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L 창작 시(詩) #229 by The Happy Letter
이십 대 막바지 드라마 한 편 쓰지 못한 채
꽃다운 나이 허무하게 끝나갈 무렵
월말이면 술맛이 달다가 그다음 날 카드값에 쓰라린 속 부여잡고
이른 아침 드라이클리닝 냄새 풍기는 ‘유니폼’ 걸치고
테트리스Tetris처럼 차곡차곡 쌓이며
벽돌공장에서 찍어낸 벽돌 차갑게 굳어가듯
나는 쏟아지는 잠에 고개 꺾이며 매일 그렇게 시들어갔다
나는 콩나물시루 속 콩나물도 아니었고
이쑤시개 통 속 네 모습처럼 측은하게 살지는 않으려 했으나
세상(世上)은 나에게 그냥 가만히 있으라 했고
그대로 있으면 그냥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고 했지만
사람들은 이미 그때 다 알고 있었을까
그 지옥철은 ‘지옥’으로만 갈 뿐이라는 것을
숨 막혀 죽겠다는 외마디 비명에
눈감고 자던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이대로 세상 떠나버리고 말면
죄지은 것 없지만 ‘천국’ 가긴 글렀다는 예감이 들 무렵
등 떠밀려 나오니 기다리는 것은
2호선 신도림역 환승(換乘)
더 이상 출구(出口)를 찾을 수도 없었던
고단함 빽빽이 서 있는 삼십 초입길
그 역 밖으로 나갈 새도 없이
나는 그렇게 길 위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by The Happy Letter
콩나물시루 : 1. (기본의미) 콩에 물을 주어 콩나물을 키우는 둥근 질그릇. 2. 어떤 공간에 사람이 많아서 빽빽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다음 [어학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