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나이에 따른 '권위적 억압'으로부터 해방 모색
한국 사회는 최근 '만 나이'로 통일하는 방안을 시행하게 되어 기존의 전통적인 '한국식 세는 나이'와 '만 나이', '연 나이' 등 3가지 방식의 혼용에 대한 혼선으로부터 벗어나고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만 나이' 사용에 같이 보조를 맞출 수 있게 됐다. 물론 '만 나이'가 이미 법적으로 적용되고 있어 새로운 것은 전혀 아니지만 지금까지 한국 사회 일상생활 속에서 사회 관습적으로 모두 함께 사용해 왔던 통칭, ‘한국식 세는 나이’를 다 같이 없애는데 그 통일된 사용의 주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통일된 나이 셈법 관련 사회적 제도적 '편의성' 외에도, 도래하는 생일 시점에 따라 통상적으로 세는 나이보다 1 ~ 2살씩 더 어려지고 젊어지는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실제 체감할 수 있는지 여부는 각자의 몫이다.
여기서 나이 특히, '나이 문화'와 관련된 한국 사회 특성에 따른 역사적 기원과 배경, 유교 문화적 전통과 관습 등 심도 있는 사회 과학적 분석은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하고, 필자는 단지 새로운 '만 나이' 통일 시행을 계기로 지금 현재 이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나이와 관련된 독일 일상의 경험을 토대로 나의 단상을 써보고자 한다.
독일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필자는 여기서 다양한 사적 친목 모임도 하고 제법 많은 독일사람들을 마주 했지만 처음 보는 나에게 - 몇 번 식사 같이 하고 맥주나 와인도 같이 마시며 웃고 떠들며 논 후에도 - 선뜻 내 나이부터 먼저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거의 국제적 에티켓 중 하나가 된, '여성에게 나이를 물어보면 실례다.'를 여기서 말하고자 함은 물론 아니다. 또한, 초중고교 학생들처럼 같이 다니는 학교 학년에 따라 바로 나이를 알 수 있는 사이의 경우도 여기서는 일단 논외로 한다.)
심지어 한참 동안 친하게 교류하며 지냈어도 내 나이가 직접 언급될 상황은 자주 없었으며(물론 이야기를 오래 나누다 보면 서로 대략 어림짐작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필자도 지금까지 상대편인 독일 지인의 나이를 정확하게 모르거나 최소한 나 보다 나이가 많은 지 적은 지 조차 모르더라도 그들과 살갑게 대화를 하거나 자유롭게 처신하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처음 만난 그들이 나에게 많이 물어보는 것 중 하나는 주로 직업, ‘지금 하고 있는 일’이었다. 그다음은 여가시간 취미, 지난여름 휴가지나 여행 경험담 등이며 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물어보거나 서로의 경험을 대화로 이어 가지 한국에서처럼 짐짓 말끝까지 흐려가며 아주 대놓고 "혹시… 올해 나이가 어떻게 …,?"라며 먼저 묻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 일상에서 나이가 무시되어도 된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많은 경륜을 가진 시니어를 존중하고 예우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함이 없다. 다만 무턱대고 나이가 - 아무리 유교사상, 동방예의지국임을 거듭 강조하더라도 - 사회생활 속 어떤 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이나 해결의 '우선적'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빈부 차이를 떠나, 많이 배우고 못배우고를 떠나, 장애가 있고 없고를 떠나 서로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또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물론 앞서 언급한 오랜 전통과 사회 역사적 배경으로 특히 나이와 관련된 인간관계 형성 및 처신이 유독 어렵고 민감한 한국 사회지만, 필자는 이번 '만 나이' 통일 시행과 함께 다양한 계층과 세대, 연령대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오늘 현대 민주 사회에서, 우리는 낯선 사람을 처음 새로 만날 때마다 그 사람의 기본적 인성과 인품, 그리고 직업과 같은, 더불어 사는 우리 사회생활 속에 행하고 있는 '역할'과 '하는 일'에 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의식 전환'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아예 처음부터 서로 "정확한"(이른바 '빠른 년생' 때문에 우리는 종종 심지어 태어난 '달'까지도 포함하여 물어야 한다!) 나이만 먼저 '확인'하려 하고 그 후에야 처신하려 하는 것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나이를 통해서도 '서열화' 관습에 깊이 빠져 있다고 볼 수 있다.(다음 [어학 사전]에 따르면, '빠른 년생'은 "생일이 1월이나 2월에 있는 사람 가운데 학교를 한 해 일찍 들어간 사람"을 뜻함.)
여담이지만, 이제부터 앞으로는 어디서든 무슨 시비가 붙어 다투더라도, 먼저 목소리 높여 "야, 너, 도대체 몇 살이야?!"라고 큰소리로 고함치며 윽박지르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그리고, 제발 더 이상 "민증 까 봐!" 이런 말들도)
잘 알다시피 낯선 사람과 피치 못하게 잘잘못을 따져야 하는 상황에 빠지더라도 - 예나 지금이나 성인으로서 "상호(!)" 존중의 예의가 갖추어져야 하지 - 몇 살인지 또는 연장자인지 여부는 대개 그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다툼이나 문제의 본질이 아닌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저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이번 만 나이 통일 시행의 계기로 - 거창하게 말하면 나이에 따른 '서열화'와 '권위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모색의 일환으로써라도 - 좀 애매했던 인간관계를 더 친밀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가족 구성원 범주를 벗어난 지인들끼리 친목 위주의 범주 내에서는, 또는 사회생활 하면서 만나는 "비슷한(?) 또래" 사이라면 쿨하게 한 두 살 정도 차이까지는 “우리, 그냥 친구 하자! 말 편하게 해.”라고 먼저 말하면 어떨까?
물론 이런 말은 누구보다도 나이가 - 또다시 이런 '제안'조차도 한국 사회의 "한국적 나이 문화" 특성상 - 한 두 살 더 많은 사람이 '먼저' 꺼내야겠지만.
하루아침에 되기도 어렵고, 또 개인마다 세대마다 가치 기준이나 관점, 우선순위, 공동체 의식이 다르고, 소속된 직장이나 집단, 단체마다 소위 '조직 문화' 특성 때문에 예를 들어, 같이 학교를 다니며 수업을 듣는 학교 선후배 사이나, 군대, 경찰 등 상명하복, 위계질서가 조직의 생명인 특수 집단이나 상하 직급 체계가 분명히 있고 연공서열 제도를 중요시하는 직장 조직 내 선후배 등은 예외로 할 수밖에 없겠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와 이 사회 구성원이 아주 예전부터 내려온 '반상 계급사회'나 군대로부터 사회 일상생활 내까지 깊이 침투된 '군사 문화'의 잔재, 지나친 권위적 '서열 문화' 등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강제된 억압의 무의식적 '노예'나 혹은 정신적 물질적 '피해자'가 되어 왔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는 아무리 그래도 한 두 살 차이면 '언니'나 '오빠', '형', '누나' 소리를 꼭 들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특수한 집단내만 아니라면 좋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요즘 항간에 우스개 소리로, 이렇게 통일된 '만 나이' 시행으로 한 두 살씩 차이에도 불구하고 "친구 먹다" 보면 그 친구의 친구의 지인, 다시 그 지인의 친구의 친구 등등.. 계속 줄줄이 이어져 큰 폭에서는 80세 드신 어르신 하고까지도 '친구 사이'로 지인 관계가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그건 그렇게 심각하게 걱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독일 같은 유럽 문화권에서도 사회생활이나 친목 모임에서 친한 어르신들과 친교를 가지며 '친구 사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맞다! 한국사회 특유의 유교권 문화, 엄격한 연공서열 제도, 연장자 우대, 일상 속 서열 문화 등 지금까지 이어져온 오랜 전통적 관습과 사회 통념 때문에 앞서 위에 언급한 그 '제안'의 실현은 한국 '나이 문화'가 갖고 있는 고유의 특수성을 함께 고려할 때 아주 '복잡 미묘'하고 어려운 사안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바로 얼마 전부터 한국 사회에 '새로운 일상'이 되기로 했고, 또 이미 일상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동시에 어떻게 현명하고 지혜롭게 또한 그러면서도 사회적 충돌이나 갈등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내리고, 구성원 모두의 사회적 공감대를 조성하며 잘 자리 잡게 할지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할 사안이 되었다.
좋든 싫든 이 사안만큼은 한국 사회에 사는 지금 우리 모두가 직접적 '이해 당사자'다! 한 사회 속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국'독자들의 고견이 몹시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수정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