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작가)분들은 언제가 제일 외롭다고 느끼세요? 외로울 때는 무엇을 하시나요? 그 외로움의 원인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 글은 특정 연령층 이슈나 세대 갈등 문제 등과는 무관함을 밝혀 둡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자주 들으며 자랐다. 또한 '사회성'이 모범적인 인격체로서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 중 하나라고도 배웠다. 반대로 사회성이 부족하다느니, 사회성이 없다느니 하는 말을 자주 듣는 사람은 "사회생활"이 힘들게 되고 사회적 지탄(指彈)을 받게 될 수도 있다고 들었다.
우리 모두에게는 어릴 때부터 인간관계 중 친구관계가 중요한 관심사였다. 하지만 대개 부모들은 가능하면 잘 살고 공부 잘하는 친구와 가깝게 지내길 원했다.(실은, 부모들은 자기 아들, 딸의 친구가 어떠냐 보다는 걔 아빠는 뭐 하는 사람이래? 걔 엄마는 뭐 한대?가 더 큰 관심사였지만.)
그래서 어린 시절 동네 놀이터며 학창 시절 때부터 직장 다니는 사회생활 때까지 우리는 매번 좀 괜찮은 사람들과 알고 지내거나 좋은(?) 인맥을 쌓으려 무척 애쓰고 또 그 수많은 친구들이며 지인들과 어울리고 교류하며 지내느라 한참 동안의 세월을 보냈다.
그런데 이런 우리가 외로운 이유가 주위에 만날 사람이 없어서일까?
물론, 세월이 다시 좀 더 많이 지나고 보니 학교나 직장생활, 사회생활 동안 쌓아온 그 많은 인간관계들도 나이가 들면서 (한 살 두 살 더 늙어가면서) 하나둘씩 정리가 되고 마는 것 같다.
가까웠던 친인척들마저도 저마다 자기 자식 자랑과 살림살이 비교에 지쳐 가며 겨우 명절에 몇 번 볼뿐 세월이 갈수록 왠지 모르게 좀 소원해지게 되고. 그냥 간단히 말하자면,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선별하게 되고 (그동안 알고 지내던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 가고) 몇몇 만나는 사람만 계속 만나게 되는 것 같다는 말이다.
장성(長成)한 자식들은 자식들대로 타지(他地)로 나가거나 자기 짝을 찾아 나서고 나면 부모는 빈 집에 혼자 남겨진다. 그리고 마치 빈 둥지를 지키는 어미새와 비슷한 신세가 되는 "빈 둥지 증후군"(empty nest syndrome)을 느낀다. 자녀를 떠나보낸 후 상실감과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외로움을 느끼며 때때로 밤이면 쉽사리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리며 불면증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늙은 사람이라 불리는 노인(老人)들의 외로움은 결이 좀 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노인은 어디서건 별로 인기가 없기 때문인 것 같다. 대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냥 뭔가를 같이 하기 싫은 대상 같은 취급을 받는다. 엄청 나이가 많이 든 노인이 아니라 그냥 중년의 "대표님"만 되어도 (오죽했으면) 그냥 "법카"(법인 카드)만 주고 회식엔 부디 참석하지 말아 달라고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노래하지 않나!?
요즘은 혼자서만 다니면 혹여 "왕따"라도 당하지 않았냐고 걱정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 어느 나이대가 되면 혼자 잘 놀(?) 줄 알아야 한다. 배우자와 함께 잘 살든, 사별하고 혼자 남았든, 동네 친구나 옛 친구들이 많이 있든 없든.(친구들도 매일 만나지는 못할 테니.)
물론 애정(愛情)하는 그 사람들이 모두 다 바로 옆에 가까이 있어도 외로움이 다 해소되거나 해결되지는 않는다. 어느 누구도 감히 함부로 가늠해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떤 "채워지지 않는" 무한한 애정(愛情)의 크기를 가지고 있다면 더더욱.
이 대목에서 류시화 작가의 시(詩) 제목,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유명한 문구(文句)가 떠오른다. 우리의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을 어떻게 이보다 더 절절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와 아주 묘하게 흡사한 상품 판매 문구를 어디 버스정류장에 있는 상업적 광고판에서 본 적도 있다.)
하지만 이 문구(文句)가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왜 그토록 그립고 외로운지를, 그리고 그런 감정들의 치명적 위험성을 역설적(逆說的)으로 잘 나타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채워지지 않고 또 만족할 수 없는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는 동시에 무한대의 욕망과 기대 그리고 욕심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꽃들이 활짝 피었다가 시들면 그 꽃잎 떨어지는 날만 기다릴 뿐 그들이 달리 누릴 수 있는 영화(榮華)는 더 이상 없는 것일까?
우리가 상상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대개 “80세”가 넘으면 과연 할 일이 별로 없을까? 토요일, 일요일 주말 오후나 저녁에 (며칠 전 사전에 미리 연락도 하지 않고 당일 갑자기) 불쑥 찾아가도 그들은 찾아와 줌에 그저 반가워만 하실까?
아침에 눈 뜨면 밖에 나가도 만날 사람이 없다. 무슨 약속도 없고 딱히 갈 곳도 없다. 그나마 일주일에 한두 번 가는 병원이 다다. 그래도 간호사며 의사가 딸, 아들보다 더 낫다. 어디 아프신 데는 없냐 진찰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들어주고 묻기도 해 주니까 말이다.
봄볕 화사한 일요일에도 밖으로 나들이조차 못 나가보고 집에서 TV로 <전국노래자랑> 보며, 수십 번은 더 들은 "삼수갑산 첩첩산중~"이나 "자갈치 아지매~" 같은 트롯 노래들을 거의 무한 반복하듯 들어야 하고, 그리고 그다음 날 저녁엔 <가요무대>를 보다 졸다가 쓰러져 잠이 들기를 반복해야만 할까?
모두가 익히 잘 아는 것처럼 사람은 혼자 태어나고 또 혼자 죽는다. 그 죽음의 길에 누구도 같이 동행해 줄 수도 없고 동행해 줄 사람도 없다. 다만, 그 떠나는 길 배웅해 줄, 함께 기도해 줄 가족과 친구들만 (목숨이 끊어져 죽음에 이르는) 임종(臨終)을 맞이하는 그 '외로운 순간'에 병상(病床)에 둘러서서 작별인사를 나누며 함께 슬퍼해줄 따름이다.
늙으면 먼저 떠난 배우자를 그리워하며 자식도 친구도 곁에 없이 이 세상 떠나기 전 남은 여생(餘生) 동안 혼자 외로이 살아야 한다. (친구들도 형제자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날 테니, 아직 생존해 있어도 병상에 누워 있거나 할 테니) 그러니 그 혼자 사는 연습과 학습을 미리미리 해 봐야 한다. 늙어가며 맞이하는 외로움은 피하기 더욱더 어렵다. 외로움의 강도와 수치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늙어가면서 주름이 늘듯 더 늘어날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만 외로움을 견디는 법을 미리 좀 배워야 할 뿐이다. 어쩌면 지쳐 쓰러져 잠들고 말 때까지 졸음을 버티고 또 버텨보듯이 무척 힘들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늙어가면서 배우게 되는, 외로움을 이겨내는 인내는 바로 젊은 시절부터 그토록 갈구해 온 온갖 무한대의 욕망과 기대 그리고 욕심을 버리고 내려놓는 마음에 다름 아닐 것이라고 필자는 본다.
끝으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작가)분들 중 혹시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아계신다면 조만간 한번 방문해 보심이 어떨까 싶다. 혹시 오늘 하루 TV나 스마트폰, 유튜브(Youtube) 보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을 정도로 무료하다면, 혹은 만날 사람도 약속도 없고 가끔씩 몹시 외롭다고 (또 그래서 우울하다고) 느낀다면 말이다. 그냥 찾아뵙고 말동무만 해드려도 좋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그분들은 "손자, 손녀가 곁에 있어도 나는 손자, 손녀가 그립다"라는 말은 하시지 않을 것이다. 그분들은 내려놓은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분들의 외로움은 매일매일의 일상(日常)이기 때문일 것이다.
빈 둥지 증후군 : 『심리』 중년에 이른 가정주부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회의를 품게 되는 심리적 현상. 마치 텅 빈 둥지를 지키고 있는 것 같은 허전함을 느끼어 정신적 위기에 빠지는 일을 말한다.(다음 [어학사전])