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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Happy Letter Nov 07. 2023

'이름'에 관하여


해외생활, 외국생활 중에 가장 어려운 문제는 무엇일까? 맞다. 단연코 첫 번째는 의사소통을 위한 외국어다. 해외 비영어권으로 며칠 (가이드 없이) 자유여행을 해봐도 그 현지 사람과 해당 지역 '현지어'로 좀 친하게 많은 의사소통을 해 볼 수 있다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 때가 많다.


그다음은 그 지역의 법과 제도 차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지 일상생활 속 사회 관습, 문화와 사고방식 차이일 것이라고 본다.


잠깐 머무는 해외 여행객이 아니라 현지에 체류해서 공부든, 직장생활이든 (혹은 또 다른 연유로) 여기서 좀 몇 년 실제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상황은 또 많이 다르다. 문화와 사고방식 차이 외에도 음식 문제도 있다. 개인차가 좀 있겠지만 좀 오래 있으면 현지 음식이 안 맞아서 고생하시는 분들도 있다. (한 보름만 해외여행 다녀도 금방 얼큰한 김치찌개나 라면이 생각난다며 "빵"은 도저히 더 이상 못 먹겠다는 사람들도 많이 있듯이.)




잊어버리기 전에 '이름'에 관하여 떠오른 단상을 짧은 글로 남기려다 서설이 좀 길었다. 익히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서양권 문화에서는 일상생활 속에서 대개 서로 이름(first name)을 자주 부른다. (단, 무조건은 아니다! 그 형성된 상황이나 조건, 환경에 따라 다르며 성(family name)으로 불러야 할 때도 많다.)


독일도 가족 간이나 친구들 사이 외에도, 그러니까 일상이나 사회(직장) 생활 중에서도 격식과 관계, 친밀도에 따라 또는 서로의 합의하에 성(family name)이 아니라 그냥 이름(first name)만을 부를 수도 있다. Emilia야, 또는 Noah야, Sophia야, Michael 등등.


여기서 독일 초등학교 입학식 후 며칠 뒤에 학생들과 학부모 모두 함께 모여 교실에서 하는 어떤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새 학급을 맡으신 지 며칠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담임 선생님이 한 스물 몇 명 되는 반 학생들을 소개하면서 한 명 한 명 이름을 (리스트도 안 보고) 일일이 다 호명(呼名)하는 것을 보고 좀 놀랐다.


문득 필자의 예전 학창 시절이 좀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예전에 학교 다닐 때 그 당시 선생님은 (타과목 수업하러 오신 옆반 선생님뿐만 아니라 담임 선생님조차도) 수업 시작하러 들어오시거나 반 학급 조회시간에도 이름 대신에 "번호"를 자주 불렀다. "몇 학년 몇 반 몇 번"중에서 그 "번호"말이다.


"오늘 당번(當番) 몇 번이야? 나와서 칠판 닦아라!" (아이들이, 당번은 잠깐 교무실 갔는데요라고 답하면), "오늘 며칠이지…, 28일? 그럼 28번 나와서 닦아라!"와 같은 식이었다. 수업하다가도 "정답 한 번 풀어볼 사람? 아무도 없어? 그럼, (임의로) 11번, 너, 나와서 이 문제 칠판에 풀어봐!"

 

그 당시엔 한 학급 교실당 학생 수가 지금의 두 배가 넘어 학생들 성명(full name)을 일일이 다 외우기가 어려웠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 선생님에겐 학급 내 반 (관리) 번호가 편리(?)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학교를 떠나 사회생활을 하게 되고 또 이 책 저 책 읽던 중에 (정확히 출처를 기억하진 못하지만) 아래와 같은 말도 듣게 되니 새삼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의 이름 대신 '번호'를 부르는 곳은 학교 외에는 교도소뿐이다. 학생들은 죄수로 갇혀있는 수감자가 아니다. 학교에서 그 사람의 이름 대신 '번호'를 부르는 행위는 또 다른 '폭력'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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