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THL 창작 시

*산도 잘 있습니다

THL 창작 시(詩) #289 by The Happy Letter

by The Happy Letter


*산도 잘 있습니다



한 편 한 편 찬찬히 읽어 내려가던 시집詩集을 그만 덮었습니다


남색물감에 담근 하얀 명주천 조각처럼 금세 짙게 퍼져가는 그 걷잡을 수 없는 스며듦이 두려웠습니다


한낱 퇴색된 빛에 젖어 산다 해도 나는 이미 ‘흰꽃’처럼 그렇게 선명하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제아무리 기다린대도 똑같은 아침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밤새 이슬 맞은 꽃잎들도 바람결에 곧 구덕구덕해지길 바랄 뿐입니다


푸른 빛깔로 출렁이진 못하지만 그래도 오래된 한 그루 나무처럼 나도 잘 있습니다



by The Happy Letter










*이병률 작가의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를 오마주(hommage) 함.


이병률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 (문학과지성사 2017) (광고 아님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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