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개인적으로 처한 상황과 여건에 따라 개개인의 입장이 다를 수 있음을 먼저 밝혀둔다.
이웃집 어린아이가 오랫동안 울면 참 난감하다. 이웃 간에 애 울음소리 좀 시끄럽다고 바로 찾아가서 "제발 애 좀 달래라"며 대놓고 항의하기도 그렇고. 어쨌든 어떤 이들은 무덤덤하게 꾹 참고 견디려 애써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구는 도저히 참지 못해 그새 이웃집 현관문 벨을 누르고야 만다.
잘 아시다시피 갓난아기들은 어디 아플 때뿐만 아니라 배고프거나 졸릴 때도 (유일한 의사표현 방법으로) 잘 운다. 그리고 그 울음의 원인이 해소되면 울음이 잦아들고 또 멈춘다. 어린아이가 울면 그 우는 아이의 부모는 그 순간 얼마나 애가 타고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까를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다.
흔히 듣기로는, 이웃집 아이의 이름과 얼굴을 알면, 그러니까 평소 서로 잘 알고 지내면 이웃집 아이의 울음소리도 쿵쿵대며 뛰어노는 소음도 어느 정도 참아낼 만큼 수용(?)이 된다는데, 글쎄 어느 정도 선까지인지는 개인적으로 (물리적인 소음의 강도와 시간에 따라) 체감하는 편차가 심하니 쉽게 어떻다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닌 것 같다.
문제는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지쳐 피곤한 날엔 신경이 곤두서있고 어떤 다른 일로 인해 기분도 좋지 않다면 이웃의 아주 사소한(?) 소음에도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웃의 소음이 그때그때마다의 주관적인 기분이란 잣대에 따라 해석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 심리적 기저(基底)에 자리 잡은 '소음'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은 어찌할 도리가 없을 때도 많기 때문이다.
이웃 간 소음문제로 인한 피해와 그 다툼으로 층간소음 관련 법과 규정들을 더 세분화하고 또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최초 건축 설계단계부터 이웃 간 소음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음 강화를 위한 층간 두께 및 벽면 두께 등 )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 두께와 방음 보강 구조로 건축비가 더 올라가 결국 소비자인 입주자 부담만 늘고 만다는 견해도 있고 10층 지을 것을 9층밖에 못 짓는다는 입장도 있지만)
모든 것을 다 법대로 해결하면 좋을 텐데 우리는 살다 보면 자로 잰 듯이, 또는 칼로 자르듯이 확연하고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경우들도 직면하게 된다. 소위 말하는 그레이존(회색지대 gray zone)도 있고 법의 사각지대(死角地帶)가 도처에 상존(常存)하는 것도 현실이다. 실은 이런 애매모호한 지점들일수록 우리 사회공동체 구성원들의 집단지성이 그 슬기로운 힘을 발휘해야 할 텐데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물론 이웃으로부터 피해를 보는데도 무작정 "참아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어떤 이웃들은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이웃 간 서로에 대한 배려와 예의가 아예 없는 경우도 있고 이웃 소음 자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이웃들 뿐만 아니라 자주 상습적이거나 또 고의성까지 있다면 (직접 대응하기보다는) 공권력을 통해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함은 자명하다.(이웃 간 불법주차 문제로 시비가 붙는 경우처럼)
여기는 다행히 (연방주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개 "야간정숙"시간[Nachtruhe]이 법적으로 엄격히 정해져 있다. 밤 시간대는 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이다. 밤 10시 이후에도 계속 시끄러우면 경찰[Polizei]을 부를 수 있다.(낮에는 오후 1시부터 3시 사이 : [Mittagsruhe])
그러면 밤 10시 이전의 소음은 어떻게 하느냐? 필자는 이웃집 어린아이의 피아노 소리(연주나 반복되는 멜로디의 연습이 아니라 마치 장난감 갖고 놀듯 타악기처럼 마구 쿵쾅대며 치는 피아노 소리)가 들리면 참을성 있게 그 이웃집 광경을 상상해 보려 애쓴다. 그 어린아이의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며 함박웃음으로 손뼉 치면서 "잘한다, 잘한다!" 환호하는 그 부모의 행복한 표정을.
비록 내 아이는 아니지만 (잠시 잠깐 동안이라도) 이웃 아이의 소음이 누구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무척 행복한 기쁨의 순간임을 상상해 볼 수 있을 정도로 '참을성 있는', 그런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고 싶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서로서로 이웃 간에 조심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고 이견(異見)이 없다. 그럼에도 좀 조심스러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와중에도 함께 나누어야 할 것은 어쩌면 인간적인 배려와 조금의 선의(善意)와 호의(好意)를 베푸는 '참을성' 아닐까 싶다.
그레이존(gray zone) : 1. 애매한 범위 2. 회색 지대 3. 이도 저도 아닌.
사각지대(死角地帶) : 관심이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구역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다음 [어학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