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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Happy Letter Sep 16. 2024

미룬이?


어떤 사안이나 현상에 대해 별도의 해결 방도(해법 또는 대안)를 함께 제시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비평과 비판이 될 수 없으리라. 그런 측면에서 이 글은 아직 해법 모색을 위한 지극히 개인적 단상에 지나지 않음을 밝혀둔다.




요즘 TV 방송이나 인터넷 매체를 통해 최근 기사들을 읽다 보면 새로 생긴 신조어(新造語)들이 워낙 많아 별도의 설명 없이 언급되면 가끔씩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그 말의 뜻과 배경을 몰라 당혹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이런 신조어나 유행어들을 직접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MZ세대들에겐 친숙하게 들리겠지만 예를 들면, 필자 개인적으로는 최근 접한 "미룬이"이라는 말도 그중 하나다. 일견 언뜻 듣기에 낯선 표현이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사람이라는 뜻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비록 이런 신조어(新造語)가 한때 잠시 잠깐 유행하다가 사라지기도 하지만 자주 언급되는 현상 속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 세대 간 소통뿐만 아니라 - 이런 신조어나 유행어가 가지는 시의성(時宜性)이 아닐까 싶다.


상위권 대학 또는 원하는 인기학과 입학을 위해 재수와 삼수를 마다하지 않고 대입시험을 반복하며 대학진학을 미루고 있고, 대학졸업을 미루기도 하고 원하는 직장 입사와 공무원 시험 합격을 위한 취업 준비로 바쁘다 보니 일상의 모든 일들을 뒤로 미루고, 그러다 보니 또 이성교제도 미루고 결혼도 미루고 출산도 미루고…


무엇을 미루고 또 무엇을 기다리며 n수를 반복하는(또는 반복해야만 하는) 요즘의 젊은 세대들은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의 청년세대들에겐 이 "미룬이"라는 말이 어느새 자조(自嘲) 섞인 씁쓸한 표현이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삶이 가지는 '일회성'을 생각한다면, 그리하여 이 생에 못다 한 일, 이루지 못한 일을 "내세"(來世)로 또다시 미루지 않으려 한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짧은 일생동안 미루지 않아야 할 것들, 그 가치와 관계, 시기(時期)도 많다고 보기 때문에 이렇게 모든(!) 것을 그리고 매번 미루고 또 미루는 것이 능사(能事)인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또 미룬다고 다 잘된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이 대목에서 혹자는 심리학에서 '지연'(遲延 delay) 관련 인내력(patience) 테스트로 자주 인용되어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을 거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험에 참가한 아이에게 마시멜로 한 개를 주고 "안 먹고 참고 있으면" 한 개 더 먹을 수 있게 하는 테스트를 비판하는 시각에는 이 실험에 참가한 개별 아이들이 속한 각 가정의 경제적 빈부 차이와 (실험실 밖의 현실세계에서 주어지는) 변칙과 우연(偶然) 등의 각종 변수 적용 여부가 반론으로 언급되고 있음을 여기 함께 부기(附記)해 둔다.("부잣집" 아이들은 대개 마시멜로 하나쯤은 바로 안 먹고 참아낼 수 있다는 주장과 함께 이 ‘지연’ 관련 인내력 테스트의 불합리성을 고려하며)


이와 더불어 더 큰 문제는 이젠 "미룬이"가 젊은 세대만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다는 사실이다. 기성세대들도 정년이 다되어도 퇴직을 미루고 경제적 궁핍으로 "경제활동"을 계속하며 은퇴를 미루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노인세대에게 "미룬이" 현상은 노인빈곤층들의 고독사처럼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글을 마치며 요즘 2024년 대표적인 유행어라는 "럭키비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운이 좋은 아이"라는 뜻의 이 말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감사하고자 하는 인기걸그룹 아이브(IVE) 멤버 장원영은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고 한다.


따라서 유명가수인 연예인 장원영이 보여주는 "럭키비키"라는 긍정적인 삶의 태도는 잠깐의 오락적 웃음을 넘어 그의 그러한 긍정적 마인드를 따라 하는 대중들에게 현재의 행복을 소중히 여기게 하며 또 희망을 갖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심리 치료"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 보는 우려는 여기에도 상존한다. 이미 10대의 나이에 슈퍼스타급 연예인이 된 장원영만큼 명성과 부를 갖고 있지 않는 우리는 (그의 팬이든 아니든) 그저 그와 같은 "긍정적" 마인드셋(mindset)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을까?


하루하루 먹고살 일을 걱정하며 사는 일개 범부(凡夫)에 지나지 않는 필자는 (오늘의 걱정을 내일로 미루지도 못하지만) 그저 오늘의 "불행"이 (우연으로라도) 내일 또다시 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시의성(時宜性) : 당시의 상황이나 사정과 딱 들어맞는 성질.(다음 [어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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