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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Happy Letter Mar 10. 2024

행복의 조건


이 글은 특정 브랜드나 상품과는 무관함을 먼저 밝혀 둔다. 또한 특정 브랜드나 상품이 좋다, 어떻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은 더더욱 아니고.


커피를 좋아하시는 독자(작가)분이라면 그냥 커피 한 잔 마실 때 읽으시며 이 글을 통해 전하고자 바의 의미만 보시면 될 듯하다.

 



예전에 가정이나 직장에서도 유행인 어느 캡슐(capsule) 커피 매장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매장에 들어서니 한쪽 코너 편에 'Tasting Area'에서 최신 커피를 무료로 맛볼 수 있게 해주고 있었다.


물론 새로운 신상품 커피맛만 맛보고 나오면 그만이다. 그러면 다행일 텐데 매장 직원이 아주 친절하게 다가왔다. 마침 공교롭게도 그날 구매하는 수량기준으로 몇 개의 커피 캡슐을 사면 몇 개를 추가로 (덤으로) 더 주는 할인 이벤트를 하고 있다고 하면서. 필자는 신상 커피맛을 테이스팅(tasting)하면서 마음이 좀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식(試食) 또는 시음(試飮) 같은 맛보기(tasting), 무상 샘플제공 등도 그렇지만 이를 포함한 모든 행위와 결정은 성인이라면 개개인이 주관적으로 스스로 판단할 문제이다. 그 판단의 결과로 인해 어떤 '자승자박'(自繩自縛)이 시작될지도.


태생적(?)으로 '팔랑귀'를 가진, 원래 귀가 얇은 사람들도 있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은 주로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호의나 친절에 약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가 접하는 일상 속 많은 일들과 어떤 사람들은 단지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처럼 보일 뿐이지 실은 다들 어떤 "대가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우리는 (평소 생각보다 싸게 보이는) 어떤 캡슐 커피 가전제품을 살려고 할 때 - 진정 자유로운 삶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 그 세련되고 간편하고 멋있는 커피 가전기기를 사기 전에 깊은 고민을 더 해봐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즐길 수 있는 맛있는 커피들이 (캡슐형이든 아니든) 무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고민도, 소비도 다 개개인의 자유다.(그 "캡슐의 노예"가 된 이후로 한동안 다른 커피는 못 사게 되고 말았다.)




우리는 처음부터 주관적인 가치판단과 그에 따른 자유의지로 그 상품을 구매한 것인지, 아니면 어떤 유혹이나 미끼에 빠져 타인에 의해 이미 정해진 '테두리'나 '틀'(frame) 속에 갇힌 이후부터 반복적으로 구매하게 되면서 내가 이 상품을 좋아한다고 "믿게 된 것"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그 반복적 구매의 계기가 미끼인 '할인'이나 '덤'과 같은 사은품 또는 무료(할인) 이용권을 받고 난 뒤부터였는지도.(여기서 그들의 마케팅 전략상 고객(소비자)을 상대로 대놓고 하는 유혹이나 미끼, 그런 덫에 대한 세부 논의는 다음 기회로 넘긴다.)


필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좀 더 넓은 의미로 들여다보면, 이런 반복되는 비슷한 상황 속에 우리의 자유의지, 그리고 그에 따른 자발적 선택과 결정이 보장되는 담보(擔保)가 바로 우리 일상생활 속 행복해지기 위한,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조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위에 서술한 글을 통해 평소 물건 하나 사는 일상생활의 고객(소비자)으로서의 입장에 관한 예를 들어 봤지만, 확대해서 보면 다른 상황과 경우(사회생활과 인간관계 등)에서도 우리는 이와 같은 메타포(metaphor)를 대입(代入)해 볼 수도 있다.


독자(작가)분들도 보다 쉽게 공감하실 수 있는 다른 예를 들면, 일상생활 속 매사에 우리는 자기가 직접 주도적으로 개입(결정)한 일들에 대해선 만족도가 아주 높다는 사실이다. 또 직장생활 중 어떤 프로젝트 업무처리에도 마찬가지다. 반면, 그 반대의 경우 만족도가 떨어지고 불행감까지 느끼게 된다.


우리 모두는 타인의 강요나 강제를 본능적으로 싫어한다. 타인이 제공하는 어떤 편의함과 프레임 속에 길들여져 가며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타의에 의해) 자신이 어떤 "00의 노예"처럼 되어가는 중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불행을 느끼기 시작한다.


인류 역사 또한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우리 모두는 매번 '노예의 삶'을 살지 않기 위한 (또 그런 지배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계속 반복해 왔고 누구는 투쟁의 역사를 역설(力說)하기도 했음을 잘 알고 있다.


남을, 남의 간섭(?)을 무시하거나 아예 신경 쓰지 말라는 식의 접근 관점이 아니라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나에게 처한 삶이 어떤 삶이든) 어느 무엇보다도 자신의 자유의지로 이루어진 자기 주도적 삶, 자기 결정권이 보장되는 삶이 바로 행복한 삶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덧붙이고 싶은 것은 딱히 신세를 지려고 한 것도 아닌데 어떤 선심(善心) 쓰는 듯 "친절"을 베푼 상대방 때문에 미안함 내지는 '마음의 빚'을 느끼게 만들며 작위적(作爲的)으로 다가오는 것에 대해 저마다 경계(警戒)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불행하게도 어떤 트릭(trick)의 출발점은 어떤 "친절"같은 유혹에서 시작된다.


무엇보다도 어떤 대가와 보상을 전제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친절"의 반복된 습득으로 인해 자칫 잘못하면 종국에는 습관적 의존성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 더 심각하게는, '주체성 없이 남이 시키는 대로 하거나 남의 눈치만 살피는' 그런 노예근성에 점점 빠지게 되는 시발점(始發點)이 될지도 모른다.



















메타포(metaphor) : [문학] 행동, 개념, 물체 등이 지닌 특성을 그것과는 다르거나 상관없는 말로 대체하여, 간접적이며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일.

팔랑귀 : 줏대가 없어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 잘 흔들리는 성질이나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노예(奴隸) : 1. (기본의미) 남에게 자유를 빼앗겨 부림을 받는 개인이나 계층. 2. 어떠한 물건이나 생각, 일 따위에 지나치게 얽매이거나 몰두하여 다른 것을 돌보지 않는 사람.

노예근성(奴隸根性) : 무슨 일이든지 주체성 없이 남이 시키는 대로 하거나 남의 눈치만 살피는 성질.

자승자박(自繩自縛) : 제 줄로 제 몸을 옭아 묶는다는 뜻으로, 자신이 한 말과 행동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구속되어 괴로움을 당하게 됨을 이르는 말.(다음 [어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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