일'(兩者擇一)로 한 번 적어봅니다.(종교가 없는 분, 그리고 정치에 관심없는 분도 같이 고려했음을 밝혀 둡니다.)
만약 이 글 주제가 불편하시면 지금이라도 이 창을 떠나시기 바랍니다.
위에 너무 거창하게 '주의' 운운하며 서설(序說)을 풀어놓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글을 쓰기 전 몇 번을 망설였다.) 사실 뭐 엄청 대단한(?) 주제도 아니고, 터부(taboo)시할 대상은 더더욱 아니지만, 하도 논쟁이 많은 예민한 테마(theme)이다 보니 미리 지레짐작 겁먹은 걸까? 둘 다 너무 자기 입장만 고수하는 "확증 편향"(確證偏向)의 '대명사'이어서 일까?
예를 들자면, 전부 다 해당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대개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진실이 무엇이든 무시하고, 또 믿고 싶지 않은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면서.
각설(却說)하고, 어쨌든 소제목 그대로 "매일 봐야 하는 데 '종교'와 '정치'중 어느 쪽이 더 맞는 사람과 만나실래요?"가 오늘의 '양자택일'이다. 특히 결혼을 앞둔 분들이나 아니면 지금 만나며 교제 중인 사람이 있으면 한 번쯤 진지하게 고민해 봄직한 주제다. 질문에 대한 답이 너무 머리 아프면,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심각한 선택과 결정이라기보다는 그냥 자주 봐야 하는 주변의 "친한" 지인 정도로 상정하고 편하게 읽으셔도 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중요시하는 키워드(keyword)로 꼽을 수 있는 테마들은 비단 '사랑'이나 '행복' 등만이 아니다. 새로운 사람을 좀 더 가까이 알아가거나 사귀는 데에 있어 그 사람의 성격, 인성, 성장 배경, 취미 등 여러 중요한 요소들이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의 '종교관'이나 '정치관' 등 한 개인의 가치관과 세계관은 그 사람을 제대로 알아가는 데 아주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하여 종교와 정치에 대해 떠오른 단상을 기록해 두고자 한다. (물론 이 두 가지가 전부 다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종교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훌륭한 "발명품"(invention)이라는 말에 대해 필자 스스로도 아무런 답을 못하고 있지만, 우리는 대개 종교를 (신을) 믿는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불안이라든가 "사후 세계"의 미스터리에 관한 상상, 또는 인간으로서는 풀 수 없는 광대한 우주의 무한한 수수께끼들 앞에서 더 자유롭다고 한다.
무신론자(atheist)나 불가지론(不可知論, agnosticism)의 관점을 갖고 있는 분들은 동의하시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래도 종교가 있는 한, 우리는 극심한 고통 앞에서도 위로받을 수 있고, 두려움 없이 (신의 가호(加護) 속에서) 죽을 수 있고, 죽은 뒤의 그 (반드시 있다고 믿는) "사후 세계"를 오히려 더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 생에서 못다 한 사랑과 행복을 저 생에서는 누릴 수 있다는 믿음과 소망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필자는 개개인의 사적인 믿음의 영역과 그 다양성을 존중함.)
다른 한편으로는 젊은 나이층에 비해 나이가 들수록, '삶의 의미'를 깊이 탐구할수록 종교에 대한 '필요성'과 '당위성'을 더 믿고 더 찾게 된다고 하는데 이 또한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물론 나약한 인간들이 "신의 벌"이 무서워 함부로 부도덕적 행위를 못하게 된다는 윤리적 "도덕론" 기여 역시 "신의 존재 유무"와 함께 논쟁이 많다.)
하지만 처참한 아이러니(irony)는 인류역사상 수많은 종교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과 지금 현재 아직도 지구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교적 차이를 배경으로 한) 그 갈등과 무자비한 폭력, 살인적 테러, 전쟁들이다. 개인이든, 특정 종파 집단이든, 포용과 관용과 '다름'에 대한 상호 존중이 "종교적"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종교적 박애주의'는 도저히 그 많은 전쟁들에 대신 자리할 수 없는 것인가?
정치는 그에 비하면 (원래는!) 훨씬 분명하고 직관적이고 확연(確然)하다고 생각한다.
다가올 미래(세대)의 복지와 번영도 말하지만 (가장 큰 '믿음의 영역'중 하나인) 일단 "내세"(來世)가 없다. 그리고 정치는, 정치 행위는 모든 것을 스스로 직접 "증명"(!)해내야 한다. 일정 기한내로 성과가 없으면 금방 지지와 신임(信任)을 잃게 되고 만다. 어설픈 정치 술수와 묘략이 요즘은 잘 통하지 않는다. 파란만장한 시절을 겪어오면서 우리 사회의 민주적 시민들의 정치의식 수준과 정치 참여도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치에 관심은 있으나 소극적인 "무당층"이나 정치 내지는 정치현상에 대한 '냉소주의'(cynicism)이다. 그들이 소위 말하는 '캐스팅 보트'(casting vote)의 역할을 할 수도 있고, '침묵'도 의사표현의 한 방법이지만 그래도 정치는 어떤 식으로든지 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본다. 정치적 참여는 함께 살아가는 우리 사회공동체 속 자신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간혹 보이는 정치 "무관심"은, 정치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은 민주 사회의 "독"(毒)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듣고 또 말한다.
꼭 뭘 판매하는 '영업'이 아니라도, 사교 모임이나 친목 행사에 가거나 어디 가서 누구랑 대화할 때 절대 '정치 이야기'('종교 이야기' 보다 더더욱?) 함부로 꺼내지 말라고. (만약 종교는 개인의 "사적 영역"이고 정치는 사회의 "공적 영역"이라면 정치가 더 중요한 사안이어야 하는가?)
법과 제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내 우리의 모든 행위는 정치적이며 또 좋든 싫든, 목소리를 내든 안 내든 그냥 침묵하든 모든 일상생활은 정치적 영향권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그로 인해 우리 모두는 모든 정치적 사안에 제3자가 아니라 철저히 직접적 '이해당사자' 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분들도 동의하시는가? 왜 우리는 각자 인생사에 그토록 ('확증 편향'이라는 "병"에 빠질 정도로) 중요한 사안(정치든, 종교든)을 쉬쉬하거나 의식적으로 애써 감추어야 하는가?
불필요한(?) 논쟁과 충돌과 갈등이 두려운가, 아니면 서로의 "다름"을 확인하는 순간 (분위기가 싸 ~ 해지고) 지금까지의 관계가 소원(疏遠)해질까 봐 겁나는 것인가? 물론 이 두 가지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서로 (자신의 관점만) 자기 이야기만 하고 말지도 모른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또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말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더더욱 터놓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런 이야기를 통해 '관점과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또 그 다른 이야기도 애써 경청하고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로 존중하지 않고 조화로울 수 없다면 (그로 인해 매일 "전쟁"하듯 싸우면서는) 우리는 절대 함께 살아갈 수 없다. (그런데, 앞으로도 우리는 이 사회공동체 속에서, 이 지구상에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각양각색의 우리가 공존(共存), 공생(共生) 해야 하는 배경이자 그 이유에 다름 아니다고 생각한다.
글을 마치며 물어본다.
자신과는 다른 가치관이나 다른 관점을(그리고 그렇게 "믿는" 사람들을) 다 빼고, 거듭해서 또다시 (제거하고 무시하고) 빼고 나면 우리 인류 모두는 어떻게 계속 존속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분들은 "어느 쪽이 더 맞는 사람과 만나실래요?"
다음 [어학사전],
절체절명(絶體絶命) :
몸도 목숨도 다 된 것이라는 뜻으로, 몹시 위태롭거나 절박한 지경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확증 편향(確證偏向 confirmation bias) :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
캐스팅 보트(casting vote) :
표결에서 양쪽의 표가 같을 때 결과를 결정하게 되는 표. 의회에서 가부동수일 때 결정을 좌우하는 의장의 결정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밖에 선거에서도 캐스팅 보트가 존재하여 한국에서는 지지 정당이 명확하지 않은 충청도와 수도권 등을 캐스팅 보트 지역이라고 표현한다.
소원(疏遠) : 서로 사이가 두텁지 아니하고 거리가 있어서 서먹서먹함.
공존(共存) : 서로 도와서 함께 존재함.
공생(共生) : 서로 도우며 함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