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e Happy Letter Jul 07. 2024

내가 브런치를 찾아오는 이유

브런치 글쓰기(35)


지난해 이맘때쯤 처음으로 브런치에 글을 쓰고 발행하기 시작할 무렵 누가 물어왔던 기억이 난다.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는 계기(契機)가 무엇이었는가라고 묻는데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평소 생각과 감흥들을 정리해서 발행글로 저장해 두고 기억하려는 의도, 그때그때마다 떠오르는 단상을 한 편의 에세이 작품으로 남겨보자는 의지였다.


하지만 어쩌면 다른 한편으로는 '일기장'을 대신할 노트, '작가의 서랍'에 틈틈이 쓴 글을 저장해 두는 글쓰기 습작 창고(?), 또는 어쩌면 멋진 글들이 차곡차곡 모이면 언젠가는 그 글들을 다듬어 책으로도 출간해 보고자 하는 소망 등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다, 평소 하고 싶었던 글쓰기를 계속 미루고 또 미루다가는 지금 아니면 도대체 언제 쓸 것인가가 가장 컸었던 것 같다.


그동안 살아오며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실들, 이리저리 생각해 온 단상들, 읽은 책들의 감상을 조금씩만 적어 내려가도 나의 글감, 글소재의 '우물'은 결코 마르지 않을 것이라 여겼지만 실제 글로 써두어도 막상 발행하기가 주저되는 글들도 많이 생겼다. 아무리 익명의 작가명으로 글을 발행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필자의 필명을 알고 있는 많은 분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만 것이다. 그리하여 스스로 어떤 자기 검열의 과정을 거쳐 각색되고 편집된 글만이 - 그것도 좀 용기를 내어야만 - 발행되었고 그런 스스로의 제한과 제약(制約)으로 자체 필터링을 거치다 보니 내가 쓸 수 있는 글들의 주제와 소재 범위는 점점 더 적어지고 좁아짐을 느끼게 되었다.


지난번 글에서 언급했던 예술적 창작행위인 글쓰기에도 새로운 소재보다는 새로운 관점을 찾아라는 모토(motto)는 필자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필자의 현재 처한 여건으로는 필자가 생각해 둔 모든 소재와 주제를 거리낌 없이 다 "발설"(發說)(?)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기에 일일이 다 열거하지 못하는 어떤 불가피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필자 개인에 관한 이야기를 소재로 몇 편의 글을 쓰고 저장해 두었는데 막상 발행을 하려니 지금도 좀 망설여진다.




글 쓰는 자신을 제대로 다 드러내지 못하는 한계와 더불어 한 명의 브런치스토리 SNS 작가(회원)로서 상호 소통하지 못하는 인터넷 온라인상 글쓰기는 때로는 힘을 잃을 때가 많다. 더 많은 호응과 응원, 더 많은 구독 등을 기대해서만이 아니라 스스로 멘털이 강하지 못해서 어떤 "비교의 늪"에 빠져 버리거나 또는 다른 독자(작가)들에 의해 비교당해야만 하는 "수모"(受侮)를 견디기가 힘들어서 인지도 모른다.(물론 그렇다고 그런 기능들을 다 Off할 수도 없다.)


어쨌거나 어떤 글이든 한번 발행하면 (많이 읽히든 아니든) 그에 관한 관심과 무관심, 고평가와 저평가, 독자의 호불호와 취향에 따라 여지없이 "도마질"될 수 있음은 각오해야 한다. 자신이 발행한 글들에 관해선 작가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듯 그 글들에 가해지는 그런 '재단'(裁斷)들도 스스로 감내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수시로 변하는 저마다의 감정변화에 주목하는 것은 글쓰기에 있어서도 자기 글에 대한 자평(自評)의 범주 속에 중요한 과제인 것 같다. '조울증'(躁鬱症) 운운하지 않더라도 예전에 발행한 글들에서 그때그때의 감정기복과 그 변화에 따라 바뀌는 개인의 감정이 글쓰기에 그리고 그 방향과 지론(持論)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음을 보게 되면 이성적 사실 직시와 가치판단 또는 "주제 파악"이 우유부단(優柔不斷)해지지는 않을까 경계(警戒)하게 된다.




브런치 글쓰기가 막 일 년이 넘어가는 이 시점에 스스로에게 다시 묻는다. 왜 브런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느냐고. 브런치 글쓰기와 글발행의 '재미'를 즐기다가 은연중에 몹시 중독된 필자 자신을 발견하곤 그 중독으로부터 벗어나려 몇 번의 고비를 거치며 다른 곳에 몰두하려 애썼지만 그리고 중간중간 몇 번 쉬어보려 디톡스(detox)도 해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지금도 그 '쉼'을 언급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못해 다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정확히는 다시 글쓰기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흠칫 놀랄 정도다.


내가 힘들 정도로 중독증세를 느끼고 그 중독으로부터 벗어나려 했지만 "해독(解毒)을 위해 그저 다른 중독이 필요하다"는 아이러니(irony) 앞에 무너지는 느낌인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다른 좋은 취미생활과 뜻깊은 여가 선용도 많겠지만 최근까지 여러모로 주눅 들었던 필자는 어쨌든 이렇듯 다시 브런치스토리 글쓰기와 글발행에 돌아왔고 다시 노트북을 펴 들고 타이핑을 하고 있다. 또다시 한 편 한 편의 글을 '작가의 서랍'에 저장해 나가고 있다. 지금 쓰지 않으면 언제 쓸건데?라는 심경(心境)으로.


어쩌면 아주 개인적인 신상(身上) 이야기와 경험, 그런 사적인 체험과 사생활, 내밀한 감정을 다 밝힐 수 없는 작가지망생들에게도 글감과 글소재는 여전히 무궁무진하다고 믿고 있다. 자신이 경험하고 관찰하는 사물과 사건들을 바라보는 관점과 해석의 새로운 접근뿐만 아니라 우리에겐 다들 저마다 '예술적 상상력'이라는 능력과 '재산'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유명한 프랑스 소설가는 집을 떠나지 않고 자기 방에서만 머물면서도 수십 권의 장편소설을 집필했다고 한다.)


삶의 원칙은 '희망'이다고 한다. 글쓰기에 있어 희망적인 것은 우리가 몸소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많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얼마나 다행이고 기쁜 사실인가! 그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버리지 않아야 한다. 가을엔 소설도 써보고 싶다. 가끔씩 어설프더라도 새로운 용기를 담아 제법 그럴싸한 이야기도 좀 더 늘어놓고 싶다.


 






조울증(躁鬱症) : [의학] 정신 질환의 하나로, 감정 변화의 기복이 심하여 상쾌하고 흥분된 상태와 우울하고 억눌린 상태가 번갈아가며 또는 한쪽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증세. 갱년기 때에 많이 발생한다.(다음 [어학사전])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브런치를 떠나려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