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e Happy Letter Oct 11. 2023

먹고살기 힘든 이 시대, 글쓰기 어려움 극복 방법

브런치 글쓰기(15)- 백만 불(US$) 얻은 자의 글쓰기


미화(US$) 백만 불은 최근 얼마 전 환율로 한화 약 13억 원에 해당된다. 독자 여러분은 어느 날 이런 큰돈이 갑자기 그냥 주어진다면 무엇을 제일 하고 싶은가? (그저 즐거운 상상일 뿐이라고 치부(置簿)하고 말겠는가?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정 짓고 더 이상 답하고 싶지 않으신가?)


집이 없으면 아파트를 새로 살 수도 있고, 이미 집이 있으면 평 수를 좀 늘려 새로 이사를 갈 수도 있고, 좋은 새 차를 살 수도 있고, 엄두도 못 내던 비싼 가전기기며 생활용품을 살 수도 있고, 아니면 이른 아침부터 늦은 시각까지 힘들게 일하며 매일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오랜 시일 동안 해외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물론 그냥 저축할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나 불우이웃을 돕는 데 쓸 수도 있다.


이와 같이 각자 개개인이 처한 여건에 따라 좀 다르겠지만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오히려 꼭 반드시 무엇을 하고 싶다는 것이 아예 없거나 모호할 때 고민이 깊어진다. 무엇을 할까? 어디에 쓸까?를 잘 모를 때 우리는 아무리 큰돈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돈에 큰 의미를 갑자기 부여하기도 어려워진다.


이런 비유로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항상 문제는 우리가 제일 하고 싶은 것이 뭔지를 모르거나 또는 너무 많을 때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는 것도, 또 그중에 우선순위가 없다는 것도 엄격히 말하면 뭘 하고 싶은 지 잘 모르는 것의 범주에 속할 수도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두 자리(two-digit) 수의 아주 긴 버킷 리스트(bucket list)처럼 하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으면 이 생(生)에선 도저히 다 못하고 ('종교의 힘'을 빌려) 다음 생(生)으로 "이월?"(移越)시켜 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다음 생이 주어질지 여부는 지극히 개인적인 '믿음의 영역'인지라 필자로서는 뭐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좀 많이 사용해서 빛이 바랜 것 같아 보여도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은 이 생에서 한정된 삶의 시간(평균 약 80년 내외)만을 살다가는 개인사에 있어서 여전히 유효하고 강력한 힘을 갖는다고 필자는 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며 저마다 어떠한 여건하에서든지 애정과 열정을 갖고 하고 싶어 하는 일, 몰두할 수 있는 일이 하나쯤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덧붙여, 또 한 가지 더 분명한 것은 이 생에서 우리가 꼭 하고 싶은 것 하나만이라도 마음껏 잘하고 떠날 수 있다면 저 세상으로 떠나는 발걸음이 훨씬 가벼울 수 있으리라 본다. 그렇게 미련 없이 여한 없이 떠날 수 있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 자신이 선택하고 또 몰두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의 짧은 인생에서 수많은 하고 싶은 일들 중에서 다름 아닌 바로 이 '글쓰기'를 제일 우선으로 선택하고 글쓰기에만 집중하는 작가분들은 앞서 언급한 이런 연유로 오늘도 글쓰기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이 미술이나 음악, 영화가 되거나 혹은 다른 분야, 다른 일이 되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한다.(한 가지를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것을 포기한다는 아픔이 될 수도 있는데 이에 관해선 다음 편에.)


글쓰기는 필자 개인적으로는 정신적 명상이자 자기 수양이나 수행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매번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글을 쓰면서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동반하기 때문이라고 본다.(생각 없이 글 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기반성과 성찰이 항상 함께 하게 된다. 좀 현학적으로 보이려거나 수려한 미사여구를 덧붙이기 위한 노력보다는 지금 눈앞에 쓰고 있는 글과 자신의 일체화가 더 어렵다는 것을 매번 절감하게 되는 것이 글쓰기인 것 같다.


이러한 자기 신념이 물론 조금씩 흔들릴 때도 있다. 글쓰기를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내 글을 읽어주시는 구독자분들, 알림 설정하신 분들을 생각하면, 그 조회된 수를 보면 글쓰기를 멈출 수가 없다. THL의 글을 기다리는 독자분들을 생각하면 그분들의 응원을 떠올리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더라도 THL 행복에세이는 계속되어야 하며, 이것이야말로 필자가 글을 쓰는 큰 동력이자 이유 중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대개 나중에, 아주 나중에 먹고살만하면 그리고 충분한 여유가 있으면 그때 가서 그토록 하고 싶었던 그 일을 시작하려고 하는 오류를 범한다. 그러다 보면 종국에 대부분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거나 또는 임종(臨終)이 다가오면 아, 이번 생(生)은 글렀다며 체념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분들은 그토록 하고 싶은 글쓰기를 이 생에서, 그것도 바로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고 생각한다.


우리 대부분 여기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고 발행하는 것이 꼭 무슨 대단히 여유(?) 있는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라고 본다.(물론 일부는 부유층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우리는 마치 어제 로또(로토 복권 lotto)에 당첨이라도 된 양, 그리고 그 "백만 불"을 손에 쥔 자처럼 (마음만으로는 아무런 먹고살 걱정 없는 듯) 우리의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백만 불", 그러니까 "13억 원"이라는 많은 돈이 주어져야만 마침내 일상생활 속에서 충분한 여유를 갖고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유럽에서 아주 인기 있는 강연자인 Rolf Dobelli가 2017년에 출간한 [The Art of the Good Life. Clear Thinking for Business and a Better Life]의 마지막 부분인 맺는말(Afterword)의 Notes에서 강조한 대목을 참조하시길 바란다. (Translated from the German by Caroline Waight)



Another definition came to me over lunch with a friend, an entrepreneur who had built up a fortune of several hundred million. It was summer. We were sitting outside. The pub had metal tables that had been repainted several times, our shoes crunched on the gravel, and we had to be careful that no wasps had crawled over the rims of our glasses when we lifted our ice tea to our lips. We talked mostly about my work—plans for this book—and his: investment strategies, financial interests, asset management, issues with donations, problems with employees, drivers, servants, maintenance on his private jet and, on top of this, his time-consuming positions on various boards of directors, whose prestigious membership he had earned not merely because of his wealth. Suddenly the words tumbled from my lips: "Why, my dear friend, do you do it all? If I had all your millions, I'd spend my time doing nothing but reading, thinking and writing." It wasn't until I was on the way home that I realized, oddly startled, that that's exactly what I do. So that would be a definition of the good life: somebody hands you a few million, and you don't change anything at all. (p. 260)
*Source : [The Art of the Good Life. Clear Thinking for Business and a Better Life](2017) by Rolf Dobelli




이 글을 퇴고하던 지난 주말 토요일부터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의 갑작스러운 전쟁 발발로 지구 반대편에서는 며칠 사이에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참혹한 뉴스를 접하고 있다.


이러한 전쟁의 시작이 물론 어느 날 하루아침에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수세기 또는 그 이상의 긴 시간 동안 갈등과 대립이 쌓이고 쌓인 결과라는 주장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세계는 두 부류의 입장으로 나누어져 가며 "친팔레스타인 vs. 친이스라엘"간의 첨예한 대립으로 그 분쟁이 타 지역, 타 국가로도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설상가상으로 중동지역 주변 국가들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은 자국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득실에 따라 (어느 편을 지지한다 라는) 국가별 외교적 입장 표명을 하기 시작하면서 일촉즉발(一觸卽發)의 확전의 위기와 긴장감 속에 주변국 및 강대국 간 대리전의 우려를 낳고 있다.


이에 곧 있을지도 모르는 국제 유가(油價oil price) 폭등으로 인한 국내 물가 영향 등 경제적 파급 문제뿐만 아니라 복잡하게 얽힌 국가 간의 외교적 문제 때문에 좋든 싫든 어쩔 수 없이 한국도 어떤 스탠스(stance)를 분명히 밝히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처럼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지 않은 소시민이라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전쟁 앞에서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최소한 인도주의적이고 평화주의 지향의 국가적 입장 표명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선의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모이면 여론이 되고 정책이 된다. 물론 정책에 반영되려면 반드시 투표 권리를 행사해야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참과 거짓의 싸움에서 참이 이기고, 선악의 싸움에서 선이 이기고, 공정과 불공정에서 공정이 이기는데 기여하고자 한다면 말이다.


먹고살기 힘든 이 시대에 험난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필자 나름대로 자구책(自救策)을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스스로 자기 성찰 같은 글쓰기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일말의 자기 위안을 위해 또 오늘의 이 단상을 잊어버리기 전에 여기 기록해두고자 하며, 언젠가 먼 훗날 다시 읽고 이때의 이 심경(心境)을 기억해 내고자 할 따름이다.









다음 [어학사전],

일촉즉발(一觸卽發) : 조금만 건드려도 곧 폭발할 것 같은 몹시 위험한 상태.

자구책(自救策) : 스스로를 구제하기 위한 방책.

버킷 리스트(bucket list) :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적은 목록.



매거진의 이전글 양심(良心)에 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