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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Happy Letter Sep 12. 2024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하여


독자분들 중에 연세(年歲)가 지긋하신 분들도 많으실 텐데 다소 정제(整齊)되지 못한 표현에 먼저 양해(諒解)를 구하며 문득 떠오른 거친 단상(斷想)을 잊어버리기 전에 짧게 써보고자 한다.




통계적 수치지만 "평균" 기대여명(期待餘命)으로 보아 "살아갈 날" 보다는 "살아온 날"이 더 많아진 기성세대에 속하는 필자도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서며 요즘 들어 부쩍 옛날 일을 더 많이 회고(回顧)하는 것 같다.


물론 청년세대도 과거를 회상(回想)하지만 젊은 세대들처럼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에 나는 무엇을 하고 싶다, 나는 어떻게 할 것이다 등을 많이 이야기하는 대신에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자꾸 지나간 과거 일에 집착하거나 미련과 회한(悔恨)이 더 많아짐을 종종 느낀다. (필자가 과거와 미래 둘 중 전적으로 어디를 자주 얘기하느냐로 세대를 나누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렇게 옛날이야기를 자주 그리고 많이 하는 것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고, 이는 어쩌면 그냥 나이가 들어가면서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現象)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문제는 나이가 좀 들어가면서 조금 전에 했던 그 이야기를 또 하고 그러다가 금방 다시 또 반복[강조]해서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한자리 같은 곳에서 같은 사람 앞에서 말이다.


"노인"(老人) 같다고 말해도 좋다. 하지만 항간에 흔히 말하듯, 필자도 "마을에 노인 한 명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 것과 같다"라는 아프리카 속담과 그 격언(格言)을 믿는다.




피 끓는 청춘으로 한때는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하여 고뇌(苦惱)한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해탈(解脫)한 것도 아니고 무슨 도(道)를 터득(攄得)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지금껏 그저 매일 주어지는 일상의 매너리즘(mannerism)에 매몰(埋沒)되어 살아가다 보니 그 예전에 몰두했었던 삶의 가장 중요한 테마[Thema]를 거의 잊고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오는 동안 어떤 무지몽매(無知蒙昧)한 잘못과 그런 선택으로 후회가 큰 지점들도 있었지만 어쨌든 필자는 이렇게 저렇게 내가 살아온(살아내 온) 삶에 대한 자긍심과 자부심을 잃지 않으려 - 긍정적 마인드를 장착하며 - 애쓴 적도 있었다.


얼마 전 필자의 발행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동안 지나온 삶들이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그로 인한 회한(悔恨)으로만 가득하다 할지언정 아마도 그때 그 순간에는 (나름대로 나에겐) '최선의 삶'이 아니었을까 위로해보려 하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살아온 삶 중 부족하고 불만스러운 부분을 잊자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은 모두 - 비록 '최선의 삶'을 살아오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 여전히 내 삶의 한 부분이었음은 불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설픈 자기 합리화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오늘의 내 잣대"로 '과거의 나'를 평가하지 말자. 그리하여 (어쨌든 그럭저럭 먹고살만한 지금의) "현재의 내 기준"으로 나의 지나간 청춘, 힘겹게 견뎌낸 지난(至難)했던 그 시절 그 애처로웠던 순간들을 섣불리 재단(裁斷)하려 하지도 말자라는 말을 여기에 적어두고 싶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혼자서 고군분투(孤軍奮鬪)하는 오늘의 청춘들도 그런 심정(心情)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오랜 세월 동안 이따금 다시 떠오르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여전히 똑같은 그 물음 앞에, 그리고 또다시 되풀이되는 그 물음으로 인해 무수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번민(煩悶)으로부터 (한 해 한 해 나이를 더 먹어가면서도) 도무지 자유로워지지 못함을 느끼며 살아온 것 같다.


문득 든 생각이지만, 어쩌면 우리는 저마다에게 하는 이 물음, 그 자체를 바꾸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냥 (누구에게나 바람직하고 보편타당한 진리로 들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나는) "지금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로. "나는 지금부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 방도를 고민하는 것이 관건(關鍵)인 것 같다.


내 삶이 좀 더 즐거웠으면 했다. 내 삶이 좀 더 자유로웠으면 했다. 내 삶이 좀 더 가치 있었으면 했다. 비록 한 세대만 지나가도 아무도 기억조차 못할 범부(凡夫)에 불과하지만 내 짧은 삶이, 내 생애(生涯)가, 내 존재가 내 가족과 이웃에, 이 사회공동체에 좀 더 쓸모 있었으면 했다.


내게 남은 시간, 그 "기대여명"이 얼마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지나온 삶을 찬찬히 반추(反芻)하며 나에게도 다가올 그 "미래"를 준비하려 한다. 그런 성찰(省察)을 통해 "나는 지금부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려는 "지금의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또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나" 자신도 더 소중한 삶의 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 믿는다.

















기대 여명(期待餘命 life expectancy) : 통계적인 평균에 기초하여, 특정 연령층의 사람들이 기대할 수 있는 생존 가능한 햇수.

매너리즘(mannerism) : 1. (기본의미) 틀에 박힌 태도나 방식. 2. [예술] 예술의 표현법이 늘 같은 방식으로 되풀이되어 독창성이나 신선미(新鮮味)를 잃는 일.

무지몽매(無知蒙昧) : 아는 것이 없고 사리에 어두움.

지난하다2(至難--) : (어떤 상황이나 입장이) 굉장히 어렵다.(다음 [어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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