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몇 밤 자고 나면 그러고도 또다시 몇 밤을 더 자고 나면 언니 오빠 형 누나가 가는 초등학교를 가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처럼, 아니면 아직 미성년자이지만 어른 흉내를 내고 싶어 하는 청소년처럼 필자도 빨리 커서 어서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때 그 시절 어른이 되면 무엇이 제일 좋을 거라 생각했을까? 또 무엇을 제일 하고 싶었을까? 아이들이 할 수 없는 일들, 또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많아 보여서도 그랬겠지만 어른이 되면 막연히 무언가 알 수 없는 ‘해방감’ 같은 것이 주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컸던 것 같다. 어쩌면 어린 마음에 “지금(어린 시절에)” 하고 있는 모든 것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자유(?)를 갈망했을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지난 유년시절을 되돌아보며, 그 시절 어릴 때가 정말 좋았는데라며 오히려 지나간 그 어린 시절을 무척 그리워한다. 만약에 지금(어른이 된 후에) 지난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하고 싶은 일들, 그때만 할 수 있는데 못해서 늘 아쉽고 후회되는 이런저런 일들도 많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모두가 다 그 어린 시절로 돌아가보고 싶은 것은 아닐 것이다. 한때 아주 고통스러운 시련이 있었거나 과거의 안 좋은 기억과 회한悔恨이 남아있다면 더더욱 그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가긴 싫을 것이다.
무릇 우리는 “어른”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앞으로 다가올 내 미래에 대한 어떤 기대감에 의지하며 산다. 그 초등학교를 가고 싶어 하던 어린 아이나 어서 어른이 되고 싶어 하던 청소년처럼. 미래는 최소한 지금 바로 눈앞에 있는 “현재”보단 더 나을 것이라는 가치부여와 그런 인식이 우리를 ‘현재’ 보다는 ‘미래’에 더 기대어 살게 만드는 지도 모른다.
문제는 훗날 마주하게 되는 그 미래가 현재가 되었을 때이다. 그 미래의 현재가 정말 더 나은 가치를 부여해 줄지, 아니면 미래의 관점에서 본 과거, 즉 지금의 현재를 단지 더 아쉬워하게만 만들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10년이나 20년의 시간이 더 지난 후엔 지금보다 더 자유로울 수 있을까? 과연 오늘(지금) 보다 더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알 수 없는 ‘미래의 가치’에만 의존하며 살다가 지금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그 어린 시절처럼 또다시 바로 눈앞에 있는 ‘현재의 가치’와 그 소중함을 제대로 못 보는 우愚를 범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