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 질문 13) or Somewhere in Between?
이 글 제목만 보고는 좀 철 지난 토픽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아 필자의 단상을 '서랍' 속 [저장글]에서 꺼내기가 좀 망설여졌다. 왜냐하면 이미 수년 전부터 유행처럼 번진 미니멀리즘(Minimalism)이라는 화두는 항간에 어떤 팬시(fancy)한 트렌드 중 하나로 기존의 삶의 방식과 라이프 스타일(life style)을 비판적으로 새롭게 조명하며 우리 모두의 지향점을 Minimalist 쪽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열풍으로 인해 (당연한 결과겠지만) 독자분들도 이미 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이 분야에 관한 많은 글들과 책들이 쏟아져 나왔고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간 책들도 많았다. 필자도 이렇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Minimalism에 관심을 갖고 좀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그중 눈에 띄는 책 하나가 바로 아래의 [Goodbye, Things](2017) by Fumio Sasaki(원서 일본어의 영문 번역본임)이었다.
어쩌면 이 책 서문중 아래의 인용 문구가 이 책의 메시지를 가장 잘 요약해 준다고도 볼 수 있다.
"In this book, I've defined minimalism as (1) reducing our necessary items to a minimum, and (2) doing away with excess so we can focus on the things that are truly important to us. People who live that way are the ones I consider to be minimalists."(p.18)[Goodbye, Things] by Fumio Sasaki
구체적으로 실감 나는 단적인 예로 위의 책 본문 중에 인상 깊은 문구 하나도 함께 옮겨 본다.
Don't buy it because it's cheap. Don't take it because it's free. […] Even something free can be risky. You're bound to be aware of something once you own it, and that alone requires space in our brains. Time and effort will also be needed to manage and care for whatever the item might be. (p.130)
물론 이 책에서 저자 Fumio Sasaki는 물질적인 측면만 피력(披瀝)하는 것은 아니고 궁극적으로는 삶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으로써 Minimalism 실천을 통해 보다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할 수 있는 방안을 주창(主唱)하고 있다. 이 책에 서술된 본문 글들 중 필자도 공감하는 부분도 많지만, 여기서는 "Becoming Minimalist"에 대한 접근 방법과 효과적으로 도달하기 위한 방법적 노하우와 각론을 일일이 열거하기보다는 항간에 회자(膾炙)되고 있는 이러한 미니멀리즘(Minimalism) 추구에 대한 또 다른 차원에서의 고려사항과 단상을 간략히 한 번 적어 보고자 한다.
미니멀리즘(Minimalism) 예찬론이 대세를 이루며 여러 분야로 우리 관심사를 휩쓸고 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 데 최근에 필자가 들은 "Maximal Minimalism"은 무슨 소리며, 앞으로 뉴 트렌드는 "Minimal Maximalism"이 된다는 광고는 또 뭔 말인가? 이 또한 어느 시기가 되면 우리가 '복고풍'을 다시 찾고 레트로 무드(retro mood)나 그런 감성을 좇는 것처럼,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life style)도 시간이 지나면 돌고 도는 유행(?)과도 같은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앞서 위에 인용한 문구의 Minimalism 정의와 같이 그 취지, 그리고 그 배경과 의미는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유년시절부터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늘 "다다익선"(多多益善)이 최고의 미덕인 것으로 교육을 받으며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쟁취하기 위해 애써며 살아온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서 미니멀리즘(Minimalism)은 결코 쉽지 않은 실천 항목이다.
사실 "Less is more"라는 격언은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일상생활을 살아가면서 무슨 선문답(禪問答)하듯이 단순히 "Less is more"를 되뇔 수만은 없는 것도 사실이지 않는가?
어쩌면 좀 다른 차원에서 바라본 필자의 항변인지도 모르겠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것들이 개인 ‘취향’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Minimalism에서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가 디지털(digital)화 하라는 것인데, 책장에 책을 꽂아두고 가끔씩 꺼내서 읽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에게 종이책 대신에 전자책(e-book)으로 다 바꾸라면 사람들의 취향과 기호에 따라서는 반기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필자도 아직 아날로그(analog) 감성을 좋아하고 대부분의 책은 연필을 손에 쥐고 종이책으로 읽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한 때는 가구시장에 신제품이 시장에 처음 나오면 화려한 색상과 세련된 디자인을 앞세워 강조할 때가 많았다. 전자기기뿐만 아니라 가구들까지도. 인테리어(interior)에 큰 역할을 하는 가구를 화려하게 돋보이게 하다가 이제는 벽면에 집어넣어 버리는 빌트인(built-in) 가구를 팔고 있다.(색상과 디자인도 함께 벽 속으로?) Minimalist vs. Maximalist 혹은 이와 관련된 기사들을 읽을 때면 이 모든 것은 그저 인테리어(interior) 가구 전문 회사들의 빅픽쳐(big picture)이거나 단지 그들만을 위한 신제품 판매용 "마케팅 스토리"(marketing story) 일뿐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버릴 건 열심히 버리는데 정작 얼마 못 가서 다시 ("당연히" 최신 신제품으로) 새로 구매하게 된다면 결국 소비자만 "봉"인 셈인가?
독자분들은 Minimalist인가, Maximalist인가? Maximalist인 분들은 (쉽게 버리지 못하고) 보관 중인 물품들은 나중에도 꼭 필요할 것 같아, 아니면 반드시 보관하고 직접 소장해야만 하는 자신만의 배경과 이유가 다 있지 않을까? 다들 지금 살고 있는 집이나 아파트 다용도실에 있는 물품 중 버릴 것이 하나라도 있는가? 아니면 평소에 ("Maximalist"인 필자 자신도) 이미 충분히 '최소한의 필요'에 의해 '미니멀(minimal)하게' 살고 있다고 그저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일 뿐일까?
Minimalist분들도 과감히 버리기 전에 그 물품을 최소 1년 내에는 다시 찾지 (돈 주고 다시 구매하지) 않는다고 꼭 확신해야 하듯이 Maximalist도 이 말을 늘 함께 자문해야 할 것이다 ; If you lost it, would you buy it again?(p.114)
여담이지만, "Do away with excess" 운운하는 글을 읽다 보면 여기 대부분 개인 주택에 있는 지하 창고 같은 저장실(cellar [Keller])이 떠오른다. 단독 주택이 아닌 다세대 주택들도 별도의 지하에 세대별 저장 공간을 구분 지어 마련해 두고 다용도로 (당장 자주 안 쓰는) 각종 물품들과 잡동사니(?)를 쌓아 두고 보관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여기엔 자주 안 쓰는 물품이나 부피가 큰 물건뿐만 아니라 장기 보관이 가능한 와인 같은 술이나 물 등 식음료와 감자, 밀봉 용기의 식품들도 오랫동안 함께 보관한다는 사실을 듣고 좀 놀랐다.
독일은 한국의 설날이나 추석 명절 같은 긴 연휴가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모든 마트들이 엄청 많이 붐비고 계산대에 줄이 길게 늘어선다. (연휴 때 모든 마트가 일제히 다 문을 닫기 때문이다.) 마치 무슨 '전쟁'이라도 나서 "사재기"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근데, 실은 그 "사재기"라는 표현이 거의 맞을지도 모른다. 필자의 현지 지인도 긴 연휴 전에는 반드시 식료품을 잔뜩 사서(물론 냉장고에 다 넣어두지도 못할 만큼 많이) 냉장고뿐만 아니라 바로 집집마다 있는 지하 (다용도) 저장 창고에까지도 보관한다고 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고?!
독일은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치렀었고, 그것도 패전 국가로서 그 국민들(피난민들)이 전쟁 중 겪었을 참혹한 일상의 궁핍함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그러다 보니 참혹한 전쟁을 겪은 노인 세대와 (노인 세대로부터 영향을 받은) 중장년층까지도 일부는 아직까지 그런 트라우마(trauma)와 "심리적 후유증" 비슷하게 예전 습성(習性)이 남아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다음 [어학사전],
다다익선(多多益善) :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더 좋다는 뜻의 고사.
복고풍(復古風) : 지나간 날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풍속이나 양식.
레트로(retro) : 과거의 모양, 정치, 사상, 제도, 풍습 따위로 돌아가거나 그것을 본보기로 삼아 그대로 좇아하려는 것을 통틀어 이르는 말.
봉(鳳) : 1.(기본의미)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새.
2. 어수룩하여 이용해 먹기 좋거나 이득을 얻기 쉬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습성(習性) : 오랫동안 되풀이하여 몸에 익은 채로 굳어진 개인적 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