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결혼을 준비 중이거나 갓 결혼한 신혼부부들에게
앞서 발행한 첫 번째 글에 대한 호응에 힘입어 [두 번째] 편을 쓴다. 첫 번째 글에서 언급한 3가지를 기본적으로 잘 염두하면서 살아도 힘든 시기가 오는 데 바로 가끔씩 불현듯 다가오는, 이른바 "권태기"(倦怠期) 또는 그와 비슷한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들 때이다. 이때 혼돈하지 말아야 할 것은 삶에 대한 권태(倦怠)인지, 아니면 같이 사는 (사랑해서 결혼한) 배우자에 대한 권태인지 구분을 잘해야 한다. 아니면 혹시 둘 다 인지도. 그리고 무조건 부정하려 하지 말고 그 시기를 잘 극복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부부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이탈리아 철학자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가 말했다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가난도 걱정도 병도 아니다. 그것은 생에 대한 권태이다."라는 말은 별도로 부연하지 않더라도 그만큼 우리 삶에 권태가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잘 역설(力說)하고 있다고 본다.
그렇게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어렵게(?) 결혼에 성공했는데 같이 살면서 알콩달콩 잘 살기도 바쁠 텐데 (딱히 무슨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라면) 어떻게 결혼생활에 "권태"가 있을 수 있느냐고 갓 결혼한 신혼부부들은 반문(反問)할지도 모른다. 그러게 말이다. 그런데 전부 다는 아니겠지만 몇 번 싸우고 나면, 흔히들 "우리도 권태기인가?"하고 습관적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처음엔 서로 그 '다름'으로 인한 차이 때문에 말다툼도 해가며 적응하느라 힘들었는데 이제 눈에 거슬리는, 그리고 마음에 안 드는 버릇이나 습관에도 익숙해지고 잘 적응하고 나니 난데없이 (긴장감이라곤 하나도 없는) "무미건조함"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어떤 다른 특정 이슈가 없다면 바로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으로 인한 권태에 기인(起因)할 수 있다.
대개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예측가능한 앞날을 설계하고, 또 그 앞날과 미래를 잘 준비하면서 (일정과 계획대로) 하나씩 실행하며 살아간다. 현실적으로 우리 일상생활에서 바람직한 모습이고 모두 다 그렇게 살아가려 애쓴다. 공부도 그렇고, 취업도 그렇고, 결혼도 그렇다. 그리고 결혼 후에도 경제적인 계획도 마찬가지다. 언제쯤까지 저축을 얼마하고 대출을 얼마 받고 언제쯤 어느 동네로 아파트 몇 평 정도로 이사를 하고 등등.
그런데 경제적인 살림살이는 이렇게 준비하면 안정적이고 예측가능하겠지만 만약에 우리가 죽을 때까지 그때그때마다 일어날 모든 앞날의 일들을 미리 다 안다면 매번 그때가 도래할 때까지 시간이 지나가기만 기다리는 지루하고 무료한 삶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삶이 문제라는 말이 아니라 우리는 이렇게 미리 다 알며 익숙하고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안정적인 삶에 금방 싫증을 내게 되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마치 언제가 되면, 무엇을 끝내고 나면 내가 나 자신을 위해 시간을 더 많이 갖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고 되뇌며 시간이 가기만 기다리며 사는 것과도 같을 수 있다. 근데 대부분은 시간이 많이 지나고 막상 기대하고 바라던 그때가 되면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할 수도 없을 정도로 거동 마저 불편한 노쇠(老衰)하고 병약한 노인이 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여담이지만, 그러다 보니 이 세상을 떠난 후 저 세상에 가면 저 세상에서는 꼭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하게 된다고 한다.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가 주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해소(解消)하고 안정적 삶을 추구하기 위해 미래를 미리 설계하고 준비하며 저마다 "예측가능한" 삶을 살기를 바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그 "예측가능함"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사실이다. 다가오는 미래의 일들이 어쩌면 아무런 감흥(感興)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무척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에게 동시에 병행해서 필요한 것은 바로 "예측불가능한" 삶이다.
다소 이율배반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동시에 공존(共存)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데도 불구하고 이 두 가지 모두 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다. 그 예측불가능한, 계획되지 않은 미지의 대상에 대한 경험이 일상을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가끔씩 필요하다는 말이다. 우리가 결혼보다는 연애 때가 더 좋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상대방과 자주 만나도 여전히 익숙하지 않고 아직도 모르는 게 많은 연애시절에는 설렘과 기분 좋은 긴장감, 묘한 감정적 호기심과 예측불가능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결혼 후에도 정확히 이런 감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자주 이런 감정 상태를 체험할 수 있다면 "권태"로부터 자유로워지거나 최소한 그런 권태로움에 빠지는 빈도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랫동안 결혼생활을 잘해오신 분들은 반복된 생활습관으로 저마다 지혜로운 해법(解法)이 다 있겠지만, 뚜렷한 해소(解消) 방안을 찾지 못하는 커플들은 다투거나 갈등이 쌓여가면 서로 간 마음의 병(!)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사춘기(思春期 puberty)가 왔다고 다 어떤 일탈(逸脫) 행위를 하거나 가출, 탈선(脫線)을 할 수는 없듯이 결혼한 커플들이 권태기 (그까이꺼) 좀 왔다고 해서 다 일탈하거나 이혼할 수는 없다.
문제는 권태가 왔다면 아, 권태가 왔구나 하고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할 뿐이다. 그리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서로 노력해야 한다. 대부분은 아기가 생기면 권태감을 느낄 겨를도 없어지고 오히려 아이를 통해 부부사이도 괜찮아진다고들 하는데 이 공동 육아 말고도 다른 측면을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예측불가능한 경험을 가능하면 자주 하라는 차원에서 예를 들면, 기분 좋은 상상력을 동반하는 설렘과 도전, 모험 같은 체험이다. 대표적으로 추천하는 것은 태어나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어떤 낯선 곳으로 둘이서 함께 여행을 떠나 보라는 것이다. 우리 삶의 어떤 생동감있는 자극을 위해 다른 범죄적인 행위나 윤리적 일탈 이외에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부부가 같이 할 수 있는 최고는 낯선 곳에서 낯선 경험을 하는, 설렘과 두려움과 호기심을 동반하며 그 예측불가능함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아닐까 생각한다.(해외여행이면 더 좋겠지만) 물론 우리 모두 일주일씩, 열흘씩 멀리 떠날 수 있는 여유가 많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라도 프로젝트처럼 여행 목적지와 예산을 목표로 정해두고 조금씩 시도해 볼 수는 있으리라.(혹자는 어떤 서프라이즈(a surprise) 이벤트를 자주 하라는데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국내여행이나 해외여행만이 유일한 해법은 아니다. 어떤 분들은 (예술 작품을 만들거나 향유하는) 예술적 자극과 몰두를 제시하기도 하고, 정신수양 같은 '종교'생활과 단체에 소속된 여가 활동,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단체 자선 봉사활동 함께하기 등을 추천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여러 이유로 부부가 좋아하는 취미가 같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들 한다. 없으면 만들어야 한다. 특히, 둘이 함께 운동할 수 있는 야외 스포츠라면 더더욱 좋다.(함께 자전거를 타도 좋고.)
다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부부가 다투는 데 특정한 원인과 대상이 있다면 당연히 제일 먼저 그 문제를 해결(解決) 하기 위해 서로 함께 노력해야겠지만, 부부생활 속 서로의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으로 인한 "권태감"이 문제라면 분명 다른 차원과 다른 방식의 해소(解消)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다음 [어학사전],
권태기(倦怠期) : 부부나 연인 간에 서로에 대해 흥미를 잃고 싫증이 나는 시기.
권태(倦怠) : 관심이 없어지고 시들해져서 생기는 싫증이나 게으름.
역설2([力說) : 어떤 뜻이나 주장을 힘주어 말함. 또는 그런 말.
해소(解消) : 좋지 않은 일이나 감정 따위를 풀어서 없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