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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Happy Letter Nov 12. 2023

양질전환에 관하여


비가 오는 주말엔 밖에서 산책도 오래 하기는 어렵다. 빗속을 걷는 운치(韻致)는 있지만 요즘은 날씨도 제법 쌀쌀해졌기 때문이다. 뭘 읽을까 이리저리 찾다 보니 딱히 뭘 읽어야겠다고 선뜻 손에 잡히는 책도 없다. 예전에 자기 계발서나 잠언론, 명상록 등을 마음 수양(修養) 삼아 찾아 읽었는데 그때 어디선가 읽은 듯한 기시감(旣視感)이 드는 비슷비슷한 문구나 글귀들을 본 적도 자주 있었다.(그래도 좋은 글을 반복해서 계속 많이 읽으면 어쩌면 언젠가는 내가 좀 더 좋은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믿음으로 많이 읽으려 애쓴 것 같다.)


하기야 우리 인류 역사 중 2 ~ 3천 년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들과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러다 보니 대개 후손들과 후학(後學)들은 앞선 선조들이나 유명한 석학(碩學)들이 한 말과 남긴 글, 그리고 그런 책들을 열심히 인용하고 살을 붙였다 뺐다가 해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서 지난번 다른 글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얼마나 좋고 멋진 말을 했느냐 보다는 누가(!) 그 말을 했느냐 물으며 그 사람에, 그 사람의 평소 언행과 살아온 족적(足跡)에 관심을 더 가져야 한다고 본다. 누구나 삶을 대하는 훌륭한 태도, 삶의 가치와 지혜를 "말로는" 잘할 수 있고 "글로도" 잘 쓸 수 있지만 그대로 "실천"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선(善)을 행하라고 "말하는 사람"이나 세련되게 "글로만 잘 쓰는 사람" 보다는 실제 "선행(善行)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바로 그 사람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도저도 아니고 읽을거리가 마땅치 않으면 (꼭 발행은 하지 않더라도) 직접 스스로 창의적인 글을 쓰는 게 어쩌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비 오는 주말 초겨울 날씨에 밖에 나가기 어려울 땐 마치 화가가 하얗게 빈 캔버스(canvas)에 스케치를 하고 어떤 그림을 조금씩 그려나가고, 음악가가 피아노를 치며 어떤 곡을 연습하거나 새로 작곡하듯, 글쓰기를 좋아하는 작가는 키보드를 치며 한 구절 한 구절 새 글을 써보고, 새 작품을 구상해 봄이 어떨까 싶다.





각설하고, 이번에 쓰고자 하는 화두도 익히 잘 알려진 것으로 '양질전환'(量質轉換)에 관한 이야기다. 헤겔(Hegel)의 철학에 바탕을 둔 '양질전환'은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양적 누적 과정을 통해 반복해서 양적으로 쌓이면 어느 시점에 (임계점에 도달하면) 질적인 변화(transformation)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마르크스(Marx) 레닌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이나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를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고 이 철학적 개념을 통해 우리 삶 속에 비춰 볼 수 있는 메타포(metaphor)를 상기해 보자는 취지다.


양이 많이 모이면 질적으로 변한다는 것이 지금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다른 반론도 있을 수 있고 믿기도 어려울 수 있겠지만 이 양질전환을 어떤 신념과 확신을 가지고 한번 매일 실행해 보자는 것이다. 글쓰기든, 책 읽기든 아니면 또 다른 액티비티(activity)든.


독자분들 중에는 이미 이와 비슷한 이야기와 에피소드를 들어보신 분들도 많이 있겠지만 필자의 매거진 <THL 서평과 감상문의 경계>에 얼마 전 소개한 적이 있는 Jeff Olson의 책, [THE SLIGHT EDGE]에도 자주 강조되는 저자의 핵심 논지(論旨)로 반복적으로 나온다.


그중 예를 들어 보면, 우유가 가득한 우유통에 빠진 개구리 두 마리 에피소드가 있다. 짧게 요약하자면, 빠져나오는 것을 일찍 포기한 개구리 한 마리는 우유통 속에 가라앉으며 죽어가고, 두 번째 개구리는 우유통 속에서 헤엄치고 계속 발을 움직이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 나오려 노력한다. 그 결과, 그 액체 우유가 조금씩 서서히 굳어지게 되고 두 번째 개구리는 그 굳어진 우유 덩어리(버터)를 딛고 우유통 밖으로 무사히 살아서 나온다는 이야기다. 뒤이은 관련 글을 아래에 인용해 둔다.


Yet to his surprise, unlike his brother, the second frog did not sink. In fact, he stayed right where he was, as if suspended in midair. He stretched out a foot tentatively-and felt it touch something solid. He heaved a big sigh, said a silent farewell to his poor departed brother frog, then scrambled up onto the top of the big lump of butter he had just churned, hopped out of the pail and off toward his home in the swamp. (p.33) [THE SLIGHT EDGE] 8th Anniversary Edition(2013) by Jeff Olson


이렇게 훈훈하게만 마무리되면 좋겠지만 필자가 이에 덧붙이고 싶은 말이 또 따로 있다. 바로 이러한 양질전환의 의미를 곡해(曲解)하면 절대 안 되며 아주 위험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무조건 "하면 된다!"라는 모토(motto) 아래 무엇이든지 계속 열심히 하면 다 되는 줄로만 알고 살아왔다. 그런데 살다 보면 안 되는 것도 있고 접근하는 방법에 따라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그것들을 잘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보는 데,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라는 말을 잘못 적용하면 큰일 난다. 필자가 발행한 [용기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거절을 수용할 수 있는 '용기'도 언급했지만, 이성교제 중 애정 표현이나 구애(求愛)에 한두 번 거절의사를 분명히 표시했는데 불구하고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운운하며 상대가 원치 않는 차원의 접근을 계속한다면 스토킹(Stalking)이 된다. 그리고 이 스토킹은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나 그루밍(Grooming)과 마찬가지로 명백한 범죄 행위다.









다음 [어학사전],

운치(韻致) : 고상하고 품위를 갖춘 멋.

기시감(旣視感 déjà vu) : [심리]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일이나 처음 본 인물, 광경 등이 이전에 언젠가 경험하였거나 보았던 것처럼 여겨지는 느낌.

메타포(metaphor) : 행동, 개념, 물체 등이 지닌 특성을 그것과는 다르거나 상관없는 말로 대체하여, 간접적이며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일.

곡해(曲解) : 어떤 사실이나 내용을 실제와 다르게 잘못 이해함.

모토(motto) : 일상의 행동이나 태도에 있어 지침이 되는 신조(信條). 또는 그것을 표현한 짤막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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