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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Happy Letter Oct 01. 2024

삼사일언


예전엔 누구네 집을 방문하면 그 집 안방이나 거실 또는 대청마루 위에 가훈(家訓)으로 여길만한 문구(文句)가 담긴 큰 액자가 하나씩 걸려 있는 걸 본 적이 자주 있었다. 예를 들자면,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사필귀정(事必歸正), 대기만성(大器晩成) 등 같은 문구들 말이다.


어린 시절 필자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도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 중 집집마다 ‘가훈’이 뭔지 알아보고 적어오라는 것이 있었다.


필자도 집에 와서 부모님께 여쭈어 보니 (지금 기억하기로는) 안방 천장에 닿을 만큼 높이 걸려있던 액자 속 한자(漢字)로 쓰인 “三思一言”을 적어가라고 하셨다. 필자는 내심 학교 같은 반 친구들도 누구나 잘 알만한 가훈을 적어가고 싶었지만. 이를테면 사랑이라든가 화목(和睦), 정직(正直) 등등.


‘삼사일언’(三思一言)은 말 그대로 "말하기 전에 세 번 생각하고 한 번 말하라"는 뜻이지만 그때 당시는 한자(漢字)를 배우기 전이라 읽을 줄도 몰랐기에 뜻풀이 설명을 다 듣고는 그저 말을 할 때는 항상 충분히 생각하고 말하고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라고 어렴풋이 짐작하며 숙제를 한 것 같다. 그러고 난 후 한참을 잊고 살았다.


독자(작가)분들도 살아가면서 확고하게 신념화시킨 어떤 삶의 신조(信條)라고 부를만한 자신만의 모토(motto) 하나쯤은 다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배운 ‘가훈’도 있을 것이고 분가(分家)한 후 자신이 직접 새로 정한 것도 있을 것이다. 물려받은 좋은 가훈도 있겠지만 요즘은 후세 자녀들이 좋아하는 경구(警句)를 가훈이나 삶의 모토로 삼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아이에게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고진감래’(苦盡甘來)를 써주는 것처럼.




최근 어떤 말을 하고 나서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하며 후회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딱히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상처를 줄 말은 아니었지만 내가 돌아서서 스스로 다시 생각해 보니, 또 내 말을 듣던 상대방(입장)을 생각해 보니 그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후회가 지금도 많다.


발단은 초면의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풀어보려 나름 애쓰는 과정에 있었다. 초면에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이랍시고 어쭙잖은 유머(humor)로 좌중(座中)을 좀 웃기려들 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아이스 브레이킹을 위해서는 주로 날씨나 최근 화젯거리에 대해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는 게 무난하다고들 말하지만, 말은 하다 보면 어느 대목에서 갑자기 오버(over)하게 될 수도 있으니 늘 경계(警戒)하지 않으면 안 된다.(이는 지인들과 스몰토크(small talk) 할 때도 마찬가지다.)


친분이 없어 서로 데면데면한 사이이거나 이미 잘 아는 지인이라도 그 자리와 분위기에 그리고 참석자 구성원들에게 (옷차림의 티피오 TPO처럼) 어울리지 않는 농담은 어색한 분위기를 더 어색하고 썰렁하게 만들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내 말을 듣는 상대방(들)이 (말하고 있는 나와) 그런 농담을 나눌 정서적 교감과 동감 같은 “마음의 준비”가 안된 상태라면 (이 분위기 어쩔?) 혼자만의 ‘폭망’을 넘어 실례(失禮)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과학 학술논문 같은 발표가 아니라면 말과 글에 적절한 위트(wit)가 가미된다면 그 말과 글을 더 생동감 있게 또 더 흥미롭게 만들 수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문제는 대화 상대방(청중)이 박장대소(拍掌大笑)를 하려면 재담(才談)이 그럴듯해야 하고 공감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우리는 재담을 섞어 가며 강연을 잘하는 유명인이나 인기 강사들도 좌중(座中)을 웃기기 위해 부적절하게 지나친 농담을 하다가 말실수를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러므로 이렇듯 좌중의 관심을 끌고 주목받기 위해 무심코 하는 실없는 농담 같은 것은 특히 조심해야 할 때가 많다. 다들 지켜야 할 선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만남이든 일 때문이든 내 의지로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데 (간단한 대화든 긴 시간 강의든) 처음 어떻게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면 좋을지는 늘 고민이다. 왜냐하면 만나는 사람마다 그리고 그 장소와 환경, 그리고 그 만남과 관계형성의 ‘온도’와 ‘결’에 따라 다 각양각색으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는 누구나 첫인상을 좋게 보이기 위해 그리고 동시에 호감(好感)을 얻고자 진정성 있는 관심을 보이며 다가가고자 애쓰지만.




말은 한번 입 밖으로 뱉으면 쏘아놓은 화살이며 엎지른 물처럼 다시 되돌리거나 주워담지 못한다. 필자의 그 씁쓸한 후회가 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 그냥 짧게나마 여기에 기록해 두고 싶었다.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성찰(省察)하려는 필자 자신을 향한 말이고 글이다. 물론 자기 자신에게도 분명 함부로 말하면 안 되겠지만.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 :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에, 어색하고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깨뜨리는 일.

데면데면하다 : 1.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친밀성이 없고 어색하다.

모토2(motto) : 일상의 행동이나 태도에 있어 지침이 되는 신조(信條). 또는 그것을 표현한 짤막한 글.(다음 [어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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