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일상생활하면서 처음에 익숙하지 않은 것 중 하나는 상점 가게, 관공서나 은행 등 출입문에서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 주는 것이다.
한국은 주로 (좌우 옆으로 밀고 닫는) '미닫이문' 형태이거나 자동문(슬라이딩 도어 형태)이 많이 보편화되어 있어 굳이 뒷사람을 많이 의식할 필요가 없는지 모르겠지만, 여기는 통행이 많은 상업공간의 출입구에는 주로 앞뒤로 열고 닫는'여닫이문'이나 양방향으로 열고 닫을 수 있는 '자재문'(自在門)이 많다 보니 출입문에 이마나 눈, 코 등 얼굴을 다치거나, 특히 "손 끼임"을 당하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한다. 간혹 관광객들이 한국의 좌우로 열리는 자동문에 익숙한 탓에 부주의로 출입문에 얼굴 또는 손가락을 크게 다치는 경우를 듣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기는 미닫이문이든 여닫이문이든, 어디서나 문을 열고 닫을 때는 항상 뒤따라오는 사람을 위해 그 뒷사람이 올 때까지 문을 잡아줘야 한다. 나만 문을 열고 들어가고(또는 나오고) 말면 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여기도 불친절한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출입구 문을 살짝 잡아서 기다려 주는 일은 (뒷사람의 불쾌한 시선을 의식해서가 아니라도) 뒤따라오는 사람이 다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단순한 '친절'과 '매너'의 문제 이상의 일이 될 수 있다. 이럴 때면 뒤따라오던 사람은 그 잡아준 문을 넘겨받아 잡으며 으레 "Danke!"(고마워요!)라고 환하게 웃으면서 답한다.
서울처럼 인구밀도가 높고 일상생활 중 매번 시간에 쫓기며 살아야 하는 처지라면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로서로 먼저 타라고 양보하기도 쉽지 않다. 이 엘리베이터를 놓치면 또 몇 분을 더 기다렸다가 다음 엘베를 타야 하기 때문에 바쁠 땐 쉽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선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로 먼저 타려고 팔이나 어깨를 부딪히면 큰 실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로 먼저 타라고 제스처(gesture)를 하며 양보하는 편이다. 여기 인구 밀도가 낮아서 그렇게 양보해도 어차피 결국엔 한 엘베에 다 같이 타고 갈 수 있으니 그런 친절한 행동과 양보가 가능하지 않느냐고 반문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적절한 예인지 여부는 독자분들의 판단에 맡긴다.
어쨌든 필자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친절"은 위에 언급한 것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그 친절과는 아주 "다른 친절"이다.
어쩌면 자녀가 있는 분들은 더 많이 공감하실 것 같은데 유치원 첫 등원이나 초등학교 첫 등교를 앞두고 예쁜 옷을 입히면서 아이를 둔 부모들이 반복적으로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바로 "낯선 아저씨나 아줌마가 맛있는 과자 사 줄 테니 어디 놀이터 놀러 가자고 해도 절대로 따라가면 안 된다!"이다.
슬프게도 우리 사회에는 어린아이들을 유괴(誘拐)하거나 해를 끼치는 나쁜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만약 아이가 따라가지 않겠다고 하면 이때 이들이 사용하는 것은 바로 "사탕"같은 과자나 돈 등이다. "사탕발림"이다.(듣기 좋은 말로 남의 비위를 맞추어 달래려고 하는)
이렇게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에게는 이런 "사탕발림"을 조심하라고 하면서 정작 우리 자신은 일상 속에서 이런 "거짓된 친절"을 잘 구분 짓지 못하고 그 "사탕발림"에 당하기도 한다. 친절한 태도와 언행은 당연히 우리 모두에게 사회적 미덕이지만 이것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렵다. 어떤 게 선의의 양보와 배려, 친절인지 구분하기가 말이다.
일단 필자는 (좀 거칠게 표현하자면) 대가를 전제로 하는 친절은 '진정한' 친절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고 본다. (대가 없는 친절에도 답례를 해야 한다. 고맙다는 말이 충분치 않으면 다른 선물?로라도.)
문제는, 그 '대가'가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친절"을 가장(假裝)한 접근에 당하기 쉬운데 사기꾼들의 전형적인 수법 중의 하나가 바로 처음 접근할 때의 "친절함"이기 때문이다. 이런 걸 사람들은 다른 말로는 "미끼" 내지는 "떡밥"이라고 부른다. 낚시꾼의 뽀쪽한 낚시 바늘에 물고기가 '미끼'(decoy)를 보고 확 물듯 우리는 그 미끼와 떡밥에 그냥 낚기는 것이다. 함정(trap)에 빠진 것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안타깝지만 이런 다른 차원의 "친절 아닌 친절"을 경계해야만 하는 사회 속에 함께 살고 있다.
우리 일상 중에는 소비자들을 상대로 하는 단순히 마케팅(Marketing)이라고도 불리는 상술(商術)도 여러 가지 있지만, 이와는 다른 차원으로 가벼운 '판촉행위'를 넘어서는 사례들도 많다. 예를 들면, 미리 12개월치 이용요금을 전부 선불하면 연이용료(회원권)를 00% 대폭 할인해 준다며 '미끼'를 주고 선불한 회원수가 어느 정도에 이르러면 어느 날 갑자기 폐업하고 잠적해 버리는 사기꾼의 얘기를 우리는 아직도 매스컴으로 듣고 있다.
또한 시세보다 낮은 좋은 가격을 제공해 주겠다고 약속(계약)하고는 품질이나 내용물이 부실한 것(상품, 서비스 또는 전월세 아파트 등)을 제공하는 경우, 시중보다 높은 이자 수익과 투자수익(배당)금을 약속하고 투자자와 투자금을 모으고 처음엔 착실하게 높은 이자 수익과 투자수익(배당)금을 꼬박꼬박 잘 주다가 어느 정도 투자금을 많이 모으면 갑자기 부도를 내거나 잠적해 버리는 경우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최근에 접한 이야기로, 어떤 자영업을 시작하시려는 분에게 양수 양도계약서(讓受讓渡契約書)를 다 쓰고 가게를 넘긴 "친절"했던 그 옛 주인이 바로 인근에 똑같은 동종업으로 다른 새 가게를 금방 또다시 오픈하는 경우 등은 상도의(商道義)를 넘어서서 (양수도계약서에 관련 금지조항이 명시되어 있다면) 명백히 '사기행위'에 속한다. 이 모든 피해들이 소비자들의 부주의나, 이용자들만의 잘못일까? ('사기'와 관련된 좀 더 자세한 글은 이전에 발행한 졸고, [우리가 사기당하는 진짜 이유 3가지에 관한 개인적 고찰]을 참고하시길 바람.)
유독 귀가 얇아서 남의 "친절한" 말에 솔깃해서 잘 믿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리가 일상 속에서 이런 달콤한 말과 꾀는 말인 감언이설(甘言利說)에 잘 넘어가지 않기 위해 저마다 항상 경계(警戒)를 늦추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모르는 누군가가 나에게 양보와 배려, 친절을 베풀어 주면 기분이 흐뭇하다. 다들 관공서나 은행 등에 급한 볼일이 있어 방문했을 때 안내하는 직원이 친절한 태도와 목소리로 응대만 잘해줘도 하루 종일 기분 좋지 않은가? (물론 그 반대로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불친절한 대우를 받으면 하루 종일 기분이 언짢기도 하듯이)
낯선 사람(혹은 지인)으로부터의 친절을, 또한 아무런 대가 없이 베푸는 선의의 친절까지도 색안경을 끼고 봐야만 하는 슬픈 사회 현실이지만, 그 호의와 선의를 (악의와 악용으로부터)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삭막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누가 먼저 행해야 하는 가'하는 "이기적 딜레마"에 빠지기에 앞서 사소한(?) 일이라면 우리가 먼저 친절을 베푸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늘 그 타인의 "친절"을 바라보는 경계(警戒)의 눈을 매번 아주 크게 부릅떠야 함도 분명한 것 같아 참으로 씁쓸하다.
(P.S. 이 글은 어쩔 수 없이 무방비 상태로 사기 피해를 입고 고통받고 계신 분들과는 무관함을 밝혀 둔다.)
다음 [어학사전],
친절(親切) : 대하는 태도가 매우 친근하고 다정함. 또는 그러한 태도.
제스처(gesture) : 말의 효과를 더하거나 뜻을 전하기 위해서 하는 몸짓이나 손짓.
미끼 : 물고기를 잡으려고 낚시 끝에 꿰어 다는 물고기의 먹이.
떡밥3 : 화젯거리나 미끼를 속되게 이르는 말.
귀가 얇다 : 속는 줄도 모르고 남의 말을 그대로 잘 믿다.
감언이설(甘言利說) : 남의 비위에 맞도록 꾸민 달콤한 말과 이로운 조건을 내세워 꾀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