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L행복론 17) 우리가 지금 가진 것에 겸허해야 하는 이유
주의) 이 글에 등장하는 직업군이나 특정 믿음과 신앙 영역을 폄훼할 의도가 전혀 없으니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제목과 위에 미리 언급한 주의 공지 때문에 혹시 어떤 부정적 선입관을 갖게 만드는지 모르겠지만 개인적 단상임을 전제로 미신(迷信), 주술(呪術)과 무속신앙(巫俗信仰)에 관하여 아래와 같이 서술하였으니 일단 이 글(각색된 사례 포함)을 다 읽어보신 후에 독자분들은 어떻게 보시는지 각자 자유롭게 판단하시면 될 것 같다.
C사에서 인정받던 영업팀장 베테랑 A과장이 어느 시기부터 갑작스러운 실적 저조로 인해 그 해 연말을 앞두고 인사발령 때 타 부서로 좌천(左遷)되고 말았다. 그 공석을 채울 후임자를 물색하던 중 적당한 인력을 찾지 못해 고심하던 회사는 이 영업팀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B대리를 우선 임시로 영업팀장 직무대리로 발령을 내고 급격히 하락하여 부실한 영업실적 관리를 맡게 하였다.
그런데 영업실적 저조로 회사가 어려움에 처했던 그 해 연말이 지나자마자 그다음 해 연초부터 갑자기 기존 거래선들의 주문이 다시 쇄도(殺到)하고 심지어 신규 거래선으로부터도 주문을 많이 받아 B대리의 영업실적이 크게 늘었다. 이로 인해 회사의 재무구조가 호전(好轉)되고 영업이익 또한 증대하여 B대리는 특별 인센티브(incentive)를 받고 높은 인사고과로 인해 바로 다음 승진 대상자로 이름까지 올리게 되었다. 정말 B대리가 영업팀장 직무대리를 하며 영업팀의 실적을 갑자기 단시일 내 크게 증가시킨 것일까? 이 모든 것이 A과장의 잘못이고, B대리의 실력과 노력 때문일까?
좌천된 A과장의 실적이 안 좋았던 전년도는 세계적으로 경기침체, 국제 정세 불안에 대한 우려로 일시적으로 위험요소가 많아 보여 기업투자 감소와 소비지출 감소가 팽배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B대리가 잠깐 직무대리한 그다음 해 초부터는 이러한 기존의 위험요소가 점차 사라지고 국제 정세나 국내외 경기가 호전되면서 투자도 다시 활성화되고 소비지출이 증가하며 영업팀의 수주 또한 되살아나는 시기였다.(*각색된 사례)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직장인들이 흔히 말하는 이른바 "운칠기삼"(運七技三)을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직장을 어떤 운(運)이나 요행(僥倖)을 바라며 다닐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당연한 말이겠지만, 아무리 좋은 운이 찾아와도 그 운을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준비가 잘 안 되어 있거나 충분한 능력이 없는 직원은 그 운을 누릴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운"이 일부 중요한 요소다라는 사실은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치더라도 굳이 말하자면 대부분의 인정받는 성공적 직장 생활과 승진은 대개 실력에 의해 좌우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야, 그 B대리는 운도 엄청 좋아!"와 같은 말들을 자주 듣게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독자분들은 이사해야 할 때 미리 "손 없는 날"을 꼭 잡아야 하는 편인가? 집안 행사 날짜 잡기 전에 그 "손없는 날"을 받기 위해 무속신앙을 찾아가는 편인가?(예를 들면, 결혼하기 전에 결혼일자를 정할 때 등)
Daum [백과사전]에 찾아보니, '손 없는 날'이란 "귀신이 훼방을 놓지 않는 길일"을 말한다. "예로부터 우리 민간 습속에 이사를 하거나 큰 행사가 있을 때는 '손 없는 날'이라 해서 좋은 날을 골랐다"라고 하며, "동서남북 네 곳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사람의 일을 방해하는 귀신이 곧 '손'"이라고 한다.
왜 사람들은 '좋은 게 좋다'라고 여기며 이사 가기 전에 (또는 결혼을 앞둔 사람들은 결혼일자를 정하기 전에) 손없는 날(길일)을 찾고 동네 점집이나 철학관, 또는 신내림 받은 무당을 찾아갈까?
마찬가지로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할 때나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 새로운 사업 투자를 시작하려는 사업가들, 그리고 중요한 큰 시험을 앞둔 수험생(대개는 수험생의 부모들)은 왜 그 큰 결정과 투자, 시험 등을 앞두고 무속신앙을 찾아가서 점을 보고 주술의 예언을 묻는 걸까? 평소 일상에서 우리는 대개 미신(迷信)을 (과학적 근거가 없어)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치부(置簿)하면서도 실제로는 일상 속 처한 상황에 따라 여전히 '샤머니즘'(Shamanism)이라는 '무속신앙'에 의존하려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 한 후에는 '하늘의 뜻'에 맡길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간절한 바람이라도 어느 누구도 장담하거나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이때 유일한 위로는 어쩌면 기도뿐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특정 종교를 믿고 독실한 신앙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종교에 기대어 기도를 더 열성적으로 열심히 하겠지만 (종교가 있고 없고를 떠나) 우리는 소소한 일상사에서도, 또 중요한 일을 앞두고도 불안하고 간절한 마음에 평소에는 "미신"이라고 부르는 그 무속신앙을 찾아가게 되고 마는 것 같다. '좋은 게 좋다'라고 하며.
다른 사안들도 마찬가지지만 예를 들면, 정치나 사업에는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백 퍼센트 전부 다 통제하거나 관리할 수 없는) 변화무쌍한 변수가 워낙 많아 예측하기 어려울 때가 많이 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주술이나 미신에 의존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한다. 새 사무실 개소식이나 개업식 때 통째 삶은 돼지머리 앞에 절하고 또 무당을 불러 굿도 하는 것처럼 그다음에 할 수 있는 것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길 애타게 바라는 기도다. 오랜 가뭄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을 때 비 오길 기원하며 행하는 '기우제'처럼.
위의 이 글 제목으로 다시 돌아와서 오늘의 화두를 되새기며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인디언 기우제'는 원래는 "될 때까지 무한정하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는 말 뜻이었지만 이젠 가능성이 희박한 일에 무작정 매달리고 있을 때도 '인디언 기우제를 지낸다'라고도 한다. 이로 인해, 요즘 항간에 냉소적으로 비아냥거릴 때 사용하는 "인디언식 기우제"라는 표현도 있다. 어쨌든, 정말 기도를 성심성의껏 열심히 해서 비가 오는 것일까? 아니면, 오랫동안 기도하다 보니까 어떻게 우연의 일치로 비가 오는 것일까? 이제 독자분들은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시는가?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은, 대부분의 우리 일상사는 피나는 노력에 의해 달성되는 일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소유하거나 누리는 거의 모든 것들은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하며 부단히 노력한 후의 결과물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이 글에서 전하고자 하는 논지 때문에 피. 땀. 눈물의 노력의 과정이나 (성공 또는 실패, 그 어떤 식의 결과이든) 결과가 과소평가되거나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에는 이견(異見)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분들이 (심신 모두 건강하게) 그런대로 비교적 잘 살고 있고 좀 괜찮은 보수를 받는 직장에 다니고 있거나 넓은 평수, 좋은 집에 지금 살고 있다면, 당연히 살아오면서 열심히 성실히 노력한 것이 가장 큰 연유이겠지만 거기에는 여러분이 생각지도 못한 (저마다 정성을 다해 열심히 기도를 했던 안 했던) 어떤 "운"도 함께 따라 줬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지금 가진 것과 누리고 있는 환경에 한없이 겸허(謙虛)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태어난 것이 지금 전쟁 중인 어느 분쟁 지역 국가에서 태어난 것보단 엄청난 “행운”(good luck) 일수 있듯이.
다음 [어학사전],
미신(迷信) : 1. (기본의미) 종교적으로 보편성을 지니지 못하며 일반인들 사이에서 헛되고 바르지 못하다고 인정되는 믿음이나 신앙. 미신과 종교, 미신과 전통문화 따위를 구별하는 기준에는 가치 판단이 개입되기 때문에 정확하게 개념을 규정하기 어렵다. 2.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것을 맹목적으로 믿음.
주술(呪術) : 초자연적인 존재의 힘을 빌어 재앙을 물러가게 하거나 앞으로 다가올 일을 점치는 행위.
무속신앙(巫俗信仰) : [종교] 무당을 중심으로 하여 민간에 전승되고 있는 토속 신앙.
운칠기삼(運七技三) : 운이 칠 할이고 재주나 노력이 삼 할이라는 뜻으로, 사람의 일은 재주나 노력보다 운에 달려 있음을 이르는 말.
운(運) : 1. (기본의미) 사람의 힘을 초월한 천운(天運)과 기수(氣數). 2. 일이 좋게 이루어지는 운수.
요행(僥倖) : 뜻밖에 얻는 행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