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은 살아 있는가? - 학교 문제, 독일 초등학교를 살펴보다
초등학교(Grundschule 그룬트슐레) 4년 1학기를 마칠 때쯤 교장선생님과 함께 면담을 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가 인문계 중고교(Gymnasium 김나지움 : 대학 진학을 주된 목표로 함. 12 - 13학년까지)로 진학할지, 아니면 실업계 중고교(Hauptschule 하우프트슐레, Realschule 레알슐레 : 전문직업 준비와 훈련이 주된 목표임. 9 - 10학년까지)로 진학할지 결정하는 상담을 하는 자리다.
이와 더불어 위에 언급한 인문계와 실업계의 3가지 학교를 다 합쳐놓은 '혼합형'인 - 대학진학 준비반 포함 - Gesamtschule 게잠트슐레(12 - 13학년까지)도 별도로 있다.
독일 초등학교는 4학년을 마치면 졸업이고, 이후 바로 중고교 과정이 합쳐져 있는 5학년을 시작하게 된다. 따라서 이미 초등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칠 때쯤 - 그간의 학업 태도와 성적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 대학 진학을 준비할 인문계 김나지움 (Gymnasium)으로 진학할지, 아니면 전문직업을 가지기 위한 전문직업 준비훈련 학교(실업계)로 갈지 결정을 해야 한다. 이 결정에는 학교 측과 학부모, 그리고 학생이 함께 참석한다.
교장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이 김나지움으로 5학년 진학하는 것을 반대하면 -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 인문계 중고교 과정을 시작할 수 없고 이 경우 대개는 향후 대학진학도 못하거나 안 한다는 것을 뜻한다. 독일은 바로 초등학교 4학년 1학기말에 이러한 결정을 한다.
하지만 전문직업 준비훈련 학교 과정 중에서도 다른 학교로 옮겨 대학진학 준비를 할 수도 있으며, 이런 경우 무엇보다 '혼합형' 모델인 게잠트슐레(Gesamtschule)를 통해서 - 학업 성적 평가, 편입학 전학 등 - 대학진학 준비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예전에는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대학진학률이 거의 40%에도 못 미쳤으나, 그 이후 최근까지는 대학진학률이 꾸준히 조금씩 증가하고 있지만 그래도 약 50%대에 머물고 있다. 대학 진학률 증가에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김나지움 선호 경향과 새로운 '3년 과정'의 Bachelor 학사제도 도입의 영향도 많이 있다고 한다.(이와 관련하여 필자의 '대학'에 관한 졸고를 참고 바람). 또한 일부는 학교 측의 '반대 소견'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의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기 위해 무리하게 김나지움으로 보내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5학년에 입학을 하더라도 그 해 학년말까지 시험성적이 뒤처지면 여기는 '유급'제도 (Sitzenbleiben)라는 것이 있어서 한 해를 다시 반복해야 한다. 같은 반 친구들이 6학년에 올라가도 학업 성적이 뒤치진 몇몇 아이들은 그대로 5학년에 머물러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일은 여러 번 일어날 수도 있다.
이러한 유급제도는 이미 초등학교 1학년 입학 때부터 시작된다. 예를 들어, 해가 바뀐다고 그냥 무조건 다 같이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수업일수 다 채웠다 하더라도.
참고로 여기 초중고교에는 성적 순서인 '석차'가 없다. 못 믿겠지만 정말 없다! 무슨 '등급'도 없다. 정확히 말하면 성적표에 '석차' 같은 것을 일부러 공개하지 않는다. 다만 전체적인 시험 점수별 '구성 분포'를 알기 위한 'Notenspiegel' (overview of marks)이라 불리는 성적 '점수분포도'와 반 '평균점수'를 시험 채점 후 공개해 주고, 학생들이 옮겨 적어 학부모도 알 수 있게 해 준다.
예를 들면, 시험 결과로 "1,2,3,4,5,6"중에서 "1"(말하자면, "A"에 해당되는 제일 높은 점수)을 받은 학생이 몇 명, "2"을 받은 학생이 몇 명, "3"은 몇 명, 이런 식으로 그 분포도(그리고, 반 '평균 점수'도 별도로 함께 표기해서)를 보여주어 내 점수가 반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인지 정도는 가늠할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1"이 여러 명이 있으면 누가 "1등"인지는 정확히 모른다.(원래 점수 채점 단위도 세분화되어 있으며, 예를 들면 점수 "1"도 "1+", "1", "1-" 등 3가지로 엄격히 구분되어 채점된다.)
그리고 해당 과목당 '필기시험'만 잘 쳤다고 결코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대체로 50% (과목별 담당선생님마다 일부 %를 조금 조정하는 경우도 있음)를 차지하는 '구두시험'이 아주 중요하고, 수업시간 발표 및 참여도, 과제물 숙제 점수 등을 모두 합쳐서 한 과목의 학기말 성적표 점수에 함께 산정 및 반영되기 때문이다.(이 구두시험 50%와 관련하여 필자가 쓴 다른 졸고, '선물'에 관한 글을 참조 바람)
여기서 학교 선생님이나 학부모들이 종합성적표(Zeugnis, 학기말마다 과목별 점수, 출/결석, 특이사항 기재 포함된 종합 평가서 및 '생활기록부' 같은 성격임)에서 가장 주목해서 보는 것은 - 우리로 치자면 '국영수' 등 과목별 점수 보다 - 바로 'Sozialverhalten' (사회생활 태도), 'Arbeitsverhalten' (학업수행 태도)이라고 불리는 2가지 점수다.
이 점수는 담임 선생님 혼자서 채점하는 것은 아니고 몇 명의 과목별 담당 선생님들과 함께 확인하고 논의한 후 취합해서 종합적으로 해당 점수를 정한다. 학교 학업 수행뿐만 아니라, 수업 참여, 숙제, 학교 학생들과의 교우 관계, 상호 협동, 이타적 태도, 사회성, 성실성, 책임감 등 전반적으로 종합 검토해서 매기는 점수이므로 어느 점수 항목보다도 중요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통상 이 2가지 점수는 종합성적표(Zeugnis)의 제일 위쪽에 각각 기재된다.
마지막으로 독자분들이 혹시나 좀 궁금해할지도 모를 몇 가지를 적으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가장 많은 질문은 독일 초등학교에 '체벌'이 있는가?이다. 답은, 여긴 체벌은 없다.
다만 수업시간 중에 수업을 방해하면 교실 밖으로 내보내며 수업시간 내내 또는 일정 시간 동안 복도에 서 있게 한다. 이것은 '학업수행 태도'(Arbeitsverhalten) 점수에도 크게 영향을 준다. 물론 이와 같은 처벌에 대해 학생 귀가 편에 - 학교 관련 '가정 통신문'처럼 - 각종 통지문 등을 보낼 때 선생님이 따로 적어서 그날의 수업태도에 대해 적어 보내기도 한다.
학교 공부는 제대로 못 따라오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유급' 제도가 있기 때문에 슬렁슬렁할 수가 없다. 한 학년 진학 못하고 눌러앉아있게 되는 것도 선생님이 판단하고 결정하기 때문에 선생님의 평가가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그 권한도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판단이나 결정에 대한 근거를 - 학부모님과 면담 시 제시하고 설명할 때도 꼭 필요한 기록부를 - 매번 아주 상세하게 기재해서 보관해 둔다. 독일은 정말 '기록'과 '문서화'를 철저히 한다.
또 다른 질문으로, 학부모님들은 선생님의 "개인" 휴대폰 번호를 알 수 있는가? "없다!"
'가정 통신문' 등을 주고받을 때처럼 특별히 '전달 메시지'가 있으면 학생 편에 '글로 적어서' 서로서로 전할 수 있으며, "개인" 휴대폰 번호로 연락해야 할 만큼 -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 아주 긴급한 사안이나 중대한 일은 겪어보지 못했다.('비상 연락망' 연결을 위한 학부모와의 연결은 별도로 하고) 그리고, 어차피 학교행사가 아니거나 학교밖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학부모가 책임지고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다만 학부모들의 의견과 심도 깊은 Q&A는 학교 교실에서 열리는 학부모 회의(Elternabend) 때마다 선생님들(담임 선생님뿐만 아니라 교과 과목 담당선생님까지 참석함. 초등학교 해당 학년 학급의 수업을 진행하는 수학 선생님, 국어 선생님 등등)과 반 분위기, 수업, 시험, 행사 일정 등 모든 제반 사항들에 대해 질문과 토의를 할 수 있다.
나라마다 교육환경과 제도에 따라 다양한 방안들이 운영될 수 있고, 또 그로 인해 어떤 방식이 좋고 나쁜가를 규정하거나 단순 비교는 할 수 없겠지만 우리 사회와 교육현실이 처한 한국사회의 특수한(?) 교육환경을 볼 때 어떤 부분들은 시의성이 있어 좀 더 상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독자들의 의견도 궁금하다.
학교와 관련된 이 글의 초고를 이리저리 다듬고 있을 때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됐다.
"교육계에 따르면 서울의 한 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 A 씨가 지난 18일 오전 교실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라고 한다. A 씨는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파악되었고.
여기까지는 팩트(fact)로 모든 언론에 공히 보도된 사실이다. 나머지 의혹이나 추측은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과 세부 조사가 필요하니 일단 논외로 하더라도, 초등학교 담임교사 A 씨가 스스로 목숨을, 오죽했으면… 그것도 교실에서…
할 말이 없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에 한동안 멍해지는 것을 어찌하지 못했다.
우리 모두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얼마나 우리 교사들의 교권이 부정당하고 있는가?(학생과 학부모에 의해)
얼마나 우리 교사들의 인권이 무시당하고 있는가?(학생과 학부모에 의해)
얼마나 우리 교사들이 희생당하고 있는가?(학교와 사회의 방관과 소홀에 의해)
......
독일 교권은 그래도 "아직은" 살아 있는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